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과의 이별 ① 손과 발이 닿는 곳
나는 오늘부터 미니멀리스트다. 눈에 보이는 것들은 모두 버려버리고 물건은 절대 사지 않는다. 미니멀리스트라면 방 안에 물건 하나도 있으면 안 되지. 마치 이사하기 전 가구 하나 없이 텅텅 비어있는 집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아무것도 소유하면 안 된다. 그것이 미니멀리스트니까. 나는 물욕이 전혀 없는 사람이고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모두 나를 미니멀리스트로 불러주기 바란다,
라고 처음에는 생각했다. 미니멀리스트라는 개념에 잡아먹힌 괴물이 되어 물건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강박마저 느낄 정도로 주객이 전도되는 상황이 이어졌다. 오히려 아무 생각 없었을 때보다 마음이 불편해지자 이건 아니라고 생각해 마음을 조금씩 다듬기로 했다. 애초에 물건 하나 버리지도 못하던 성격의 내가 하루아침에 사람이 달라지는 것도 불가능할뿐더러 미니멀리즘 자체가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개인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감당 가능한 선에서 물건의 양을 조절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미니멀리즘의 핵심일 것이다.
소유하거나 버릴 물건의 판단은 어떻게 할까. 모든 것이 언젠가 필요할 것 같아 일단 보관해 두는 저장벽이 있던 나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힘들었다. 그래서 우선 나 자신이 어떤 물건을 주로 사용하고 있는지 하루 동안 관찰하기로 했다.
전날 밤 12시 정도에 '침대'에 누워 '베개'를 베고 '안고 자는 베개'를 끌어안은 채 '이불'을 덮고 잠이 들었다. 잠귀가 밝은 편이라 '귀마개'와 '안대'를 꼭 하고 잠을 잔다. 6시 반에 일어나 출근 준비를 한다. '두유'를 '플라스틱 컵'에 따라 한 잔 마시고 '사과' 반 쪽, '삶은 달걀' 1개로 아침을 때운다. '폼클렌징'과 '바디워시', '샴푸' 등으로 샤워를 마친 후 '수건'으로 몸을 닦은 뒤 '수분크림'과 '선스틱'을 얼굴에 발라준다. 상하의와 양말을 포함한 '출근복'으로 환복을 한 후 '패딩점퍼'를 덧입은 뒤 '백팩'을 메고 '운동화'를 신고 출근을 한다. 백팩에는 전날 밤에 싸둔 '도시락'과 작은 '우산'이 들어있다. 출근길에는 '무선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걸어가고 '휴대폰'으로 전날 밤 미국주식이 얼마나 변동했는지, 업무연락 등이 있는지 확인한다.
퇴근 후에는 오자마자 아침처럼 샤워를 한 뒤에 '밥과 반찬'을 꺼내 '노트북'으로 유튜브를 보면서 저녁식사를 하고 이어폰과 핸드폰을 '충전기'에 꽂아놓는다. 허리가 아파 구매한 '거치대'에 노트북을 올려두고 있기 때문에 블루투스를 이용한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을 하며 인터넷 서핑을 한다. 밤 11시 정도까지 휴식을 하다 졸음이 쏟아지고 다시 침대로 들어가게 되면 하루가 마무리된다.
하루 관찰 결과 약 서른 개의 물건은 반드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외에 눈에 보이는 책장에 꽂힌 책들이나 졸업앨범, 옷장 속에 있는 여분의 외출복, 서랍에 있는 다양한 문구류, 어디서 났는지도 모를 USB 선들과 전원어댑터들 등은 가끔 가다 한 번씩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언제 손길이 닿았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마치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두고 다시 찾아보게 되지 않는 풍경사진처럼.
언젠가 쓰지 않을까, 아직 쓸만한데 버리기는 아깝다는 생각으로 서로 소통 한번 하지 않고 동거를 이어온 지 10년이 넘는 이웃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동안 악수는커녕 가벼운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의미 없는 공동생활을 이어왔다는 사실에 새삼 서로 머쓱해졌다. 한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뒤적이던 만화책과 소설책들, 사양이 낮아져 교체한 지 오래됐지만 왠지 모르게 버리지 못한 채 방치해 둔 옛날 노트북 등 이별의 때를 놓치고 물끄러미 서로 눈치만 보고 있었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고, 접촉하지 않는 물건들은 점점 내 필요한 대상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손발이 닿는 곳과 시선조차 주지 않게 되는 곳. 전자와 후자를 구별하는 것에서부터 물건과의 이별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경계선을 넓히다 보면 언젠가는 소유한 물건의 수와 필요한 물건의 수가 일치하게 될 것이라는 기대를 품으며 오늘도 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