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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벌레 Jul 23. 2023

[작문] 모든 것이 뒤죽박죽

주제: AI


긴장감이 감도는 집. 남자는 조마조마하며 인덕션의 전원 버튼을 누른다. 작은 목소리로 하나, 둘, 셋을 셈과 동시에 버튼을 꾸욱. 잠깐의 정적이 흐르더니 갑자기 옆에 있는 정수기 물이 뿜어져 나와 그 밑에 놓여진 컵에 담긴다. “휴 드디어 성공이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남자는 컵을 향해 손을 뻗는다. 하지만 손이 닿는 순간 예상하지 못한 감각이 느껴지고 남자는 황급히 컵에서 손을 뗀다. “젠장 이건 뜨거운 물이잖아!”


처음은 4일 전이었다. 그 날 저녁, 남자는 일을 마치고 퇴근하여 평소처럼 아파트 1층 로비에 당도하였다. 남자의 집은 13층. 남자가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해 버튼을 누르자, 엘리베이터는 꿈쩍도 안하고 갑자기 옆의 비상계단 문이 덜컹 열렸다. 잠깐 놀랐지만 남자는 이내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고 판단을 한 다음 불평하며 계단으로 향했다. 그렇게 13층까지 힘겹게 걸어오른 뒤 문앞에 도착한 남자는 여느 때와 같이 도어락의 비밀번호를 눌렀다.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가려는 남자의 의도와 다르게 갑자기 옆에 있던 소화전이 물을 뿜기 시작하였다. 당황한 남자가 황급히 손으로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한참 뒤, 남자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 된 채로 힘겹게 복도 창문을 넘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티비 리모컨을 누르자 변기물이 내려가고, 샤워기를 틀면 에어컨이 작동하였다. 처음에는 계속해서 발생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에 퀴즈를 푸는, 혹은 방탈출을 하는 느낌도 들어 조금은 재미있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남자를 긴장과 공포로 몰아넣는 사건이 이틀 차에 발생했다. 평소 익명성에 기대 악플을 즐기는 인터넷 커뮤니티 헤비 유저인 남자는 그 날도 취미를 즐기기 위해 컴퓨터의 전원을 눌렀다. 하지만 의도와 달리 컴퓨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남자는 열심히 주변에서 컴퓨터의 전원이 무엇일지 찾아 헤메기 시작했다. 그렇게 30분가량이 흘렀는데, 갑자기 주방 쪽에서 ‘쾅' 하는 소리가 났다. 깜짝 놀란 남자가 달려가보니 빨갛게 달궈진 유리조각들이 사방 팔방에 튀어있었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자 인덕션이 작동하였고, 그 위에 있던 빈 유리 냄비가 혼자 달궈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아 이거 진짜 위험한 상황이구나’ 순간 소름 끼치는 느낌이 남자의 등줄기를 타고 지나갔고, 그 때부터 남자는 행동 하나하나에 신경을 곤두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지금까지, 남자는 극도로 예민한 상태가 되어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



그리고 일주일 전,


“하이 헬봇, 다음 데이터에 적합한 지옥을 설계해줘” 저승사자가 앞에 있는 모니터 화면 속 인터페이스에 데이터 파일을 업로드하며 말했다.


“데이터 확인 중… 홍길동 32세, 남, 중요 죄목은 악플, 유명인과 일반인 가리지 않고 말과 행동의 의도를 왜곡하여 공격적인 발언을 인터넷 세상에 쏟아냄, 남긴 악플 기록 376건, 퇴근길에 핸드폰을 사용하며 걷다 달려오는 차를 보지 못하여 사망…”


요새 저승의 풍경이 많이 변화하였다. 과거 지옥들의 설비 노후로 인해 유지 보수에 계속해서 큰 예산이 들어갔고, 또한 지옥의 다양성 부족으로 죄 지은 영혼들에 대한 처벌 일반화의 불공정에 대한 문제가 계속해서 제기되었다. 억울함을 토로하는 일부 망자들 사이에서 사적 제재의 움직임까지 등장하였고, 해당 문제들을 인식한 저승은 결국 AI를 활용해 망자들에게 맞춤형 VR 지옥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결정하였다. 3일장이 모두 마무리된 뒤 영혼이 인도될 차례가 되면, 그 영혼의 정보가 담긴 영혼 데이터 파일이 저승에 먼저 도착한다. 그러면 AI 담당 저승사자가 저승 AI 챗봇 ‘헬봇’에 해당 데이터 파일을 입력한다. ‘헬봇’은 검토한 데이터를 토대로 맞춤형 지옥을 설계해주고, 이를 VR 실무 사자들이 전달받아 VR 지옥으로 구현한다. 그렇게 완성된 지옥은 염라대왕의 최종 결재를 거쳐 망자에게 하달된다.


“…맞춤형 지옥 설계 중… 의도를 왜곡해 악플과 루머를 생성…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와 고통을 줌… 생성 완료. 지옥 명 ‘뒤죽박죽’ 지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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