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박 11일간, "꼬닥꼬닥 올레"의 만남
올 겨울 우리 가족은 올레길을 걷기로 했다. 작년 2월 초 부녀들만의 제주 올레길 1코스 여행의 여운을 지속하기 위함이었다. 아이들은 눈보라가 치며 바람에 날아갈 듯 불어오는 조건 속에서 끝까지 해냈다. 8살, 10살의 아이들은 그 종착지 앞에서 아빠에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이런 게 여행이지"
라고 말이다. 사서 고생을 자처하는 나로서는 매일 하루에 한 코스씩 아이들과 올레길을 걸을 생각을 하니 기뻤다. 그렇게 여름에는 시댁과 6코스를 하루 걸었고, 올 겨울 10박 11일 하루도 빠짐없이 걷기로 했다.
단지 한 코스씩 걸어보자! 걸을 수 있을까? 하면 하는 거 지모.. 이 정도의 단순한 생각이었던 나..
그런데 걸으니 보이는 것들이 참 많았다. 걸으니 만나는 사람들이 귀했다. 걸으니 들리는 것들, 느껴지는 것들이 나의 오감을 깨웠다. 내가 차를 타고 내가 원하는 목표지점(그것이 관광지던, 산이던, 숲이던, 바다던)을 찍고 가는 여행과는 너무나도 달랐다. 이제야 왜 사람들이 걷는지 알 거 같았다.
왜 여행이 인생의 축소판 같다고 말하는지 알 것만 같았다. 그 이야기의 처음은 그 길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다.
트럭아저씨의 귤인심
올레길 걷기 첫날-올레 4코스 19km 둘째의 걸음이 점점 느려질 즈음, 종착지를 5킬로 앞두고 비가 부슬부슬 오기 시작했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서 언제나 멈추기를 바란다. 나는 이런 상황에서 끝까지 가길 원한다. 조금밖에 남지 않았으니 더 걷자고 말하고 비를 맞고 걷는데 트럭한대가 우리 앞에 선다. 창문을 열더니 "어디에서 왔어요?" "인천이요" "난 파주에서 왔어. 자, 이거 먹어!!!" 하며 대뜸 귤이 듬뿍 든 귤봉지를 주신다. 아마도 빗속에서 아이들과 걷고 있는 우리를 보며 응원하고 싶어서였겠지? 싶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아저씨에게서 그 따뜻한 마음이 전달되었다. 우리는 신이 났다. 힘이 났다. 이런 뜻밖의 호혜는 우리를 다시 걷게 하는(일어서게 하는) 힘인 것이다. 그렇게 귤봉지를 들고 걷다가 보니 엇!!! 저 멀리 간세(간 '게으름뱅이'를 뜻하는 제주 방언 '간세다리'에서 유래한 말로, 제주올레의 공식 상징물인 조랑말) 스탬프가 보인다. 아이들과 아빠가 갑자기 달려간다. 이렇게 간절히 간세를 기다린 적이 있던가? 도착하자마자 추위에 얼은 손을 달래 가며 스탬프를 찍고 문닫힌 올레안내소 아래에서 귤을 까묵까묵했다. 어찌나 시원하고 맛있던지..
우리가 빗속에서 가던 길을 멈추었다면? 아마 만나지 못했을 트럭 아저씨.
그래, 가고자 하는 그 길에는 우리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만난 돌담국수 모녀
올레길 걷기 12코스, 두 번째 숙소로 이동하고 걷기 시작한 코스였다. 늦게 도착한 종착점, 저녁에 만난 돌담국수 모녀들의 환대는 잊을 수 없다. 종착점을 앞두고 이미 어둑어둑 해진 길, 이날의 종차점 무릉외갓집 가기 바로 직전 불 켜진 돌담국숫집이 보인다. (걷다가 배가 고파지져 보이는 식당에 들어가지 않으면 때를 놓친다) 스탬프를 찍고 후다닥 국숫집으로 들어가려는데, 나오신 식당주인 분에게 " 저녁하나요?" 하니 난처해하시며 다시 식당으로 들어가신다. 나는 "안 돼요, 문 닫으시면...." 하며 간절한 눈빛 보내기를 한다. "엄마, 어떻게 하죠?"라고 묻는다. 나이가 지긋하신 할머니가 머리를 끄덕이신다. 하~~~ 살았다!!!! 주변에 식당도 카페도 없는 이 길에 들어오라는 말보다 더 기다렸던 말이 없다. 밥을 먹으며 돌아본 아담하고 예쁜 이 국숫집의 close 시간인 오후 3:30분이었다. 그런데 우리가 들어간 시간은 5시 45분?? 다행스럽게 호박죽 단체 주문이 있어서 열어두셨고 그 겸 우리는 호박죽 서비스까지 받았다. 비빔밥과 국수를 다 먹어갈 즈음 숙소로 이동할 택시를 불렀다.
