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잘 들어주는 친구가 생겼다

서로에게 기대는 일의 온도

by 아우리

얼마 전 흥미로운 뉴스가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챗GPT가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며 소송이 잇따랐다는 소식이었습니다. AI가 외로움에 시달리던 청소년에게 구체적인 죽음의 방법을 제안했다는 내용이었지요.

기사를 읽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먹먹해졌습니다. 기계가 말을 했지만, 그 말을 받아들인 건 결국 사람이었으니까요.
그 사건은 기술의 위험성보다, 오히려 인간의 외로움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었습니다. 누군가가 그토록 간절히 ‘들어주는 존재’를 찾고 있었다는 사실이 아프게 남았습니다.


완벽한 이해의 착각

AI는 참 잘 들어줍니다. 눈치를 볼 필요도 없고, 긴 이야기도 끝까지 들어줍니다. 비밀을 털어놔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죠.

그래서일까요, 더 쉽게 마음을 내어놓게 됩니다. “괜찮아요. 다시 말해볼까요?” 그 한 문장이 어쩐지 따뜻하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따뜻함은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반사광일 뿐입니다.

AI는 나를 이해하는 듯하지만, 그 이해에는 온기가 없습니다. 나는 마음을 쏟아놓지만, 그 마음은 흡수될 뿐 되돌아오지 않습니다.

대화는 깊어지는데 관계는 자라지 않습니다. 기계의 완벽한 친절 속에서 인간의 외로움은 오히려 선명해집니다.


관계가 자라는 자리

며칠 전, 친한 후배와 오래간만에 마주 앉았습니다. 특별한 목적이 있는 자리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요즘 어떻게 지내는지, 무슨 고민이 있는지 물었고 후배도 내게 같은 질문을 돌려주었습니다. 서로의 삶을 나누며 웃던 그 시간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습니다.
그 대화가 따뜻했던 이유는 그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기 때문만이 아니었습니다. 나 역시 그의 고민을 들었고, 내 약함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말이 오가는 사이, 우리는 서로의 불완전함에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짧았지만 오래 마음에 머물렀습니다.

AI는 나를 ‘사용자’로 대하지만, 사람은 나를 ‘친구’로 받아줍니다. AI와의 대화는 ‘소비’이지만, 사람과의 대화는 ‘교감’입니다. 기계는 내 말을 받아들이지만, 사람은 그 말을 품고 함께 흔들립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서로에게 닿는 관계의 시작이 됩니다.


인간의 목소리로 돌아가기

기술은 분명 우리를 돕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때로는 인간의 외로움을 더 깊이 비춥니다.

편리한 ‘감정 처리’가 진짜 ‘관계 맺기’를 대신할 때, 우리는 서로에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을 잃어갑니다. 기계 앞에서는 내가 일방적으로 말하지만, 사람과는 서로가 번갈아 가며 기댑니다.

AI는 내 감정을 이해할 수 있는 것 같지만, 자신의 아픔을 내게 나눠주진 않습니다. 인간은 나의 이야기를 들어줄 존재이자, 내가 들어주어야 할 이야기를 가진 존재입니다.

나는 오늘 다시 전화기를 내려놓았습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누군가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요즘 어때?”

완벽하게 들어주는 기계가 아닌, 내 이야기에 귀 기울여줄 뿐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도 내게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사람에게 안부를 건넸습니다.

관계는 이해보다 상호성에서 자랍니다.
그리고 그 온기는 여전히, 인간의 목소리 속에 남아 있습니다.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