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주택살이-자연도 편

자연도(영종도)에서 도코리지트로 살아가는 중입니다.

어쩌다 주택으로 이사를 오면서 영종도라는 섬 그것도 주변에 흔한 마트도 없고 주택 몇몇이 함께 있는 동네에 자리 잡게 된 우리 가족, 이곳에서 지낸 지 벌써 9개월 차, 한해를 넘겼다. 가족들과 올 한 해 매듭짓기를 하며 2025년의 가장 큰 변화이자 도전은 8년을 넘게 지낸 동네에서 다리를 건너 섬, 그것도 마당이 있는 한적한 주택으로 이사를 왔다는 것이다.

어제는 아이들과 방학맞이로 영종역사관을 다녀왔다. 언제부턴가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역사, 문화, 생태, 예술에 대한 중요성을 알게 되면서 스스로 도코로지스트가 되기를 결심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또 새로운 곳에 정착했고 얼마나 살게 될지는 아직 모른다. 부동산을 따라다니는 사람들과 달리 시골과 자연으로 들어가고 싶음에 왔지만 나 역시 이곳에서는 이방인이다.


오자마자 나는 영종의 갯벌조류모니터링을 시작하고, 영종의 송산과 미단시티, 예단포, 전소천 등지의 새들을 탐조했다. 국제공항이 생기며 갯벌이 매립되면서 4개의 섬이 하나의 섬이 되고, 그곳에 살고 있는 생명들이 어디로 가서 어떻게 지내는지 원주민들에게 배우고 알게 되었다. 용유에 가면 "여기가 왜 영종도야. 용유도지"라고 말하는 원주민과의 대화에서 더욱, 이곳의 변화가 순식간에 이루어졌음을 느꼈다.

5월이 되자 제비둥지로 날아드는 제비를 나의 집 마당으로 날아드는 재비들을 볼 수 있었다. 새끼들이게 먹이를 주고 응가를 물어다 버리는 부모제비들, 새끼를 포란하고 육추 하는 과정과 2차 포란의 모습까지도 생생히 볼 수 있었다. 이전에는 분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는 아름다움과 생태시민으로서 성장하는 계기는 자연에 둘러싼 개발된 도시, 영종도로 와서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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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예단포에서 만난 제비들


도시에서는 제비 한 마리 볼 수 없었던 이유는 뭘까? 아... 처마가 없구나.. 싶었다. 그런데 처마가 있고 주택이 많이 있는 이곳에 오니 이리도 멋진 제비를 실컷 볼 수 있었다. 신기한 건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 제비가 눈에 띄 즈음 영종도(永宗島)의 본래 이름이 자연도(紫燕島)라는 것을 알았다. 자줏빛 제비섬이라는 뜻이다.

어제는 아이들과 방학맞이로 영종역사관에 방문했다. 자연도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고려 인종 때 고려에 왔다간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귀국 뒤에 여러 가지 견문을 모아 엮어낸 『고려도경(高麗圖經)』의 기록대로 ‘경원정(慶源亭) 맞은편 섬에 제비가 많이 날아 붙여진 이름’이라고 전한다. 그런데 조선 효종 때 군사적 필요에 따라 화성군 남양면(南陽面)에 있던 군사기지 영종진(永宗鎭)이 이 조그만 섬으로 옮겨오게 된다. 그리고는 자연도와 다리를 놓아 연결하고는 다리 이름을 만세교라 불렀다. 이때 남양에서 옮겨온 영종진이 이곳에 자리 잡은 뒤로 계속 같은 이름으로 불리면서 자연도는 차츰 영종도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갔고, 마침내는 그 원래의 이름을 밀어내고 이제 제 이름처럼 쓰였다고 한다. 만세교 역시 지금은 남아있지 않으며, 그 뒤로 계속된 두 섬 사이의 매립에 따라 영종진이 있던 섬과 자연도는 이어지게 됐다.


현재의 영종도를 이루던 기존 4개의 섬들은 섬과 섬을 잇는 제방을 통해서만 이동이 가능했고, 주민들은 주로 어업이나 농사로 먹고살았다. 염전이 각 섬 도처에 위치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문을 닫았다

그리고 염전체험장인 금홍염전이 남아있다. 가을에 나는 이곳에서 쉬는 가락지를 단 저어새를 만나러 갔다. 이 녀석은 왜 남쪽나라로 아직도 안 내려가는지 애를 태웠다. 늦긴 했지만 이 어린 개체는 결국 떠났다. 때를 따라 떠날 줄 아는 것도 삶의 이치임을 이들에게 배운다. 무엇보다 가을에 이곳은 산굼부리가 따로 없다. 억새와 갈대밭이 쭉 늘어선 이 아름다움은 결국 훼손되지만 회복되는 자연의 힘이 팽팽하게 줄다리기하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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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적, 금홍염전의 아름다운 억새 금홍염전의 갯벌가에 아직 떠나지 않고 쉬고 있는 가락지 단 어린 저어새

신불도와 삼목도는 지금은 거의 흔적도 없는 수준으로 영종도에 완전히 통합된 데에 반해, 가장 서쪽에 있던 기존의 용유도 지역은 영종도와 물리적으로는 한 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는 별개의 지역으로 취급을 받아서 영종도와 용유도를 따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 옛 신불도와 삼목도 자리는 현재 기존 영종도와 같이 영종국제도시 부지로 포함되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분명 나는 20대 초반까지 을왕리를 오기 위해 월미도에서 배를 타고 들어갔던 기억이 있는데 그 짧은 20년의 세월 동안 많은 것들이 변했다.

KakaoTalk_20250712_130539398.png 출처-위키디피아

영종역사관에 가서 알게 된 새로운 사실은 영종도 우리 동네(운북, 운남)가 우리나라 최대의 신석기 마을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875년 5월 25일과 6월 12일에 일본 해군의 운요호가 강화도 초지진을 침략했고 점령에 실패하자 영종도를 습격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강화도조약 체결의 시초가 되었다는 것도 말이다.


이 땅에 터를 잡은 선사시대 사람들부터 바닷가를 기반으로 살아왔던 반농반어, 염전에서 소금을 채취했던 주민들의 삶, 왜구의 침략에 쓰러져간 주민들, 그 세대를 거듭하고 거듭해 왔던 영종도의 역사 가운데 이제 빠르게 변해가는 땅과 도시, 외지에서 들어와 다시 정차하는 사람들, 떠나는 사람들, 이곳에서 나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허락하실까?

알 수 없기에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절기를 따라 달리 날아드는 새를 보는 것도, 갯벌로 날아드는 아름다운 물새들을 보는 것도, 계절에 따라 앙상해지기도 하고 푸르르기도 하고 꽃과 열매를 맺는 자연을 누리는 것도 순간순간 깜짝 놀라게 하는 뱀과 고라니도, 신나게 울어대는 맹꽁이도, 근처 마트가 없어서 함께 밤길을 걸어가는 그 순간도 뚜렷이 빛나는 밤하늘과 별과 달도, 해가 기울어가면 온 하늘을 분홍빛으로 물드는 석양도..... 나열하고 나열하자니 끝이 없는 경이로움을 말이다.
무엇보다 이 새로움과 도전을 함께 하는 나의 두 딸과 남편이 함께 함을. 그리고 안전하게 우리를 지키기 거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더욱 알아감이 참, 감사하다.

나는 오늘도 이 글을 가정에서 나누며 다시 한번 도코로지스트로 살아가는 역동성과 생동감을 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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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의 저녁노을.jpg
미단시티의 상모솔새 우리집에서 바라본 저녁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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