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살아가는 당신에게...
나는 현재 인생의 세발 자전거를 열심히 타고 있다. 한 바퀴는 교직에서 학생들과 선생님들과 함께 굴리고 다른 한바퀴는 가정에서 아내로 엄마로 딸로 살고, 마지막 한바퀴는 야간에 대학원을 다니며 배움을 확장하고 있다.
지금 내가 다니는 대학원 수업 중 하나는 더불어 숲-책읽기와 삶쓰기라는 수업이다. 과제로 절절매고 기록하고 배우는 수업이라기 보다 교수님과 다른 선생님들과 책을 읽고 나누며 자신의 생각과 연결된 나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세상의 문제들에 연결에 연결을 더해가고 있다. 보통은 수업만 듣고 그 자리를 뜨는 것이 대부분의 대학원 수업인데 이 수업은 처음부터 끝가지 긴장없이 평가하지 않고 많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이 수업의 마지막 과제로 내 인생의 주문? 삶의 기도문? 을 써보자.. 라고 하셨을 때 나는 세상은 째려보고 있으면서 내 인생을 찬찬히 돌아본적이 있던가? 하루하루 살아가며 응원해본 적이 있던가? 싶었다. 그렇게 한주간 자리에 앉아서 한 문장도 쓰지 못하고 머릿속에서만 맴돌았다. 그렇게 한자한자 기록한 것을 이곳에 담아본다.
1. 세상을 바라보는 나-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
깨달음은 때때로 조용한 기억처럼, 무언가 잘못됐다는 가장 약한 암시처럼 당신에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라는 말처럼 나는 깨닫지 못했고 알지 못했던 나의 과거에서 신앙이 생기고 교사가 되고 또 아내가 되고 엄마가 되면서 서서히 알게 된 세상의 문제들 한 가운데 살고 있는 40대가 되어있었다. 나는 그 다양한 세상의 외침들을 외면할 수도, 회피할 수도 없는 대한민국의 시민이 되어 있었던 것이였다. 그래서 자연스레 대학원을 오게 되고 내 삶은 다시 확장되고 채워지며, 이전의 것들을 비워나가고 있는 것 같다.
인간이 갖추어야 할 기본적인 삶을 위한 교육과 주거, 돌봄, 복지 시스템은 개인과 가족에게 던져지듯 맡겨져있고, 이는 능력과 성장주의라는 치마폭에 가리워져 우리는 그것이 잘못된 시스템인지 모르고, 인간답게 살 권리를 박탈당한 채 살아간다. 나 또한 내 능력이, 내 물질이 나를 나타내주는 지표라 여기며 그렇게 속아서? 세상을 서른 넘게 살아왔었다.
정말, 이 세상은 끝없이 경제지표로 환산해서 판단하여, 얼마나 벌고 얼마나 지출할 수 있는지를 가지고 인간의 가치를 잰다. 즉, 우리는 자본주의 아래 남들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 더 많이 지출할 수 있는 능력을 얻기 위해, 자신을 착취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였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을 잠재적 경쟁자라 여기며, 경쟁에서 이기는 것이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도 되는 것마냥 내면화되어 그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행복한가? 돈과 물질이 주인 노릇하고 있는 세상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은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이다.
2. 아름다움을 향유하며 매일을 경탄하기
그렇다면 나에게 자족하는 마음과 감사는 언제 흘러나오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나는 창조세계에 대한 아름다움을 향유할 때 감사할 수 밖에 없고, 자족할 수 밖에 없으며, 겸손해 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우리에게 주어진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한 채 세상의 방향 그 흐름대로 경쟁과 노력이 내면화되어 쫒기듯 살아간다. 그래서 이웃과 자연 세계와의 친밀한 사귐도, 아름다움을 보는 눈도 가리워진 존재가 되었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아름다움으로 향유할 수 있는 내적 능력이 내 안에 있을 때 내 속에 결핍감도 무능함도 사라지고 자유로워짐을 고백한다. 창조 세계의 아름다움을 향유할 수 있는 사람이 되자. 경탄하며 살아가자.
3. 지금, 이 순간순간을 살아내자. 빛날 수 있도록...
