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아이들에게 건네는 기준
수업 중 우연히 나중에 무엇이 되고 싶은지로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반려동물 관리사나 소방관을 꿈꾸는 아이들 사이에서 한 학생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직 특별히 정한 것은 없지만 아주 큰돈을 벌고 싶다고 했습니다.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저는 무조건 ‘갑’이 될 거예요.”
아이의 얼굴은 해맑았습니다. 교실은 웃음으로 가벼워졌지만, 제 마음은 잠시 멈추었습니다. 며칠 전 친구에게 농담처럼 "나중에 내 밑에서 일할 거면 지금부터 연습 좀 해둬"라고 말하던 장면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는 가볍게 지나쳤던 말이 그 순간에는 다른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한동안 갑과 을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인지 아이들 입에서도 ‘갑’이라는 단어가 낯설지 않습니다. 계약서에 쓰이던 표현이 일상으로 스며들었습니다. 본래는 책임과 역할을 구분하기 위한 약속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 구분이 사람의 가치를 설명하는 말처럼 쓰이기 시작하면서 그 의미는 조금 달라진 듯합니다.
아이에게 조용히 일러주었습니다. 갑과 을은 사회적 약속이지 사람의 높낮이를 정하는 자리는 아니라고요. 돈을 많이 버는 일은 선택일 수 있지만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것은 결코 선택이 아니라고 덧붙였습니다. 힘을 갖는 것과 그 힘으로 관계를 정하려는 태도는 다른 문제라고 이야기했습니다.
사회는 자주 우위를 성공의 기준처럼 말합니다. 더 많이 가진 사람, 더 높은 자리에 선 사람이 승자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아이들의 언어는 어른들의 세상을 닮아갑니다. ‘갑’이 되겠다는 말 역시 우리가 보여준 풍경의 한 조각일지 모릅니다.
저 역시 남보다 앞에 서는 일이 곧 가치라고 믿던 때가 있었습니다. 속도를 늦출 줄 몰랐고, 누군가와 보조를 맞추기보다 앞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인정받는 자리에 서야만 안심할 수 있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알게 되었습니다. 앞서 나가는 것보다 곁에 머무는 일이 더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곁에 선다는 것은 내 속도를 낮추는 일이고, 내 힘을 스스로 조절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는 선택이 더 큰 용기일 때도 있습니다.
아이에게 말을 건네면서도 제 시선은 저를 향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기준을 보여주고 있을까요. 큰돈을 벌겠다는 꿈은 나쁘지 않습니다. 다만 그 꿈이 누군가의 위에 서겠다는 마음으로 굳어질 때, 우리는 무엇을 놓치게 되는 것일까요.
교실을 나서는 아이의 웃음은 여전히 밝았습니다. 그 밝음이 누군가를 누르는 힘이 아니라, 누군가를 비추는 빛이 되기를 바라며 문을 나섰습니다. 오늘 우리는 어떤 자리를 선택하고 있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