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왕좌왕, 길 위의 역사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우리가 걸어온 방향

by 아우리

내가 어릴 적 학교 복도 바닥에는 늘 ‘좌측통행’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은 양쪽에서 몰려 나오고, 선생님들은 “왼쪽으로!” 하고 외치셨다. 계단 난간에도, 도서관 복도에도, 공공건물 입구에도 '좌측통행' 표지판이 있었다.
그땐 왜 꼭 왼쪽으로 가야 하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다.
그게 세상의 질서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표지판이 바뀌었다.
‘좌측통행’ 대신 ‘우측통행’이 붙어 있었고, 왼쪽으로 걷는 것이 오히려 잘못된 행동이 되어 있었다.
익숙했던 방향이 바뀐 순간,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는 언제부터 이렇게 우왕좌왕하게 된 걸까?”


길 위의 질서, 시대에 따라 달라지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걸었던 것으로 보인다. 유교 예법에서 ‘오른쪽(右)’은 ‘왼쪽(左)’보다 높게 여겨졌고, 길 위에서 마주치면 상대를 피해 오른편으로 비켜 서는 것이 예의였다. <궁중 의례 행렬도>의 인물 배치와 이동 동선에서도 이런 우측 중심의 질서가 확인된다.

그러다 1910년,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면서 영국식 좌측통행 제도가 도입되었다. 1921년 12월 1일, 도로 통행 규칙이 법으로 정해지며 보행자와 차량 모두 왼쪽으로 움직이게 되었다.
“왼쪽으로 걸으세요”라는 문구의 뿌리는 바로 이 시기의 강제된 통행 규칙에 있었다.


우측으로의 복귀와 ‘혼재의 시대’

해방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자 도로 체계는 다시 우측통행으로 전환되었다.
1946년 4월 1일, 미군정의 행정명령에 따라 차량은 오른쪽으로 달리게 되었지만, 사람들의 오랜 습관은 쉽게 바뀌지 않았다. 어른들은 여전히 왼쪽으로 걸었고, 아이들은 학교에서 좌측통행을 배웠다.
도로는 우측, 인도는 좌측이라는 기묘한 풍경이 수십 년간 이어졌다.
그야말로 ‘우왕좌왕’의 시대였다.


2010년, 걷는 방향을 바로잡다

2009년, 정부는 오랜 좌측통행 관행을 바로잡기 위해 ‘보행자 우측통행 전환’을 추진했다. 이듬해 7월 1일부터 학교 복도, 지하철 통로, 공공건물 안내판이 하나둘씩 바뀌었다.
이는 단순한 교통질서 정비가 아니라, 식민지 잔재를 정리하고 현대적 통행 체계로 맞춘 역사적 정리였다. 우리가 지금 오른쪽으로 걷는 건, 그 길을 수차례 뒤바꾼 세월의 흔적이 정리된 결과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일상 속에는 ‘좌측통행’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 있다.
바로 철도다.


좌측으로 달리는 기차의 이유

흥미롭게도, 철도는 여전히 좌측통행을 유지한다. 이는 일제강점기 철도 운행 체계의 유산이기도 하지만, 1971년 서울 지하철 1호선 설계 단계에서 '국철의 좌측운전 논리(직결 운행의 효율성)'와 '서울시의 우측운전 논리(도로 체계와의 일관성)'가 맞섰던 결과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 1호선은 국철 노선과 선로를 공유하며 이어 달리는 ‘직결 운행’을 택했다.

이 때문에 국철의 좌측운전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게 된 것이다. 결국 국철 직결 운행의 현실적 필요가 우세해 좌측운전이 채택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재의 운영 원칙은 이렇다.
“도시철도는 원칙적으로 우측운전, 국철과 직결된 노선은 좌측운전. (KORAIL·서울교통공사 운행 기준 참조)

그래서 한국은 도로에서는 오른쪽으로, 기차는 왼쪽으로 달리는 독특한 나라가 되었다.


결론: 길의 방향은 기억의 방향이다

어릴 적 학교 복도의 ‘좌측통행’ 표지판은 사라졌지만, 그 표지판이 바뀌기까지의 시간은 단순한 교통의 역사가 아니었다. 한 사회가 식민지의 흔적을 지우고, 새로운 질서를 세운 과정이었다.
길의 방향은 시대의 변화만큼이나 우리 기억 속에서도 움직여 왔다.
그리고 오늘도 우리는 그 길 위를, 역사의 흔적을 따라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한눈에 보기: 한국 통행 방향의 변화>

16. 한국통행방향의 변화.png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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