그리고 지금, 이 순간순간을 살아내자. 전도서의 말씀처럼 심을 때가 있으면 거둘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는가 하면 허물 때가 있고 만날 때가 있으면 헤어질 때가 있다고 한다. 세우는 것만, 심는 것만, 나아가는 것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허물 때도, 헤어질 때도, 물러설 때도, 거둘 때도 있는 것이다.
그저 이 순간이 빛날 수 있도록 살아가자. 그리고 다른 이에게도 세상과는 다른 방향을 말하고 꿈꾸며 살아내는 사람이 되자. 그런 빛을 비출 수 있는 존재가 되자.
4. 선한 또라이여서 좋다.
그렇게 요즘 나는 선한 또라이가 되어간다. 팬데믹 이후 신음하고 고통받는 창조 세계 안에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유산이 더럽혀지고 착취당한 산물이라니.... 나는 언제부턴가 생명을 살리는 일
에 집중하기로 다짐하고 살아가기 시작하면서 부딪히는 문제들, 불편함. 어려움들(가족, 친구, 지인, 학교, 교회 등 나와 맺는 모든 관계) 이 무수히 또 많았다. 이 가운데 내가 뭐 하러 이런 짓을 하는 건가? 내가 한들 이 세상이 바뀌나? 하면서 혼자 세상의 벽에 향해 소리쳐 보고 발길질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또 결론을 내린다. 그래... 그것이 어떤 반응으로 어떤 소리로 어떤 결과로 나를 흔들지 몰라도, 나는 간다. 또라이처럼... 언젠가 빛을 비추었던 등대로 기억되는 선한 또라이 말이다.
5. 인생은 언제나 예측불허, 그리하여 삶은 의미를 지닌다.
이렇게 살다보면 또 다른 상황이 또다른 문제가 또다른 기쁨이... 펼쳐질 것이다. 이 문장은 신일숙 작가의 '아르미안의 네 딸들'에 나오는 문장이다. 사실 내 맘대로 풀리지 않는 것이 어디 한구가지 겠는가? 그 때마다 마음을 잡아주는 글이다. 빨강머리 앤의 한 구절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앤: "제 야망은 달라지지 않았어요 다만 대상이 바뀌었을 뿐이죠. 전 훌륭한 선생님이 될 작정이고 아주머니의 눈을 지켜드리겠어요. 그리고 집에서 공부해서 대학과정을 독학으로 마쳐보겠어요. 어, 아주머니. 그동안 내내 생각을 했어요. 퀸을 졸업했을 때는 제 앞에 한줄기 똑바른 길이 뻗어 있는 것 같았어요 , 하지만 지금은 길모퉁이에 있어요 그 모퉁이를 돌면 어떤 것들이 절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죠. 그 앞에 놓인 길은 빛나는 녹음과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의 빛과그림자에 둘러싸여 있을지도 모르구요. 아름다운 모퉁이와 언덕, 그리고 골짜기 등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전 제일 좋은 것이 있으리라 믿어요. 그러니까 전력을 다해서 해보겠어요.
6. 알 수 없는 두려움, 불안앞에.... 보다 위대하고 근원적인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기.
당대 의로운자라 여겼던 욥이 알 수 없는 고난과 배신, 아픔, 죽음의 순간까지 몰렸을 때 욥은 미처 날뛰듯 외친다.. 왜 나에게.... 라고...그 때, 하나님은 침묵하시며 그저 욥을 데리고 온 세상을 두루 살피셨다. 영적으로, 물리적으로 무한해 보이는 우주 공간 속의 영원한 침묵은 욥을 엎드려 뜨렸다. 나 역시 죽음, 우주, 그 본질을 생각하면 참 두렵다. 이 공간에 존재하고 있는지 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나는 너무나 미약하고 불완전한 존재이다. 이 작은 존재인 나는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 매몰되지 않고 근원적인 것, 영원한 것을 생각하며, 본질적인 내 삶을 빼앗기지 말기로 한다. 두려움을 주는 대상에게 내 삶을 희생당하거나 압도당하지 않고 보다 위대하고 근원전인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고자 한다.
시간이 날 때마다, 어려울 때마다 이렇게 이 공간에 끄적인 것들을 마음에 새기고 다시 비우고, 새롭게 새기며 하루하루를 찬란하게 살아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