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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례자 Apr 25. 2024

선운사 동백꽃

       선운사 동백꽃


 싸늘한 비 뿌리는 희미한 새벽
 선운사

 암갈색 박토를 꾸듯  
 아침 안갯속에

 백꽃이 졸고 있네


 노동자의 팔뚝같이

 줄 선 억센 줄기
 목마름으로  불거져 나온 뿌리

 곡진 삶의 옹이들

 숨 가쁜 삶의 여정을 듣는다.
 
  고단한 신발 벗고 곁에 앉으니
  선운사 청아한 범종 소리

  긴 여운을 남기고

  붉은 꽃 하나 눈물처럼

  뚝하고  발아래 뒹구네


 잿빛 장삼 자락 펄럭이며
 황토 마당 가로지르는
 한 무리 동자승들의

 해맑은 웃음소리

 은 꽃 속에 바스러

 나는 가슴 저린다.


 돌아보면 가슴 아린 절망의 그늘에서
 어떤 것은 썩어 바닥에 뒹굴고
 또 어떤 것은 생명을

 잉태하지 않았던가


아침 까치 우는 동백꽃 숲에서

지난날의 슬픈 여정을  

설레던 기대를 생각한다.
나 남은 사랑처럼
동백꽃이 눈물보다 빨리

뚝하고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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