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적 카르마 이론 - 개요

원하는 삶을 창조하는 진리적 접근에 대한 고찰, 카르마

by Mr Jung

카르마(Karma), 업보라고 불리는 이 개념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고 연구를 진행해왔다.

나는 이 글에서 내 경험적 결과로 발견한 카르마 이론, 과학적 지식에 대한 해석,

그리고 철학에 대해 서술해보며 지식을 남기고자 한다.


이 글에서는 과학적 실험 결과를 통한 파생 이론과 철학을 이야기 할 것이며,

과학적 사실 그 자체를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사실(Fact)만이 중요한 사람들은 조용히 뒤로가기 버튼을 눌러주기를 바란다.

읽고 나서 괜히 유사 과학이니 사이비 과학이니 떠들지 말고 말이다. 그냥 이론과 가설일 뿐이다.


보통 카르마라고 하면 동양의 업보 개념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그것은 나의 행동으로 외부의 세상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표현한 외부 주체적 개념이지만,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카르마의 개념은,

오로지 나의 관점으로 바라보는 자기 주체적 관점의 카르마이다.


- 행동의 인과관계 (Causation & Result)

카르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가장 기초적인 행동의 인과관계에 대해서 알아야 한다.

어떠한 행동을 하면 그 행동이 원인이 되어 특정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

쉬운 예로 '물컵을 들어 물을 컵에 따르는 행동'으로 '물컵에 물이 차오르는 결과'가 있다.

이것은 행동의 주체가 있고, 변화의 대상이 있으며, 변화한 결과가 있다.

여기서 카르마의 정의는 '물을 따르는 내 행동으로 컵에 물이 차올랐다'가 된다.

아주 간단한 행동이고 당연한 결과이지만,

인간이 어떻게 세상을 변화시키는가에 대한 아주 중요한 기초 개념이다.


- 관측과 영속성 (Observation & Persistence)

다음은 관측과 영속성에 대해서이다.

영속성은 보이지 않는 상태로 유지된다는 것인데, 우리의 감각은 너무나 제한적이어서

우리의 행동으로 변화하게 된 대상의 상태를 관측하기 전까지 정확히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쉬운 예로 'A 상자에 넣은 공을 B 상자에 넣게 끔 타인에게 지시 후 나는 상자를 관측하지 않는 것' 이 있다.

공은 A 상자에서 B 상자로 이동되었을 것이지만, 그것은 추측일 뿐 나는 실제로 그것을 알 수 없다.

내 눈을 통해서 직접적인 관측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공은 여전히 A 상자에 있을 수도, 공이 다른 곳으로 사라졌을 수도 있다.

공을 옮긴 사람이 다가와 공을 옮겼음을 알려도,

실제로 직접 결과를 확인하지 않는다면 공의 상태는 알 수 없다.

심지어 타인이 아닌 나의 직접적인 행동에 의해서도 확인하지 못한다면 변화를 알 수 없다.

예시로 '버튼을 눌러 기계로 공을 옮겼지만, 옮겨진 결과를 확인하지 못할 경우'이다.


나는 이러한 영속성의 특징을 띈 행동을 카르마 점프(Karma Jump)라고 부른다.

카르마 주체의 인과관계를 타 대상에게 옮기는 전이현상을 말한다.

그리고 그러한 카르마 점프의 결과를 관측하는 것카르마 체크(Karma Check)라고 부른다.


또한 시각적인 관측 외에도 여러 가지 다양한 관측 방법이 존재하는데,

직접 만져보거나, 냄새를 맡거나, 소리를 듣거나 등의 인간의 인지 감각기관이 기본적인 관측법에 해당된다.

그 외에도 사전에 확실히 관측하여 신뢰성이 검증된 방법, 전자 충돌 검출이나 이미지 촬영 등의 방법이 있다.

나는 이러한 관측이 가능하게 해주는 장치를 카르마 옵틱(Karma Optic)이라 부른다.


- 상대성 (Relativity)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것은 상대성을 띈 상대적인 것이다.

나에게는 그것이 큰 의미를 지니고 있을 수 있지만, 타인에게는 별 의미 없는 것일 수 있다.

쉬운 예로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을 예로 들어보면,

어린아이에게는 큰돈, 성인에게는 그냥 만원 지폐일 뿐이다.

어린아이의 시간에서는 만원의 가치가 매우 높고, 성인의 시간에서는 만원의 가치가 낮은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만원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만원이나 되는 것이다.

다른 예시로는 물컵에 담긴 물이 있다.

물컵에 물이 반이 담겨있는 상태를 보고,

누군가에게는 물이 반이나 있고, 누군가에게는 물이 반밖에 없는 것이다.

이처럼 자기 인지의 주체적 관점에 따라 모든 것은 상대적인 가치를 지닌다.


