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학교로...

나는 살, 림하는 과학교사입니다.

by 살림하는 과학교사

나의 정체성은?

첫 번째, 하나님의 자녀

두 번째,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

세 번째, 교사다.


첫 번째, 두 번째의 정체성은 내려놓으래야 내려놓을 수 없는 나의 삶이다. 그런데 세 번째는?

자신이 사랑하고 좋아하는 것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들, 즉 덕업일치인 자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열정도 직업을 통해, 행복도 직업을 통해, 삶의 의미도 직업을 통해 이루어 나가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그 안에서 항상 행복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나는? 덕업일치자는 아닌 거 같다. 학문 중에 과학을 좋아하는 것도 맞고, 아이들 앞에 서서 가르치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의 은사인가? 내 재능이 가르침으로 발휘되는가? 행복한가? 를 묻는다면 이전의 나는 아니올시다였다. 한 영혼들을 사랑해내야 하는 것, 그리스도인다운 교사로 살아가야 하는 것은 언제나 의문이었고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코로나를 겪으며 정말, 스러져가는 존재들, 미래세대에 대한 긍휼함이 내 마음에 진심으로 와닿았다. 그러고 나니 내가 교단에서 무엇을 헤야 할지 내 열정을 쏟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했다. 그리고 나는 살림하는 과학교사가 되었다. 살림, 집안 살림도 정말 살림이다. 그리고 나는 생명을 지키고 살리는 것에 집중하는 과학교사가 되고 싶었고,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나의 닉네임이자 부캐가 살림하는 과학교사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작년 한 해 육아휴직 이후 3월, 두려움이 엄습했다. 두려움의 영이 내 눈과 귀와 속을 사로잡고 있음을 깨닫는다. 두려움은 다른 사람들을 질투하고 원망하고 외면하게 한다. 두려움은 내가 충분치 않다고 비난한다. 거대한 세상의 문제는커녕 지극히 작은 내 마음의 문제 앞에서조차 나의 실력과 그릇이 얼마나 빈약한지 되뇐다. 무엇보다 두려움은 내가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부끄러운 존재라고 정죄한다. 두려움에 눈이 가려 내 삶에 이미 가득한 사랑과 은혜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향한 그의 사랑을 확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닌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다. 두려움과 조급함은 의지적으로 내려놓아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신실한 사랑 앞에 스르르 녹아내리는 것이다.


올해는 만나는 학생들 학급의 아이들에게 첫 시간 우리 동네 부엉이를 , 1년간 갯벌 모니터링을 하며 만난 저어새와 도요새를, 우리 집 전깃줄의 제비와 뻐꾸기를, 새매와 새오라기를, 누에나방고치와 박각시애벌레를 보여주면서 살아있다는 것, 그 살아있음을 공부한다는 것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했다. 나. 가족 친구 사람 이외의 생명과 호흡하고 그들로부터 에너지와 양분을 얻고 생태계 내 물질들이 순환하는 것은 참 경로운 일이다. 하지만 콘크리트 건물 안에 작은 교실 안에 앉아서 책으로 만 난 세상은 그리 흥미롭지 못하고, 문제풀이와 암기를 통해 공부하며, 잠재적인 경쟁자이자 친구들과 입시 경쟁에 시달린다.

이리도 아름답게, 신비롭게 만드신 피조물이 바로 창문 너머에 있는데... 하나님의 현존을 느끼지 못하고 점점 감각을 상실해 가는 시대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사랑하기를 멈추지 말라하시는 것 같다. 매일 아침 눈을 뜰 때마다 하나님이 불어주시는 숨이 아니면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아니면 그저 티끌뿐인 인생인 것을...


하나님, 생명을 허락하심에 감사하며 아이들을 만나고 오겠습니다. 매일 사랑 없음에 굴하지 않고 사랑하기를, 희망 없음에 꺾이지 않고 계속 희망하기를, 모든 불신을 거슬러 신뢰함으로, 모든 파괴에 맞서 창조질서의 보존을 위해 행함으로 나아가길 오늘도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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