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 끝나지 않은 재판

기록이 멈춘 자리에서 다시 묻다

by 아우리

얼마 전 중국에서 개봉한 영화 <731>이 거센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만주사변 발발일(9월 18일)에 맞춰 상영을 시작한 이 작품은, 일본군 731부대의 생체실험을 정면으로 다뤘다.
개봉 첫날 매출 약 3억 위안(약 587억 원), 25만 회 이상 상영되면서 흥행은 폭발적이었다. 그에 따라 중국에서의 반일 감정이 급속히 확산되면서 일본인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고, 주중 일본대사관이 교민에게 주의령을 내렸다고도 한다.

그 끔찍한 실험의 재현을 스크린으로 마주한다면, 우리 역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민족으로서 자연스레 마음 깊은 곳에서 반일 감정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것은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아직 끝나지 않은 기억의 반응일지도 모른다.
전쟁이 끝난 지 80년이 흘렀지만, 그 기억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731부대, 인간을 실험한 전쟁

1930년대 후반, 만주 하얼빈 인근 ‘핑팡’에는 일본 관동군의 비밀 생물·화학전 부대가 있었다. 지휘관 이시이 시로는 세균전 연구를 명목으로 수천 명의 중국인·한국인·러시아인을 대상으로 인체실험을 자행했다.
일부 연구자들은 피해자가 최소 3천 명, 많게는 1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독가스, 동상, 고온, 감염, 해부 실험 - 생존을 전제로 한 과학은 사라지고, 오직 살상만 남았다.

그들은 피해자를 ‘마루타(丸太)’, 즉 ‘통나무’라 불렀다. 본래 목재를 뜻하는 이 단어는, 인간을 실험 대상으로 전락시킨 끔찍한 은어였다. ‘마루타’는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인간 존엄이 완전히 지워진 폭력의 언어였다.
이 단어는 이후 일본 전쟁범죄의 상징으로 남았고, 한국에서도 교과서·다큐멘터리·영화를 통해 다뤄지며 우리 모두에게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상흔으로 인식되고 있다.

패전 직전, 731부대는 시설을 폭파하고 자료를 파기했다.
그러나 진짜 비극은 그 뒤에 있었다.
전후 미국은 세균전 연구 자료를 얻는 대가로 이시이 시로 등 핵심 인물의 면책을 보장했다. 그들은 전범이 아닌 ‘연구자’로 일본 사회에 복귀했고, 이후 의학계와 제약업계에서 활동했다.
전쟁범죄가 아닌 전리품으로 거래된 실험 데이터, 그것이 인류의 윤리사에 남긴 가장 깊은 흉터였다.

이러한 미국의 ‘거래’는 패전 후 열린 극동국제군사재판(도쿄재판) 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연합국이 주도한 이 재판은 A급 전범 28명을 기소했지만, 미국과의 밀약 아래 731부대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기소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천황과 함께, 그들은 끝내 법정에 서지 않았다. 냉전의 시작이라는 정치적 이해관계 속에서, 정의는 그렇게 축소되었다.


결론: 정의의 온도는 기억의 길이로 남는다

전쟁은 끝났지만, 재판은 끝나지 않았다.
731부대의 기록은 인간이 어디까지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지만, 그 책임을 제대로 묻지 못한 역사는 정의의 온도를 잃게 한다.
냉전의 현실이 정의를 멈춰 세운 그 자리를, 우리는 지금도 돌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렇기에 중국 영화 <731> 이든,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우리 영화 <귀향>이든, 역사의 진실을 파고드는 오늘의 '기억 투쟁'이 중요하다. 스크린 속 잔혹함에 단순히 분노하는 것을 넘어, 왜 그들이 법정에 서지 않았는지, 왜 역사는 침묵했는지를 끝까지 묻고 기억해야 한다.

정의는 기억되는 만큼만 살아남기 때문이다.




<한눈에 보기:731부대와 도쿄재판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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