연락을 기다리면서, 연락을 끊고 싶다

나는 사람을 제일 좋아한다고 말하던 애였다

by 안맑음

외로운데, 연락은 다 끊고 싶다


나는 누구보다 사람을 좋아한다


고등학교 영어 수업 때,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질문을 하나 하셨다

“너희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니?”


내 발표 차례가 왔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선생님, 저는 사람을 가장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그해 들었던 말 중에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며

칭찬해주셨다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래, 나는 사람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순간이 되면

나는 모든 관계를 끊고 싶어진다


연락을 하는 것조차 버겁게 느껴지고,

아무도 나를 찾지 않았으면 좋겠고,

어디 쥐구멍에라도 들어가

며칠이고 숨어 있고 싶어진다


미치도록 외로운데, 혼자 있고 싶다

이 모순된 마음이

나를 더 지치게 만든다


사람이 밉고 싫어질 때도 물론 있지만,

진심으로 사람을 싫어해 본 적은 없다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사람을 끊어내고 싶은 게 아니라,

그저 사랑받고 싶은 것이라는 걸


부모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나는,

조부모님 밑에서 자라며

충분한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조부모님에게 받는 사랑과

부모에게 받는 사랑은

엄연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부모님과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들이

나를 결핍되게 만들었고,

그 결핍은

나를 아프게 하고

세상을 원망하게 만들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엄마를 만났을 때,

엄마는 나의 존재를 부정했다


10년 넘게 만난 남자친구와

주변 모든 사람들에게

자식이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어린 나에게

밖에서는 자신을 ‘선생님’이라고 부르라고 했다


혹시라도 아는 사람을 만날까 봐

늘 조바심을 내며

나를 몰래 만나던 사람이

나의 엄마였다


우리 아빠는 참 빛나는 사람이다

말 그대로, 빛나는 사람


하지만 그 말에는

한 가지가 빠져 있다


‘겉으로만‘


나는 아빠를 떠올릴 때마다

“빛나는 조개껍데기 같다”고 말하곤 한다


겉으로 보면

몸도 좋고, 잘생겼고, 옷도 잘 입는

멋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내면까지 단단한 어른인가 생각해보면,

그저 빈 껍데기처럼 느껴진다


아빠는 이혼 이후

여러 사람과 함께 살았다


그리고 나는

성인이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 속에 놓였다


그 관계들이 따뜻했다면 괜찮았겠지만,

지금까지 만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에게 지워지지 않는 상처만 남기고 떠났다


성숙하지 못한 부모 밑에서

안정적으로 자란다는 것은

나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부모님처럼 되지 않기 위해

뼈를 깎는 노력을 한다


나는

빛나기만 하는 조개껍데기가 아니라,


조개 안에 진주를 품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겉이 아니라

내면이 단단한 사람


진주가 시간이 지나며 만들어지듯,

나의 내면도

그렇게 조금씩

단단해지고,

가치 있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요즘의 나는

사람을 일부러 멀리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모든 관계에 애쓰지 않고,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사람을 만나려고 한다


여전히 외롭지만,

그럼에도 나를 지키는 방법을

조금씩 배우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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