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 마음을 말하는 법을 잊었을까
며칠 전, 스크린 야구장에 다녀왔습니다. 외국에 사는 동생네 가족이 한국에 와 조카들을 데리고 간 자리였습니다. 처음 해보는 게임이라 아이들은 방망이를 휘두르는 타이밍조차 잡기 힘들어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둘 다 헛스윙만 거듭했습니다. 그러다 누나가 먼저 감을 잡고 공을 맞히기 시작했습니다. 시원한 타구음과 함께 전광판에 ‘히트’가 찍히자, 동생의 표정이 이내 굳어졌습니다. 내심 속상해하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조심스레 아이의 기분을 살폈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습니다.
“내가 못 쳐서 좀 속상해요. 그래도 누나가 잘하니까 좋아요. 나도 더 노력하면 되잖아요.”
남이 잘되면 배가 아프다는 말을 우리는 얼마나 자연스럽게 사용하나요. 오죽하면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속담까지 있을까요. 경쟁의 한복판에서도 타인의 기쁨을 순수하게 긍정하는 아이의 마음이 어른인 저를 겸허하게 만들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는 그렇게 자라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는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딘가 쑥스럽고 어색했습니다. 좋다거나 미안하다는 말, 고맙다는 인사를 입 밖으로 내는 대신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라는 낡은 믿음 뒤에 숨곤 했습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방식으로 내 진심을 읽어주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마음은 생각보다 먼 길을 돌아 전달됩니다. 표현되지 않은 진심은 종종 오해를 남깁니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아이들이 서툴게나마 자기 마음을 꺼내놓는 모습을 보면 참 반갑습니다. 그 투명한 말들이 때로는 어른들의 복잡한 문장보다 훨씬 더 곧게 목적지에 닿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센터에서 새로운 학생을 맡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ADHD 경계에 있었다는 아이는 지금도 집중이 쉽지 않아 수업 중에 뜬금없는 소리를 하거나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곤 했습니다. 그날도 교실이 어수선해지기에 저는 아이에게 꽤 단단히 주의를 주었습니다. 아이는 풀이 죽은 얼굴로 교실을 나갔습니다.
다음 수업은 센터에서 가장 큰 형뻘인 고3 학생이었습니다. 그 친구 역시 예전에 비슷한 이유로 저에게 자주 꾸중을 듣던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그 학생이 대뜸 새로 온 동생이 수업을 잘 마쳤는지 물었습니다. 아직은 적응할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답해주자, 녀석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선생님, 걔가 적응을 잘 못해서 가끔 따돌림도 당해요. 그래서 상처가 있는 것 같아요. 선생님이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잠시 정지한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바로잡아야겠다’는 의무감만 앞서 정작 그 아이의 빈 가슴을 보지 못한 제 마음이 못내 부끄러워졌습니다.
우리는 흔히 어른이 아이에게 배려와 도덕을 가르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가끔은 아이들이 우리에게 먼저 보여줍니다. 누군가의 기쁨에 진심으로 손뼉 쳐주는 마음, 그리고 타인의 상처를 대신 아파해줄 줄 아는 마음을 말입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음을 헤아리는 법은 나이가 들면서 배우는 것일까요.
아니면 우리가 자라면서 조금씩 잊어버린 것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