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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얼레벌레 Nov 24. 2021

[수필] I’m twenty-fiv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You’re my Boo,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한


 2009년,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었을 때, 어학연수를 위해 어머니와 동생이 호주로 떠나서 몇 달간 아버지와 둘이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 아버지도 아침 일찍 출근하셨기에 사실상 아침에 일어나 아버지가 저녁에 퇴근하실 시간까지 나는 늘 혼자였다. 당시 나에게는 두께가 2cm 정도 되는 벽돌같이 커다란 핸드폰이 있었는데, 혼자 있는 시간에 그 핸드폰으로 당시 지상파 DMB 채널 중 U1이라는 채널에서 자주 틀어주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이 일상의 낙이었다. 항상 비슷한 시간대에 시청을 해서인지 아니면 계약한 비디오 수가 적어서인지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채널에서 볼 수 있는 뮤직비디오가 몇 개 없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나오던 뮤직비디오는 당시 데뷔 1년 차 고등학교 1학년 신인 가수였던 ‘아이유’의 ‘Boo’라는 노래의 뮤직비디오였다. 집에서 혼자 외로운 시간을 보내던 내게 밝고 신나는 노래와 유치한 영상이 꽤 위로가 되었고, 이는 내가 본격적으로 대중음악을 즐기고 한 가수의 팬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

 당시 아이유는 지금만큼 인기 있는 가수가 아니었다. 당시 내 또래 친구들에게 여자 가수는 소녀시대, 원더걸스 혹은 가끔 가다 카라, 브라운아이드걸스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틈바구니 속에서 내게 아이유의 음악은 숨어서 듣는 명곡이었고, 나는 대중음악의 수동적인 수용자였다. 하지만 약 1년 뒤 ‘좋은 날’의 성공과 함께 아이유는 큰 인기를 끌었고, 그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이제는 한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자리 잡았다. 초등학교 6학년 시절부터 지금까지 내 정체성의 형성과 변화 저변에는 항상 대중음악이 있었고, 그 중심에 아이유의 음악이 있었다. 아이유의 음악은 내 일상에 새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아이스크림보다 달콤한’ ‘Boo’ 그 자체였다.



감히 이 마음만은 주름도 없이, 여기 반짝 살아있어요

 데뷔곡인 ‘미아’ 때부터 아이유의 음악에는 당시 유행했던 후크송 기반의 양산형 아이돌 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가창력과 유치하지 않은 가사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나에게는 이런 음악 내적인 특징들이 대중음악으로서의 완성도로 다가왔고, 그러한 완성도를 기준으로 대중음악의 급을 나누었던 내 모습은 당시 내가 가지고 있던 미숙한 가치관과 정체성을 반영한 모습이었다. 그렇게 ‘아이유는 공장에서 찍어낸 것 같은 다른 아이돌 가수들과는 달라’라는 차별화의 마음에서 비롯된 팬심으로 음악에 매료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아이유 음악의 내적인 요소에 조금 더 집중했던 시기였고, 스스로를 그러한 급의 차이를 구별해내는 특별한 귀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청소년기를 지나 성인이 되는 과정 속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기준만으로 음악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동시에 더 이상 그러한 기준들이 나를 음악에 매료시키는 요소로 작용하지도 않았다. 반면 시야가 넓어져 어릴 때는 볼 수 없었던 음악 외적인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이러한 것들이 나를 음악에 매료시키는 새로운 요소들로 작용했다. 물론 매체 혹은 공연장에서 비춰지는 공인으로서의 모습뿐이라 할지라도 아이유라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는 내게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연예계 대표적인 미담 자판기로 손꼽힐 만큼 비춰진 선행이 많았고, 미디어 속 아이유는 연기, 노래 등 어느 것 하나 빠짐없이 열심히 잘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는 동시에 겸손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외적 요소가 음악 내적인 요소들과 결합하면서 기존에 아이유라는 인물과 아이유의 음악에 대해 가지고 있던 생각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내가 가진 생각의 변화는 역으로 내가 받는 영향력의 변화로 이어졌다. 단순 팬심은 존경하고 동경하는 마음이 되었고, 내게 아이유는 삶의 태도와 가치관을 닮고 싶은 롤모델이 되었다. 아이유의 음악은 그냥 좋은 노래 이상의 의미를 가졌고, ‘마음’이라는 노래 속 아름다운 가삿말처럼 내 마음속에 ‘반짝’ 살아 빛나기 시작했다.



