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길이 만든 가족의 풍경
얼마 전, 오랜만에 받은 후배의 청첩장을 보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요즘은 ‘장가간다’ ‘시집간다’는 말을 거의 쓰지 않는다. 낡아서일까, 아니면 우리가 가족을 떠올리는 방식이 달라져서일까.
사라지는 말은 대개 한 시대의 질서와 함께였다. 그래서 이 말의 뿌리를 더듬어 보았다.
‘장가들기’와 ‘시집가기’는 같은 결혼을 가리키지만, 서로 다른 가족제도에서 태어난 두 개의 문이었다.
고려와 조선 전기까지는 남녀 어느 쪽 집으로 ‘들어가 사는가’가 비교적 유연했다. 신랑이 신부 집으로 들어가 사는 장가들기, 신부가 신랑 집으로 들어가는 시집가기가 모두 존재했다. 부부는 각자의 재산을 따로 관리했고, 이혼하면 각자 몫을 가지고 흩어졌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면 유산은 아들과 딸이 거의 균등하게 나누어 가졌다. 이때의 상속 기록이 바로 ‘분재기(分財記)’이다. 부모가 사망했을 때 재산을 어떻게 나누었는지를 상세히 적은 문서로, 오늘날로 치면 유언장 겸 상속분 기록에 해당한다.
조선 전기의 분재기들을 보면 아들과 딸이 거의 같은 비율로 토지와 노비를 분배받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이나 신분에 따라 차이는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평등한 경향이 지배적이었다. 물론 일부 지배층 문중에서는 부계 요소가 일찍부터 강화된 예외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호칭도 달랐다. 아버지 쪽과 어머니 쪽을 굳이 갈라 부르지 않아 ‘아자비’, ‘아자미’처럼 남녀를 포괄하는 표현이 쓰였다. 영어의 aunt나 uncle처럼, 사촌 관계도 평등했다.
이 시기의 가족 형태를 학계에서는 ‘양계(兩系) 가족제’라 부른다.
결혼이 ‘누가 누구의 집에 들어가는가’보다 ‘둘이 어디서 함께 살 것인가’를 정하는 일이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조선 후기로 가면서 분위기가 달라진다.
성리학이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자리 잡으면서, 혈통과 제사의 중심이 남성, 특히 장남에게로 쏠렸다. 가계를 잇고 조상을 모시는 책임이 장남에게 집중되자, 상속 역시 장남 우선으로 기울었다. 아들이 없으면 딸에게 맡기기보다 외손자나 양자를 들이는 일이 많았다.
결혼 풍습도 변했다. 남자의 집으로 여자를 맞아들이는 ‘친영(親迎)’이 이상적인 혼례 절차로 강조되었고, 이는 여성이 남성 중심의 가계에 편입되는 상징이 되었다.
또한 ‘가문의 중심 제사’는 한 집안의 조상 제사를 계승·주관하는 큰제사를 의미했다. 이 제사는 단순한 추모 의식이 아니라, 가계(家系)를 이어가는 상징적 책임으로 여겨졌다. 그래서 장남이 제사를 맡는다는 것은 단순한 가족행사가 아니라, 가문 계승의 핵심 의무를 뜻했다.
이 시기에 우리가 ‘전통’이라 여기는 많은 제도 - 장남 상속, 성씨 단선 계승, 제사 책임의 남성 독점 - 이 확립되었다.
그 결과 여성은 재산과 제사 모두에서 점차 배제되었다. 설화 <장화홍련전>의 비극적 서사는 바로 이 변화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계모와 배다른 형제자매의 갈등, 상속과 제사를 둘러싼 긴장은 조선 후기 부계 중심 질서가 만든 사회적 그림자였다.
그렇다면 ‘장가들기’와 ‘시집가기’라는 말이 덜 쓰이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결혼이 더 이상 필수 통과의례가 아니다. ‘혼밥·혼술’이 일상이 되고, 1인 가구·비혼·동거·재구성 가족 등 다양한 삶의 형태가 확산되었다.
둘째, 결혼 내부의 권력 구조가 바뀌었다. 맞벌이가 일반화되면서 재산 형성·관리·상속의 결정이 부부 공동의 일로 이동했다.
셋째, 법과 제도도 변했다. 자녀의 성·본을 부모가 함께 정할 수 있고, 상속에서의 성별 구분은 사라졌다. 혼인 외의 가족 형태(동거·입양·돌봄 가족 등) 역시 사회적으로 점차 인정받고 있다.
이제 결혼은 ‘누가 누구의 집에 들어가는가’보다 ‘둘이 어떤 관계를 맺고 돌보는가’의 문제로 옮겨왔다.
사라지는 말은 단지 낡은 어휘가 아니다. 그 말을 가능하게 했던 질서가 약해졌다는 신호다.
그래서 ‘장가들기·시집가기’의 퇴장은 한 집안의 남성 중심에 ‘들어가던’ 결혼에서, 두 사람이 대등하게 ‘꾸려가는’ 생활로의 이행을 보여준다.
오늘의 우리는 이제 함께 살 삶을 설계하는 언어를 찾고 있다.
가족을 잇는 방식이 혈통과 제사에서 돌봄과 합의로 이동한 지금, 전통의 기억은 우리에게 묻는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놓아야 할까.
그래서 청첩장을 펼칠 때, 우리는 어느 집에 ‘들어가는가’보다 어떤 삶을 함께 꾸려갈까를 먼저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