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장 스노보더의 은메달
제25회 밀라노·코르티나 동계올림픽이 한창입니다. 예전 같으면 밤잠을 설쳐가며 채널을 고정했을 시간입니다. 룰조차 모르는 낯선 종목 앞에서도 우리 선수가 나오면 괜히 함께 숨을 죽이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는 게 더 바빠서인지, 세상이 변해서인지 예전만큼 올림픽에 열광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 열기가 식은 것이 아니라, 응원의 방식이 조금 달라졌을 뿐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런 와중에 우리의 시선을 붙잡아 둔 한 선수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스노보드 국가대표 김상겸 선수입니다. 네 번의 올림픽 도전 끝에, 서른일곱의 나이로 은메달을 목에 건 사람입니다.
그가 걸어온 길은 설원처럼 매끄럽지 않았습니다. 실업팀이 없어 시즌이 끝나면 건설 현장으로 향해야 했고, 훈련비를 마련하기 위해 막노동을 8년이나 이어갔다고 합니다. 국가대표라는 이름은 있었지만, 생활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꿈을 지킨다는 말은 생계를 버틴다는 뜻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소치 17위, 평창 15위, 베이징 24위. 12년이라는 시간 동안 성적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습니다. 후배가 시상대에 오르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고, 이제는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현실적인 조언도 들었답니다.
그러나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술을 끊고 체중을 관리하며, 매일 밤 자신의 주행 영상을 돌려보며 0.01초를 줄여 나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네 번째 무대에서, 비로소 은메달을 따냈습니다.
저는 기록보다 경기 직후의 인터뷰가 더 오래 남았습니다. 담담하게 말을 이어가던 그가, 가족을 떠올리며 끝내 울먹이던 그 순간. 어쩌면 그 떨림에는 메달의 무게보다 훨씬 더 무거운 시간이 담겨 있었습니다.
우리는 올림픽을 메달의 색으로 기억합니다. 그러나 그 색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시간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부상을 안고 훈련장으로 향하는 선수, 지원이 부족해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는 비인기 종목의 청년들, 자녀의 훈련비를 위해 새벽 일터로 나가는 부모들. 메달은 한 사람의 목에 걸리지만, 그 뒤에는 여러 사람의 시간이 겹쳐 있습니다.
김상겸 선수의 은메달이 유독 묵직하게 다가오는 이유도 그 때문일지 모릅니다. 성적이 아니라 생계를 먼저 걱정해야 했던 시간을 지나, 여전히 트랙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 그 꾸준함이 결국 결실로 이어졌다는 점 말입니다.
올림픽의 열기가 예전 같지 않다 해도, 한 사람의 질주는 이어집니다. 우리는 종종 가장 빛나는 순간만을 기억하지만, 그 순간을 떠받친 시간은 쉽게 잊습니다.
어쩌면 스포츠가 우리에게 묻는 것은 메달의 색이 아니라, 끝내 자기 자리를 떠나지 않은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보이지 않는 트랙 위에서 달리고 있는 누군가처럼, 우리 또한 각자의 자리에서 무엇을 끝까지 붙들고 있는지. 올림픽이 아니라 삶이라는 경기장에서, 나는 아직 어떤 트랙 위에 서 있는지 생각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