이 근방의 택시가 안 잡힌다. 30분 거리에 택시도 안 잡힌다. 난감해지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주말엔 택시도 안 잡히고 버스도 금방 끊긴다는 거다. 할머니가 나오시더니 버스 편을 알아봐 주신다. 7:07분 마지막 버스 한 대만 남은 상황이었다. 이미 이 국숫집은 문 닫을 시간이 훨~씬 넘었음에도 할머니는 책자를 들추며 여기서 그냥 기다리라 하신다. 바람 불고 추우니 기다려야 한다며 우리를 잡아두신다. (육지였으면 문 닫을 거예요.라고 했을 텐데... ) 40분을 넘게 기다리기 미안했다. 우리는 달랑 국수 2개와 비빔밥, 2만 원도 안 되는 밥값만 치렀을 뿐인데 말이다.
할머니의 둘째 따님처럼 보이는 분이 우리에게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먼저 말을 걸어오셨다. 알고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을 어머니와 함께 걸으셨단다. 우리 아이들에게 스페인어로 "부엔 까미노" 라 인사를 건네신다. 집에 데려다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말이다. 참,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많음을 느낀다. 이들이 우리에게 내어준 시간과 환대를 잊지 못할 거다. 우리 가정도 누군가에게 난감한 상황에 손 내밀어줄 넉넉함을 갖출 수 있길, 이 여행에서 다시 다짐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건넨 "부엔 까미노" 인사말도 말이다.
여행자센터에서 만난 여행자들과 올레지기들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 제주 올레 여행자센터에는 올레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있다. 샌딩서비스로 아침마다 함께 차를 타고 가는 동안 만난 여행자들, 아이들과 함께 걷는 우리에게 핫팩과 귤, 간식을 나누어 주신다. 올레길의 피로함과 배고픔을 달래주게 했던 귤인심과 간식인심을 후하게 받는다. "오늘은 몇 코스 걸어요? 여기 밥집이 맛있어요. 여기는 꼭 가봐요. 여긴 먹을 데도 없고 쉽지 않으니 아이들이랑은 피해요." 이런 정보도 얻는다. 그래서 두 코스는 변경도 하고 말이다. 우리의 계획이 완벽하지 않음을, 유연하게 계획을 바꾸어 나가며 알아보는 재미도 있었다. 인생의 여정도 우리의 계획과 뜻대로 되지 않듯이, 그리고 더 나은, 혹은 더 좋은 길로 인도되듯이 말이다.
올레지기들: 여행자 센터의 올레지기들의 환대 또한 기억될 것 같다. 아침 조식을 먹으며, 출발 전 항상 따뜻한 응원을 받으며(간식도 받으며), 걸음의 끝 숙소에 돌아온 시간, 언제나 따뜻한 환대가 있었다. 오늘도 다 걸었어? 와~~ 정말 대단하다. 몇 킬로를 걸은 거야? 하며 같이 올레 passport를 봐주며 아침저녁으로 맞아주었던 그들의 응원과 인사가 있어서 우리 아이들의 어깨가 덩달아 들썩였던 거 같다. 그래서 또 걸었겠지.... 그래서 가능했던 168.3km다.
여행자숙소 앞에 귤 파는 할머니
- 6박 7일간 제주 올레여행자숙소에서 묶으며 나는 보지 못한 것을 아이들은 보고 있었다. 바로 여행자센터 앞에 귤파시는 노점상 할머니다. 그 할머니의 귤을 사 먹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귤을 많이 받았는데?? 그다음 날 이른 아침 공유주방에서 텀블러를 닦는데 할머니가 보인다. 새벽 6시, 누가 이 시간에 귤을 사실까? 하지만 할머니는 같은 시간 같은 장소 같은 루틴대로 주변의 쓰레기를 주우시고 정리하싱 뒤 이불을 덮고 앉아계신다. 그래, 이 숙소에서 떠날 때 귤 듬뿍 사가자!! 고 약속을 했다. 여행 4일 차, 여행자 두 분이 아이들 춥지 않겠냐며 일회용 핫팩을 듬뿍 주신다. 제로웨이스트를 지향하는 우리 가족은 일회용 핫팩을 써본 경험이 없다. 이걸 어쩌나… 아이들은 바로 귤 파는 할머니께 드리자는 거다. 추우실 거 같다며.. 난 아이들에게 배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과 필요를 아는 눈을 말이다. 다음날 아침 핫팩을 드리고, 숙소를 떠나는 날 한라봉을 샀다. 할머니가 “난 딸이 없어. 며느리도 딸이 없고… ”딸래 미 한번 안아보고 싶다며 우리 아이들을 꼭 안아주신다. 따뜻한 포옹, 짧은 만남이었지만 아이들이 건넨 마음이 할머니에게 잘 전해지고 이곳에서 건강하게 귤을 파시길, 다음번에 제주에 와서도 뵐 수 있길 바란다.