세상의 모서리, 구부정하게 커버린 골칫거리 Outsider

 어린 시절부터 다른 어떤 취미보다도 음악을 좋아했기 때문에 음악 감상부터 콘서트 관람, 악기 연주, 노래 부르기까지 정말 다양한 음악적 행위들을 해왔다. 기타를 처음 치기 시작한 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그 해 1월경 방영했던 ‘드림 하이’라는 드라마 속 기타 치는 아이유의 모습이 너무나 멋져 보였고, 또 당시 유행한 K팝스타, 위대한 탄생 등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서 나도 사람들 앞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을 졸라 생일선물로 기타를 받은 뒤 학교 동아리에 들어갔지만 어머니께서 학교에 기타를 매고 다니는 모습을 매우 못마땅해하셨고, 결국 나는 어머니 몰래 공연 준비를 할 수밖에 없었다. 기타를 학교에 몰래 가져다 놓고 부모님께 일정을 속여가며 연습을 했던 그 당시가 내 인생의 첫 일탈이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좀 더 적극적으로 음악 행위를 하고자 했었다. 친구들과 개인적으로 밴드를 결성해 돈을 십시일반 모아 합주실을 빌려 연습을 하곤 했었고, 시험기간에 친구들을 꼬드겨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학교에서 도망쳐 노래방을 갔다가 다음날 담임 선생님께 혼난 적도 많았다. 부모님과 선생님들은 나를 아이유 ‘Celebrity’의 가삿말 속 ‘골칫거리 Outsider’라고 생각하셨을지 몰라도, 나는 그런 행위들을 통해 내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었다. 대학교에 진학해 5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여전히 동아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 영상을 만들고 있다.



네 맘 가는 그대로, 지금 내 손을 잡아

 “낭만적인 사람이다.”

 얼마 전 친구들이 나를 두고 한 말이다. 낭만적이라는 말이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라는 표현으로 들리기도 했다. 또래 대학생 친구들이 다들 취업 준비 혹은 취업 후 직장생활로 바쁜 지금도 나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여전히 동아리에서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며 음악 영상을 만들고 있다. 지향하는 방향 역시 남들과는 조금 다르다. 공대생이지만 영상과 미디어 분야에 더욱 관심이 많고, 경쟁이 치열하고 업무가 힘든 진로를 생각하고 있다. 종종 주변에서 이런 내 모습에 대해 ‘철없다’, ‘한심하다’ 등의 평가를 내어놓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혼자 자신을 잃고 스스로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그럴 때 아이유의 음악은 다양한 미디어 속 캐릭터와 합쳐져 내 가치관을 확고하게 세워주는 역할을 해준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한 의문이 들 때마다 답을 제시해주는 것이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아이유의 음악은 내 정체성을 변화시키고 영향을 주는 동시에, ‘마음 가는 그대로’ 흔들리지 않도록 ‘손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해주었다.



I like it, I’m twenty-five.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날

 G-dragon과 함께 팔레트를 부르던 2017년의 아이유는 25살이었고, K-대학교에 입학해 대중음악의 이해 수업을 들으며 글을 쓰고 있는 2021년 현재의 나 역시 25살이다. 물론 25살 당시 아이유의 삶과 현재의 내 삶은 결이 매우 다르고, 내가 이룬 것들은 당시 아이유가 이뤄냈던 성과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미미하지만, 팔레트의 가삿말처럼 스스로를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은, 정체성이 어느 정도 확립되고 앞으로 나아갈 길을 결정하는 시기라는 점에서 비슷한 면도 있는 것 같다. 대중음악을 처음 듣기 시작한 시기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이유의 음악과 함께 했고 계속해서 영향을 받았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중음악은 우리 정체성 형성에 다양한 방식으로 영향을 준다. 누군가의 팬으로서의, 혹은 특정한 음악적 행위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기도 하고, 가치관과 성격에 영향을 주기도 하며, 때론 삶의 큰 위로가 되기도 한다. 아이유라는 사람과 아이유의 음악은 내 정체성 형성에 있어 그런 존재였다. ‘Boo’였고, 반짝 빛나는 ‘마음’이었으며, ‘내 손을 잡아’ 주는 ‘Celebrity’였다. 동시에 나 또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될 수 있도록, 또 내가 앞으로 그려갈 그림을 위한 예쁜 물감들로 채워진 ‘팔레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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