-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Einstein's Relativity Theory)

시간은 서로 상대적이다는 것이 중요하다.

(속도 = 거리 / 시간)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수학 공식에 기반해,

거리가 변화해도 빛의 속도가 언제나 항상 일정하다는 실험 결과에서 발견한 것이다.

그게 가능하려면 시간이 변화해야만 하는데, 정말 이상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과학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정말 그렇다.

이것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는 대상의 시간이, 정지해있는 대상의 시간보다

더 느리게 흐른다는 것을 말해주는데, 모든 것이 물리적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진 현실 세계에서

모든 것이 상대적 시간을 지닌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래서 물리학자들은 시간이 흐른다는 것이 착각이라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을 알려주자면, 생각의 속도에 따라서 시간이 다르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뇌의 뉴런이 전기신호를 주고받는 속도가 달라짐에 따라, 그 시간이 달라진다는 것인데,

생각을 빠르게 할수록 시간이 느리게 흘러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인간이 직접 인지하는 시간의 흐름이 된다.


물론 물리적 한계 속도가 있기 때문에, 작은 단위에서는 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것이 쌓여서 더 많은 시간이 지날수록 인지한 시간의 크기는 확연히 차이 날 것이다.

뇌의 특정 부분이 얼마나 빠르게 자주 활성되었느냐에 따라 개인이 경험한 시간에 차이가 벌어질 것이고,

그것이 행동을 만들고, 특정 결과를 도출시킬 것이다. 이것이 사람의 개인차를 만들어낸다.


- 슈뢰딩거의 고양이 (Schrödinger's Cat)

슈뢰딩거의 고양이 사고 실험은 매우 유명한 실험 중 하나이다.

실험 내용은 외부에서 관측 불가능한 상자 안에 독극물을 설치하고,

일정 시간이 흐른 후 확률적으로 그 독극물이 상자 내부에 퍼지게 만든다.

그리고 그 상자에 고양이를 집어넣고 상자를 닫는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고양이는 상자를 열어 확인하기 전까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다.


슈뢰딩거는 이것을 중첩 상태, 고양이가 죽어있음과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을 알 수 있는 방법을 오직 확률로만 알 수 있다고 했다. 즉, 추측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상자와 고양이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거시적 세계에서 뿐만이 아닌,

양자와도 같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미시적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며,

최근 과학계에서는 양자역학으로 이러한 영속성의 특성을 이용하여,

양자컴퓨터와 같은 카르마 디바이스(Karma Device)를 만들기도 하였다.

카르마 디바이스란 기술적 방식을 응용하여 카르마 점프를 하기 편하게 만든 장치를 의미한다.


여기서 관점의 상대성에 대한 이야기 하자면,

실험의 진행자인 슈뢰딩거는 고양이의 상태를 상자를 열어보기 전까지는 영원히 모르지만,

실험의 대상자인 고양이는 자기가 죽었는지 살았는지를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는 고양이의 관점에서는 살아있음이 된다.

생물은 자기가 죽은 세상을 인식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인식할 수 있다면, 더 이상 생물이 아닌 무언가, 신에 가까운 존재가 된 것이다.

그렇다면 내세에 대한 고찰을 하지 않을 수 없으나,

이 글의 카르마 이론 - 개요에서 다루기에는 아직 적어야 할 내용이 많아 다른 글에서 다뤄보겠다.


- 다중 세계 (Multi-verse)

이어서, 슈뢰딩거가 이제 상자를 열어 고양이의 상태를 확인하면 고양이의 상태가 결정된다.

슈뢰딩거의 관점에서는 고양이는 살았거나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서 말했듯 고양이에게는 살아있는 세상만이 있으니, 세계는 그 순간 2개로 분할된다.

고양이가 살아있는 세계와, 죽어있는 세계.

살아있는 세계는 고양이와 슈뢰딩거 둘 모두 인식하고,

죽어있는 세계는 오직 슈뢰딩거만이 인식한다.

이는 멀티버스(Multi-verse), 다중 세계의 이론을 나타낸다.


우리가 멀티버스의 개념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를 스스로 슈뢰딩거에 몰입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 살아가는 세상은 상자 속 세상과도 같고, 우리는 고양이와도 같다.

단지 그 상자 안에 다른 고양이들이 있을 뿐이고,

그 상자가 너무 커서 독극물에 영향을 받는 위치가 일정하지 않을 뿐이다.

그래서 인간은 슈뢰딩거, 신의 존재를 찾는 것이고, 상자에서 꺼내 주기를, 구원을 바라는 것이다.

다른 고양이들이 죽는 것을 보고 자신도 저렇게 죽을 것임을 예측하는 것이다.


또한 그 규모가 너무나 방대한 나머지 상상조차 하기 질린 것이다.

