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쉬운 평정심 찾기

- 감정(感情)의 미니멀리즘

by 차슈

물건을 버리다 보면 가장 많이 드는 생각이 바로 '감정도 이렇게 버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이다. 형태가 있는 소유물을 버릴 때 힘든 점은 아깝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작 버리고 나서 며칠이 지나면 왜 그렇게 아까워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깔끔한 이별을 맞이하게 된다. 오히려 잘 버렸다고 생각하며 헌 옷이 누군가에게 전달되어 새 쓰임새를 얻기를 바라거나 버린 일반쓰레기의 양이 많았음을 반성하는 등 긍정적인 마음가짐을 얻게 된다. 감정은 다르다. 뇌 속에 기억이라는 형태로 저장되는 감정은 분리하여 버리는 게 가능하지 않고 기분전환을 통해 잠시 잊어버렸다가도 어느 날 불시에 떠올라 하루를 완전히 잡친 채로 보내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감정이 상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사람은 테트리스나 레고 블록처럼 볼록하고 오목한 형태로 딱딱 들어맞게 교류하는 단순한 생명체가 아니기에 자신의 성격만 고집하면서는 대화조차 불가능하다. 그렇기에 누군가와 소통할 때는 어느 정도 여유를 갖고 한 발 뒤에서 조심스럽게 다가갈 필요가 있다.


안다. 잘 알고 있다. 그래도 힘들다. 안다는 것과 그대로 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지 않는 이상 갑자기 받게 되는 불합리한 처우에 분노가 치밀어 한 숨을 푹푹 쉬게 된다. 원칙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득을 볼 때는 아무 말 없다가 조금이라도 불리해지면 불평불만을 쏟는 사람들이 있으며, 혼자 바쁘게 일하는 와중에 뒷짐 지고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제가 하겠다고 나서야 하는 신입이니까, 한창 일 열심히 해야 하는 때인 허리 라인이니까, 밑에서 받쳐주지 못해도 멱살 잡고 끌고라도 가야 할 책임이 있는 상사이니까. 우리 모두 때때로 힘들게, 그리고 외롭게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대화하는 기술이 엄청나게 늘었다. 본론을 꺼내기 전에 기본적인 안부를 묻고 상대방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질문과 관찰을 통해 최대한의 정보를 얻는다. 같은 말이라도 듣는 사람이 거슬려하지 않을 단어를 골라 문장으로 만들고 본인이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 어조와 표정도 관리하는 등 갈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방법들을 자연스럽게 체득하였다. 모두 내 감정을 지키기 위해 신경 써서 단련한 것들이지만 최근 들어 이러한 대화 속에서 내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에 대한 배려로 시작했지만 그 배려를 돌려받은 적은 거의 없었으며 얼굴에 쓴 가면에는 금이 가고 있었다. 변검(얼굴에 손을 대지 않고 가면을 순식간에 바꿔 쓰는 중국의 연극기법)의 달인이 본인의 연기에 슬럼프를 갖게 된 느낌이었다.


그간의 노력이 그들에게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고 감사의 대상으로도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행동의 노선을 '거울'처럼 바꾸기로 했다. 이제까지의 경험에 따르면 감정이 상하는 경우는 대부분 상대방이 선을 넘어버릴 때였다. 대화를 하다 보면 다양한 요소를 느낄 수 있다. 발화의 양과 내용, 시선을 포함한 표정과 몸짓, 말을 하는 도중에 끼어드는 빈도, 경청하는 태도, 대화를 마무리하는 방식 등등. 일이 바쁘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경우가 아닌 데도 일방적인 의견통보식 대화를 하거나 내용이 뭐든 간에 쌍지팡이 짚고 나서는 사람들이 있다. 이제는 그들에게 거울을 비춰줄 차례다. 호구처럼 저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경험상 절대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며 인간이 간사한 존재라는 부정적인 인식만 커지게 될 뿐이다. '나'를 지키기 위해, 굳이 불필요한 감정을 떠안지 않기 위해 행동으로 울타리를 치기로 했다.


변화는 바람직했다. 처음부터 밑지려는 생각을 버리니 자신에게 솔직해졌고 감정을 솔직히 전달하게 되었다. 당당해진 행동으로 주변 동료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었다. 예의를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쳐낼 수 있게 되었으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더 집중하게 되었다. 그래도 울타리를 비집고 들어오는 나쁜 감정들은 이전보다 여유 있게 대처하고 있다. 일상 비관적이었던 때를 버리고 긍정적인 측면에 집중하기로 했다. 물건만큼 쉽게 치우고 버리지는 못하지만 감정도 필요한 만큼만 느끼고 관리할 수 있도록 습관을 들이는 중이다. 이래놓고 내일은 육두문자를 남발하며 맥주캔을 벌컥벌컥 들이부을지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배출이 된다면야 다행이다. 내 소중한 감정이니까 노력하며 아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혈당 맥시멀리스트(였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