제주의 필요가 보였던 만남
202번 버스 옆자리에 앉은 할머니
올레 10코스를 가기 위해 탄 202번 버스, 내 옆자리에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가 앉으신다. 딱 나의 친할머니 시골집냄새가 난다. 시골할머니들에게서 나는 동일한 이 냄새는 몰까? 하며 생각하는데 할머니는 힐끗힐끗 나를 계속 보신다. 아마 말을 걸어오고 싶으신 게지…
인사를 건네니 어디서 왔는지 묻더니 제주방언(아주 세서 40%밖에 못 알아먹을 정도, 단어로 유추될 정도)으로 자기 몸이 아프다, 병원 가는 길이다. 병원비랑 교통비가 공짜다. 거기까진 그런가 보다 하고 흘겨 들었다. 그런데 “공짜야, 그게 4.3”이라는 순간 더 열심히 대꾸를 해드렸다. “아 그러셨어요? ” “4.3, 오빠가 죽었어. 그래서 공짜야” “아, 네.. 고생 많으셨어요. ” 그렇게 반복된 30분간의 이야기였지만 더 열심히 들어드리고 더 큰소리로 대화를 했다 ”할머니 건강하세요 “ 정말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외롭지 않게 이 나라가, 제주가, 시민들이 제주 역사의 진실과 그들의 삶을 책임져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여실히 들어왔다.
섯알오름에서 만난 양신하 할아버지
202번 버스에서 할머니를 만나고 올레길 10코스를 걷는데 송악산을 마주하며 격납고와 지하벙커가 낮은 동산처럼 즐비했었다. 그 길을 따라 일제강점기 제주도는 공군기지, 무기고, 약탈과 수탈의 장소였음을 다시 깨닫는다. 그렇게 다크투어리즘 길을 걷다가 섯알오름-추모비석들 앞에 할아버지가 서계신다.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 할아버지는 자신은 양신하이며 공산당도 아니고 공산당일 것이라는 예비검속 사건에 연루되어 가족과 선생님을 잃었다고 한다. 자신이 일평생 써온 일기장을 간직한 할아버지, 군사정권시절에 사건을 파해지치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서 활동하시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서서야 한국에 돌아와 이 사건들을 수면 위로 올리며 법정에 서시고 나이 90세가 넘어서도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학교에서도 아이들을 만나고 계신다고 한다. 양신하와 예비검속을 기억해 달라는 호소 어린 목소리, 그 외침에 또렷하다. 아직까지도 총기가 어려있는 이유는 자신이 살아가야 하는 이유가 분명해서 아닐까? 자신이 남긴 기록이 역사가 되고 그 역사를 고증하며 남은 자가 죽은 자를 대신하는 삶, 그 삶을 존경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 제주의 역사를 기억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한 날이기도 하다.
버스정류장에서 만난 90세 할아버지와 해변의 쓰레기 줍는 할머니
어떤 날인지 분명치는 않지만 숙소로 들어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데 건장해 보이시는 할아버지가 우리 가족에게 말을 걸어오신다. 어디서 왔는지, 나 또한 제주에 온 지 10년 되었다고 하신다. 그런데 내 나이가 몇인 거 같아 보이냐고 물으시더니 내년에 90이 되신단다. 너무 정정하셨다. 자신이 육지에서는 상상할 수 없지만 제주에 와서 다달이 130만 원을 번다고 하신다. 그 이유를 물으니 제주도는 쓰레기가 문제야.라고 하신다. 맞다. 나 또한 제주 해변가의 폐어구와 쓰레기가 넘쳐남을 알고 있었다. 줍깅을 밥먹듯이 했던 시절이 있어서인지, 해변가의 관광지 앞에 즐비한 카페의 유리창 너머의 일회용 컵과 테이크 아웃잔이 내 속을 울렁거리게 만들었다. 협재와 곽지해변을 지나니 사람이 붐빈다. 낫과 괭이, 포대를 들고 다니는 할머니들이 눈에 띈다. 관광객이 눈에도 그들이 눈에 띌까?
관광지가 겪는 그 몸살 앞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가? 걸어온 발자국에 책임지는 시민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여행자라면 텀블러에 음료를 테이크 아웃하며 내가 사랑하고 내가 즐기는 제주도에 대한 예의를 갖추면 좋겠다. 그 예의가 사람만이 아니라 자연과 그 안에 더불어 사는 비인간 존재들에게 말이다.
걸으니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인 만남들이 생겼다. 그곳(제주)의 필요, 세상의 필요를 토착민들을 통해 알았다. 여행의 길은 단지 우리 가족만의, 나만의 길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