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어》를 읽고
책을 처음 펼치면 보이는 개와 생쥐의 뒷모습이 쓸쓸하다. 창문을 바라보는 이 둘은 웃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그렇게 느껴진다는 건 무엇 때문일까? 책 제목에 늙은 개라고 했으니 죽음이 다가오고 있다고 느껴서일까? 그럴지도 모른다. 그림책 본문을 읽으면 반복과 말놀이 같은 문장 때문인지 시를 읽는 기분이 든다. 글 전체에서 느껴지는 것은 희망보다는 쓸쓸함과 외로움이다.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끝난다.
나의 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어.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행복하게 꿈꿀 수 있도록. 되어 본 적 없는 것도, 되어 본 것도 꿈꾸도록. 즐겁게, 자유롭게.
여러 번 다시 읽어도 쓸쓸하고 슬프다.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처럼 들린다. 창 너머 풍경을 바라보며 즐겁게 자유롭게 꿈꾸길 바라는 것이 희망적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뭔지 생각했다. 개를 키워 봤다면 알 것이다. 개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은 산책이라는 것을. 산책은 집 밖으로 나와 냄새를 맡으며 자유롭게 여기저기 돌아다니는 것이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으로 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 나이가 들어 거동이 불편해진 개는 산책하기 싫어한다는 말은 들어 봤다. 내가 키웠던 19살 구름이는 떠나기 일주일 전에도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고 걷는 것이 불편해서 이동 캐리어에 태우고 공원으로 간 다음 풀밭에 내려놓으면 빠르지 않은 걸음이더라도 여기저기 킁킁 거리며 돌아다녔다. 사람으로 치자면 거동이 불편한 사람이 더 이상 외출이 어려울 때 창 밖 풍경이라도 보면서 자유롭고 즐겁게 상상하라는 것인데 이것이 과연 희망적인 것일까? 그것이 그를 위로하는 일일까?
한 생명을 책임지고 돌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좋은 일, 나쁜 일, 힘든 일 등등을 겪으며 그 끝에 남는 것은 함께 한 시간들뿐이다. 이 그림책은 세상을 떠난 개를 잊지 않고 그리워하며 지은 책이라는 생각에 가닿았다.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차분해지고 위로가 되면서 마음이 따듯해진다. 마지막 말 ‘즐겁게 자유롭게’가 더 크게 가슴에 남았다.
《지혜로운 늙은 개에게 창이 되어 주고 싶어》/필립 C. 스테드 지음/강무홍 옮김/주니어 RH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