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난 자리에서, 한 아이의 진짜 성장을 보다
군 전역 후, 전혀 새로운 분야인 지역센터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지 벌써 반년이 되었습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솔직하고 생기 있습니다. 그중 유독 마음에 스며드는 한 친구가 있습니다.
며칠 전, 수능을 앞둔 그 학생이 제 앞에서 웃었습니다. 억지 미소가 아니라 두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다잡으려는 눈빛이었습니다. 늘 그렇게 웃던 아이였습니다. 주어진 현실을 탓하지 않고, 주어진 하루를 붙들며 묵묵히 나아가는 얼굴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아버지는 빗자루를 들고 거리를 쓸고, 어머니는 닥치는 대로 일을 합니다. 여러 형제들 속에서 스스로 가족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듯합니다. 공부가 버거워도 마음을 다잡고 다시 책을 펴는 모습에서 묘한 단단함이 느껴집니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의지였습니다.
“그래도 한 번은 해보려구요.”
짧은 말 한마디 속에 담긴 절실함이 제 마음을 오래 붙잡았습니다.
그 학생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코로나 시절, 학교는 닫히고 교과의 틀은 무너졌습니다. 가정마다 준비된 여건이 달랐고, 그 시절 배우지 못한 틈을 지금까지도 채워가고 있습니다.
누군가는 학원에서 배운 문제풀이 전략을 익히고, 누군가는 교과서 한 권에 밑줄을 그으며 버팁니다. 이 친구는 후자였습니다. 그럼도 누구보다 집중력 있고 꾸준했습니다.
공정하지 않은 사회는 ‘출발선의 차이’를 만든다지만, 아이의 눈빛은 그 말마저 무력하게 만듭니다.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힘, 저는 그 힘을 ‘희망의 근육’이라 부릅니다. 비록 학교 성적이 뛰어나지는 않지만 그렇게 키운 근육은 분명 학교 이외에 자리에서 더 큰 힘을 발휘할 것이라 믿습니다.
이 아이는 늘 조용하지만, 눈빛으로 대답합니다. 단어 뜻을 틀리면 미안하다는 듯 웃고, 어려운 문장을 이해하면 작게 “됐다!”라고 말합니다. 그 순간, 저는 이 아이가 지금 이 자리에서 성장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벌써 다음 단계를 준비하겠다는 그 친구와 저는 함께 토익 단어를 외우고, 때로는 수능 문제를 풀며 시간을 보냅니다. 책상 사이로 들어오는 오후 햇살이 아이의 머리카락을 스치면, 언젠가 그 빛이 이 아이의 길을 밝혀줄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부모님은 딸의 꿈을 다 알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는 압니다. 누군가 곁에서 믿어준다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그 믿음이야말로, 아이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장 첫 번째 사다리입니다.
이 시대의 교육은 너무 많은 것을 경쟁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배움의 본질은 여전히 ‘가능성’을 믿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점수가 아니라 오늘의 노력이 내일의 문을 열리게 할 거라는 믿음.
그래서 저는 이러한 친구들을 볼 때마다 다짐합니다. 누군가의 눈빛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일을 놓치지 말자고. 작은 빛이라도 닿을 수 있다면, 그게 제가 이 자리에 있는 이유일 테니까요.
수능이 끝나면, 이 아이는 또 다른 길을 준비할 겁니다.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이미 스스로의 길 위에 서 있습니다. 세상이 주지 못한 공평함을 스스로의 힘으로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그 이름이 불릴 때 그 안에서 ‘밝은 눈빛’이 먼저 떠오르길 바랍니다. 그 눈빛이 다른 누군가의 희망이 되길, 조용히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