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비가족 올레길을 걷다-2편

10박 11일 "꼬닥꼬닥 올레", 걸으니 보이는 것들

제주 올레길, 삶의 부담감을 조금 내려놓으며, 가볍게 산책하듯 아이들과 끝까지 걸어가보자하는 마음으로 제주 올레길을 걷고자 했다. 하지만 길을 걸으며 많은 것들이 묵상되었다. 여행은 인생의 축소판이라는 말이 과장된 표현이라 생각했는데, 올레길을 걸으며, 의미 있는 말임을 깨닫게 된 여행이다.

천천히 걸으니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고, 천천히 걸으니 들리지 않던 것들이 들리고, 천천히 걸으며 눈을 마추치고 인사했기에 누군가와 만날 수 있었다.
걸으니 환대를 받기도 도움을 주기도 하며, 걸으니 쉬운 길도 어려운 길도 있고, 걸으니 즐겁기도 힘들기도 하고, 걸으니 난감한 상황도 운이 좋은 타이밍도 있더란 말이다.


걸으니 보이는 것들

제주 올레길은 길을 잃을 염려가 없다. 짧으면 50m 길면 200m 앞마다 올레길을 상징하는 리본이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뉜 길목 앞에 올레 길표식이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왔다. 그렇게 걷다 보면 간세가 중간중간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친절히 안내한다. 어떤 때는 아이들은 우리보다 멀찍이 먼저 가기도 하고 나보다 뒤쳐지기도 했다. 하지만 굳이 아이들을 부르지 않았다. 그 이유는 올레길의 리본과 길표식, 그리고 간세('게으름'을 뜻하는 제주도 방언 '간세다리'에서 유래한 말로, 제주 올레길의 상징인 조랑말을 의미함)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여행길에 달아놓은 리본이 왜이리도 은혜로울까? 길을 잃는 건 아닐까 싶다가도 몇 발자국만 가면 보이는 리본이 가야할 방향을 정확히 알려준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인도하심을 걷는 길 내내 묵상하게 되었다. 이 안정감과 평화는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자족이 아닌가.

그리고 내 인생길에 리본을 달아준 사람들, 리본이 되어준 사람들이 떠오른다. 참 감사하다. 그리고 나도 누군가의 리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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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레길임을 알려주는 리본
KakaoTalk_20260208_192046471.jpg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리 가버린 아이들, 그럼에도 아이들을 부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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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세(조랑말)의 머리 쪽이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이다. 올레길표식의 파란색은 순방향, 주황색은 역방향을 안내한다.
올레길 코스 끝 종착점의 간세가 보이면 자동으로 달려가는 아이들


내 발의 빛이요 등불이 되어 주신 것과 같이 빛이 되어준 리본과 등불이 되어준 길표식과 간세.^^


그리고 우리는 안다. 한 코스 한 코스마다 종점이 있다는 것을... 그 길은 끝난다는 것을 말이다. 끝날 수 있는 여정이기에 인내할 수 있는 것이다. 끝나는 종착지를 알기에 서로를 격려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끝에서 우리는 항상 환호했고 기뻐했다. 그것이 완주의 기쁨이 아닐까? 하지만 완주하지 않으면 알 수 없고 맛볼 수 없는 기쁨이다.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는 그 길은 끝이 있다. 그리고 이미 먼저 걸어가시고, 우리를 인도하시는 예수그리스도가 그 종착지에 계시다.

내가 스스로 길을 개척하지 않아도 되고 헤매지도 않으며, 앞에 놓은 길을 몰라 불안할 필요조차 없음을.. 그것이 얼마나 은혜인지...

길을 걸으니 보인다. 길을 걸으니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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