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작스러운 이별 앞에서 삶을 다시 배우다
요즘은 평균수명이 늘었다고 하지만 죽음만큼은 여전히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며칠 전, 오래전 함께 근무했던 동료의 부고를 들었습니다. 저보다 젊은, 아직 현역에서 뛰고 있던 친구였습니다. 순간 마음이 멈추는 것 같았습니다. 슬픔보다 먼저 찾아온 건, ‘지금의 나이에도 죽음은 여전히 갑작스럽구나’ 하는 서늘한 자각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나이도 지금의 저보다 젊었습니다. 경찰관이던 아버지는 당시 승진 시험과 심사에 마음을 졸이며 살았습니다. 그 시절에는 몸이 약해 보이는 것조차 진급에 불리하게 작용했기에, 병을 감추고 항암치료를 받으셨습니다.
돌아보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을까 싶습니다. 죽음에 가까운 순간들 속에서도 “나 안 죽어. 이 병으로는 안 간다”라고 말하며 가족을 안심시키려 했던 분. 그런 모습을 믿고 싶었던 탓에, 오히려 우리는 죽음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듯합니다.
저는 그때 막 임관해 최전방에서 소대장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바쁜 근무 속에서 아버지의 투병을 곁에서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돌아가시기 불과 몇 달 전, 아버지는 직접 전방까지 운전해 오시고, 제가 근무하던 부대장님께 인사까지 드렸습니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마음이 어딘가 비어 있는 것처럼 아릿해집니다.
아버지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살아 있겠다고 말씀하셨답니다. 스스로를 버티게 하던 힘은, 어쩌면 가족을 끝까지 지키고 싶은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그때의 아버지는 강한 분이어서가 아니라, 두려움과 아픔을 차마 가족에게 말할 수 없었던 분이셨던 것 같습니다. 죽음은 인간의 의지로 되돌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홀로 삼켰을 그 마음을 떠올릴수록 더 가슴이 저밉니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죽음’에 대한 제 관점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한순간에 찾아오는 것이고, 어느 날의 나에게도 충분히 닿을 수 있다는 사실을 더는 부정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살아가던 어느 날, 동료의 부고가 다시 찾아왔습니다. 놀랐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깨달았습니다. 아버지가 떠난 그 시절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진실을. 누구에게나 삶은 예고 없이 끝날 수 있고, 그 사실이 인간을 더 겸손하게 만든다는 것을요.
죽음을 떠올리는 일은 때로 삶을 어둡게 만들지만, 제게는 오히려 역설적이게도 ‘지금의 자리’를 바라보는 힘이 되었습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주어진 하루를 더 정직하게 살아보자는 마음.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으니, 나에게 주어진 관계와 일상을 마지막까지 소중히 살아내자는 다짐.
신이 주신 생을 어떻게 쓰고 떠날 것인가. 동료의 죽음 앞에서 저는 다시 같은 질문을 마주했습니다.
서글프지만, 삶은 늘 이런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을 거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의 죽음은 남겨진 사람에게 작은 결심 하나를 건네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도 그 결심 위에 서 있습니다. 그리 긴 결심은 아닙니다. 다만, 끝까지 행복을 향해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 흔들리고 회의가 들어도 다시 일어나는 마음. 누군가에게는 평범할지 모르지만, 제게는 매일 새롭게 쌓아 올려야 하는 의지의 조각입니다.
그 끝에 서서, 다시 묻게 됩니다. 오늘 내가 받은 이 하루를, 나는 어떤 마음으로 살아내고 싶은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