모든 생물의 각 관측 행위마다 세계가 분열한다는 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규모인지 상상조차 힘들다.

심지어 그 관측 행위가 전자 단위의 충돌만으로도 일어난다는 것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아직까지도 세상의 극히 일부분만을 알고 있을 뿐인 미개한 존재이다.

그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그 가능성이 상상 간다면 그것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세계의 가능성에 한계를 정하는 것은, 우리 인간이 그것에 공포를 느끼고,

견뎌낼 수 있는 정도로 축소시켜야만 안심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예시로 든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에 의해 세계가 분할됨을 설명했지만,

죽음 이외에도 우리가 살아가며 내리는 수많은 선택들이 세계를 분할시켜 세상을 창조한다.

우리는 각 선택에 따라 무수히 많은 시간선이 얽혀있는 복잡한 형태의 시공간에 존재하는 생명체이며,

이 시간선은 생명체의 인지에 따라 각자 한개의 우주를 형성한다.

우리는 다른 생명체,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간다고 느끼지만,

실제로는 각자가 각자의 세상에서 따로 살아가고 있으며,

우리는 그들의 흔적만을 경험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흘러가는 시간속을 인지하는 것처럼 보이고, 세상이 분할되어 창조된다고 생각하는,

즉, 현재 진행형으로 세상을 바라보지만,

이러한 멀티버스의 시간선 이론에서는 모든 시간선이 전부 정해져있고,

생명은 그 시간선에서 자신이 인지하게 될 단 하나의 시간선을 따라서 경험할 뿐인 것이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생명이 유한하기 때문인데,

그 끝이 죽음이라는 것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이는 실제로 우리가 죽어보기 전까지는 아무도 모르는 차원에 대한 이론일 뿐이며,

글쓴이 또한 이 글에서 꽤나 확신에 찬 어투를 사용했으나,

이는 전부 이론에 불과할 뿐이니 신뢰하지 말고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겨주기를 바란다.


- 이중슬릿 실험 (Double-slit Experiment)

빛이 입자인가 파동인가, 정말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실험이다.

실험의 내용은 2개의 줄무늬 구멍을 지닌 판에 빛을 쏘아 판 뒤에 남은 빛의 문양을 관측하는 실험이었는데,

실시간 관측 없이 실험을 진행하고(카르마 점프하고)

결과만을 관측했을 때(카르마 체크했을 때) 문양에 파동 간섭이 일어나 물결 무늬가 나타난 것이었다.

이는 기존에 빛은 입자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었는데, 이를 검증하고자 이번에는 실시간으로

빛을 쏘고 슬릿을 통과해 문양을 그리는 과정을 관측하니 이번에는 그냥 2개의 줄무늬만이 나타난 것이다.

관측할 때는 입자가, 관측하지 않을 때는 파동의 특성을 띄는 빛의 특성에 의해 과학자들은 고민했고,

결국 현대 과학에 이르러서는 빛은 입자임과 동시에 파동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결과는 우리의 관측 행위에 대한 중요성을 말해주는데,

우리가 원했던 결과를 도출해내기 위해서는

관측과 미관측의 결과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알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직접 행동해서 관측하는 것 외에 카르마 점프 후 카르마 체크를 통해

다른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 내 카르마 이론의 핵심이다.


카르마 점프와 카르마 체크를 이해하게 되면, 업보가 쌓이는 것과, 업보를 쌓는 것의 차이를 알게 되고, 이를 의식적으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카르마 컨트롤(Karma Control)이라 한다.


생물은 모두 각자의 카르마 플로우(Karma Flow), 카르마의 흐름이 있는데,

이는 미관측 인과관계를 포함한 모든 카르마적 행동과 결과를 의미한다.

또한 자기 인식이 되는 자기 주체적 세계, 개별 시간선,

나만의 카르마 플로우를 메인 스트림(Main Stream)이라 한다.

위에서 말한 멀티버스의 개념에서 자기가 죽지 않고 살아있는 세계,

자기가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세계로 세계는 분열한다고 이야기했었는데,

그 분열된 세계를 의미한다.



- 다음 글에서는,

카르마 빌드업(Karma Buildup), 카르마 어택(Karma Attack), 카르마 디펜스(Karma Defense) 등 카르마를 이용한 카르마 플로우의 방향 조정 및 공격과 방어에 대해서 알아보며,

전술적인 카르마의 응용법, 택티컬하게 이를 삶에 적용해 보며 이론을 풀어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 카르마 이론을 통해 우리의 메인 스트림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카르마 플로우를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며, 외부의 다른 카르마 간섭으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또한 세상의 진리를 깨우쳐가며, 왜 살아가야 하는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세상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 볼 것이다.


다음 글인 카르마 이론 - 카르마 빌드업 에서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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