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막연하게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 시절엔 무얼 하고 싶으면 엄마에게 먼저 물어보고 뭐든지 했으니. 좋아하는 게임을 하는 것도, 교과서가 아닌 다른 소설책을 읽는 것도, 교복이 아닌 다른 옷을 입고 나가는 것도 전부 눈치를 봐야 했다.
나는 빨리 어른이 되어 자유롭게 살고 싶었다.
대학생이 되었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밤새 할 수 있었고, 다음날 무얼 입고 갈지 자기 전에 항상 생각을 하며 잠에 들었다. 수업도 듣기 싫으면 안 들어도 되었다. 하지만 그 뒤엔 대가가 따랐다.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입학을 했지만, 성적이 낮아 다음 학기 장학금 지급이 되지 않았다. 엄마에게 눈치가 보였다.
내가 좋아하는 게임을 밤새 하지 못했고, 도서관에 앉아 있기 편한 옷을 항상 입었다. 수업을 들을 때는 녹음기를 켜고 항상 강의를 들었다. 내 용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를 했으며, 공부는 생각보다 어려웠고, 장학금을 유지하기 위해 매번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았다.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회사에 입사를 했다.
더 이상 과제에 치이지 않아도 되고, 어려운 물리 이론으로 밤새 앉아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다. 장학금을 받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지 않아도 되었고, 육체적 노동인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서 가장 커다란 대기업에 입사를 했기 때문에, 돈 쓰는 것에 의식하지 않고 카드를 긁어도 통장엔 항상 돈이 쌓여 갔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임기와 게임들을 가득 샀다.
저녁엔 집에 와서 게임을 했다. 하지만 30분을 채 하지 못하고 소파에서 항상 잠이 들었다. 아침 6시, 알람 소리에 깨어 다시 출근을 했다. 신입사원을 벗어나자마자, 회사 업무에 대해 나는 중요한 결정권들을 내릴 수 있었고, 그에 따른 책임감도 뒤따라 왔다. 한 번은 정산 건에 관한 실수를 했는데, 이것을 용납해주지 않았다. 억울하다면, 상대방에서 잘못 기입하여 올라간 것을, 담당자였다는 이유로 사유서와 대면보고까지 했었지.
나는 어른이 된 줄 알았지만, 아직 어른이 되지 못했다.
점점 나이가 들고 내가 생각한 어른에 가까워질수록, 내가 원했던 자유는 더욱 사라지는 것 같다.
정확히 말해 자유에 대한 책임감이 한층 무거워지는 거겠지. 이것은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어깨를 더욱 짓누르고 숨을 턱턱 막히게 한다. 사소한 실수도 절대 용납되지 않는다.
대학을 선택한 것도 나였고, 입사를 선택한 것도 나였다. 삶은 선택의 연속으로 선택에 따른 모든 책임이 나에게 돌아오고, 죽도록 열심히 해도 인정받지 못하거나 비수가 되어 되돌아올 때도 있다.
어릴 때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소위 말하는 나쁜 짓도 해보고, 좋게 말해 많은 도전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쉽게 도전하지 못한다. 실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선택에 대한 책임이라는 말로 상처 입은 경험 때문이겠지. 우린 '내가 가능해?', '언제 철들래', '난 이미 늦었어' 같은 말들을 앞세워 시도조차 하지 않고 포기해버린다. 스스로 한계를 두고 현실적이라는 말로 가장해 스스로 결심을 무너트려버린다.
우린 도전이라는 출발에 항상 많은 브레이크가 걸려있다.
나는 퇴사를 했다.
29살이 되던 2월에 퇴사를 했다. 선택에 있어 책임이 뒤따르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던 일을 그만두고 다른 것을 시작한다는 건 삶을 통째로 뒤바꾸는 모험이다. 퇴근하는 버스 안에서 나는 창밖을 보며 이런 생각을 했다.
'매일 이렇게 직장만 다니고 똑같은 하루를 보내는 것이 내 인생의 끝으로 가는 길이라고? 갑자기 해고라도 당하면, 내 인생의 미래는 누가 보장해 주는 것인가.'
이대로 안주하여 쳇바퀴를 돌리는 다람쥐 인생처럼 사는 것이 맞는 것인지 고민을 했다. 나는 곧바로 삶을 완전히 뒤바꿀 결정을 했다.
나는 해보고 싶은 것이 너무나 많았다. 비록 그것이 남들이 볼 때는 '그거 하려고 퇴사했어?', '너는 진득하지 못해'라는 말을 해도 나의 선택을 후회하거나 의심하지 않았다.
살아있는 이상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어도 앞으로 나아갈 수는 있다. 인생의 끝은 모두가 평등하다.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의 발걸음은 우리의 자유이자 선택이다. 나의 선택으로 훨씬 힘들고 멀리 돌아가는 길을 선택한다 해도, 어차피 그 끝은 모두가 똑같다.
나는 가장먼저 약학대학 입시를 준비했다. 궁극적인 목표는 대한민국에 살면서 서울대학교에 한번 다녀보는 것이었다. 2번의 시험이 지나고, 아직 서울대학교에 입학하지는 못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기에 나는 여전히 여기에 도전을 하고 후회 없이 임할 생각이다.
최선의 선택을 하되, 내가 한 선택에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모두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성장을 하기에,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다시 돌아가거나, 쉬면서 다른 길을 찾아 천천히 걸어가면 되기에.
나는 이 시기에 다양한 것을 시도해보았고 평소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나씩 하며 경험하는 중이다.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이것의 하나이고, 유니클로에서 일을 해보는 것도 이것 중 하나이다. 다음 계획에 있어 나는 주저할 시간이 없다. 너무나도 많기 때문에.
누군가는 이것을 읽으며 실패자의 합리화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는 당신이 말이 맞을지도.
어릴 적에는 마음속 꿈이 있었고, 용기와 무모함이 있었다.
불확실한 길에 있어 당연히 꺼리는 것은 정상이다. 하지만 자신이 끌리는 길에 들어선다면, 평탄하지는 않아도 거기에 있어 설렘을 느낄 수 있다. 항상 앞만 보고 달렸던 길에 내려와, 차근차근 주위를 둘러보며 걸어가는 것도, 자신이 몰랐던 수많은 길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 줄 것이다.
정말 역설적이게도 가장 어릴때의 나 자신으로 돌아가니, 어른이 되었다고 느꼈다.
어릴 적의 용기와 무모함을 가지고 29살인 나는 비로소 어른이 되었다.
'괜찮아, 다시 하면 돼', '더 잘해서 해보자'라는 용기 내어 도전하는 것을.
조금 부족해도 괜찮다. 실패해도 괜찮다.
얼마든지 다시 하면 된다.
가끔은 현재에 대해 불안해하며 스스로의 선택에 있어 의심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불안감에 휩싸여 스스로를 멈춰 세우지 말았으면 한다.
인생을 여행처럼, 모험처럼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