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없는 권리는 어디까지인가

부양과 상속 사이, 가족이 다시 묻는 기준

by 아우리

2월의 차가운 햇살처럼, 손 안의 뉴스 창은 연일 무거운 소식들을 건넵니다. 그중에서도 유독 마음을 무겁게 누르는 것은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벌어지는 균열의 소리입니다.

형의 재산을 두고 아버지를 살해한 사건,
거액의 유산을 둘러싸고 형제가 등을 돌린 이야기들.

피로 맺어진 관계가 돈이라는 현실 앞에서 흔들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는 묻게 됩니다.

가족은 무엇으로 유지되는가.
권리는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한 사건이 남긴 질문

2019년, 가수 구하라 씨가 세상을 떠난 뒤 어린 시절 양육을 거의 하지 않았던 친모가 상속권을 주장하며
사회적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양육의 책임을 저버린 부모의 상속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른바 ‘구하라법’이라고도 불렸던 그 법은 오랜 시간을 거쳐 시행되었습니다. 부모가 자녀에 대한 부양 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학대와 같은 범죄를 저질렀다면 법원의 판단을 통해 상속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가족의 도리를 굳이 법으로 적어야 하는 시대라는 사실이 어딘가 불편하게도 느껴집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자기 역할을 다하지 않았으면서 혈연이라는 이유만으로 권리를 주장하는 일이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는 없다는 생각도 듭니다.

“책임 없는 권리는 없다.”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이 말을 우리는 이제야 법의 문장으로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법은 마음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다만 최소한의 선을 그어 도리를 다한 사람이 홀로 억울해지지 않도록 하는 장치일 뿐입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에 필요한 공정의 온도

최근 유류분 제도 역시 손질되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부모를 돌본 자녀의 기여는 더 분명히 반영하고, 부양을 외면하거나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경우에는 상속권을 제한할 수 있도록 요건을 정비하는 방향입니다.

이 변화는 누가 더 가까운 혈연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누가 더 깊이 책임을 다했는가를 묻는 과정처럼 보입니다.

가족 안에서도 공정이라는 말이 필요해진 시대.

그 말은 씁쓸하게 들리면서도 어쩌면 늦게 도착한 질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법보다 먼저 지켜야 할 것

그럼에도 저는 가족의 도리는 법보다 먼저 마음에서 시작된다고 믿고 싶습니다.

부모라면 책임을 다하고,

자녀라면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고,
형제라면 서로의 삶을 존중하는 것.

그 선이 지켜질 때 법은 조용히 뒤로 물러납니다. 그 선이 무너질 때에만 비로소 마지막 장치로 등장합니다.

이 변화가 필요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아팠다는 증거일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아픔을 외면하지 않겠다는 선택이기도 합니다.

상속이 단순한 권리가 아니라 책임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조금 더 또렷하게 마주하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는 이름이 '가져갈 권리’를 먼저 떠올리게 하는 말이 아니라, ‘지켜낼 책임’을 먼저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되기를.

오늘도 햇살 아래에서 그 질문을 조용히 내려놓아 봅니다.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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