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식단의 미니멀리즘
올해로 건강검진을 받기 시작한 지 4년 차가 되었다. 첫 건강검진에서는 예상했던 만큼 처참한 결과를 얻었다. 그즈음에는 운동은 전혀 하지 않고 식단 같은 건 운동선수들이나 하는 거라고 여겼기 때문에 고삐를 놓친 채 몸은 점점 불어나고 있었다. 체중이 전년에 비해 8kg 증가했고 나쁜 콜레스테롤이라고 불리는 LDL 수치가 정상범주보다 1.5배나 높았다. 종합소견에 빨간색 글씨로 '주의' '경계' 등의 표현을 수치와 함께 접하게 되니 게을렀던 나라도 운동을 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먹는 것에서 오는 즐거움은 포기할 수 없었다. 언젠가 방송에서 본 한 프로 운동선수의 인터뷰에서 '운동량이 워낙 많기 때문에 식단은 따로 조절하지 않아도 체형이 유지가 된다'는 이야기를 근거로 우선 운동만 시작하기로 했다. 대중교통보다 가급적 도보이동이나 달리기를 하였고, 타바타(단시간에 고강도로 몸을 움직여 높은 효과를 보는 운동 방법) 방식으로 근육을 키웠다. 운동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았기에 하루씩 건너뛰거나 일주일이 지나도록 꿈쩍하지 않는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아예 안 하는 것보단 낫다고 생각하며 간헐적으로 운동을 이어갔다.
문제가 발생한 건 올해 건강검진 때였다. 올해 중순이 되기까지 여전히 식단은 조절하지 않았지만 해가 바뀔 때마다 건강검진 결과지에서 체중은 2kg씩 줄어들었다. 비만이 만병의 원인이니 살을 빼면 다른 건강지표들도 좋아지겠지라는 낙관적인 생각으로 자극적인 식도락을 즐기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 건강검진에서는 첫 검진에 비해 종합소견이 3배나 길게 작성되어 있었다. 공복혈당장애는 1단계에서 2단계로 상승하였고, 혼합성 고지질혈증에서 이상지질혈증으로 지방 관련 수치도 악화되었다. 지방간에 대한 경고도 경도에서 중등도로 상향됨에 따라 이후 서술되는 설명글이 몇 줄 더 추가되었고, 무엇보다 종합소견이 1장에서 3장으로 늘어난 것에서 엄청난 위기감을 느꼈다.
검진센터에서 결과통보 겸 내원을 권하는 전화가 걸려왔을 때 운동도 꾸준히 하고 몸무게도 계속 줄었는데 몸 상태는 왜 더 안 좋아졌는지 물어보자 안내하시는 분은 잠시 머뭇거리더니 내가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대답을 하셨다.
"식단을 조절하셔야 합니다."
이제는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성장기도 아니고 이제 관리를 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뭔가 실패했을 때 더 배우는 게 많은 것처럼 그 양이 늘어난 결과지를 받고 나서야 식단에 대해 각성하는 순간이었다.
식단을 신경 쓰게 되면서 알게 된 건 그동안 일일권장량보다 한참 뛰어넘는 양을 먹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단백질은 체중수치를 그램(g) 단위로 바꾸어 섭취하면 적정량인데 고기를 좋아하다 보니 거의 2~3배 이상 섭취하고 있었고, 식사 후에는 빼놓을 수 없었던 후식 같은 경우 감자칩과 주스, 초콜릿과자와 커피로 한 상을 다시 차려 먹고 깎아놓은 과일로 입가심을 하는 수준이었다. 나트륨 2,000mg, 당류 50g, 개인 필요열량이라는 권고기준을 무자비하게 박살내고 있었다.
현재는 식단을 조절한 지 5개월이 되었다. 처음에는 일일권장량이나 식단을 어떻게 짜는지에 대해 전혀 몰랐기에 뭘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건강관리협회나 국가건강정보포털 등에서 건강관리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여 나에게 맞는 식단을 짜서 그대로 실행하기로 했다. 규칙적인 식사가 중요하다고 하기에 지난 5년 동안 걸렀던 아침을 간단하게라도 먹기 시작했고, 각 끼니마다 일일권장량을 적절히 나누어 충분히 섭취하고 있는지 계산하며 식사를 했다. 처음에는 정말 귀찮았고 어색하여 금방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지만 한 달이 조금 넘어갔을 때 아무리 운동량을 더 늘려도 그대로였던 체중이 2kg이나 줄어들어 식단의 위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 게다가 식단을 한다고 굳이 맛없게 먹을 필요도 없었고 조금만 신경 쓰면 충분히 다채롭게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에서 그간의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었다.
최근 보건소에서 받은 인바디를 통해 다른 수치는 그대로인데 내장지방이 감소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동안의 식사가 그만큼 과했다는 방증이었다. 식단을 유지하면서 음식의 질과 양을 고려하고 만족과 즐거움을 높이기 위해 궁리하면서 내 몸을 더욱 아끼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에는 눈앞에 있으니까 혹은 아까워서 배부른 상태에서도 더 큰 효용 없이 입에 반사적으로 음식을 집어넣었었다. 지금은 필요한 양만큼 건강하게 먹으니 식비도 줄고 식탐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소화가 잘 되지 않아 역류성 식도염을 달고 지내던 날들도 작별을 고하게 되었다. 음식을 덜어낸 양만큼 건강한 삶이 채워지고 있었다. 모두 건강하고 즐거운 식사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