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은 금물이다

- 대화의 미니멀리즘

by 차슈

보통 그 대상이 필요 이상으로 과하게 존재할 때 필요한 것이 미니멀리즘이라 생각한다. 물건을 보관할 장소마저 마땅치 않을 정도로 관리가 되지 않거나 과식으로 인해 건강상태가 악화되고 있을 때, 또는 부정적인 감정에 휩쓸려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그릇된 판단을 할 때 등 기울어진 무게추의 균형을 맞출 때 덜어냄의 미학이 필요하다. 하지만 경험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필요보다 과하게 미니멀리즘을 적용할 때가 있다. 서로 마주하여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바로 대화를 할 때이다.


A: "야, (네가 아직 잘 모르고, 하다가 다칠까 봐 걱정이 되니 잠시만) 비켜봐."

B: "뭐 이 자식아?"


대화를 하는 사람들의 말풍선을 볼 수 있다면 이 세상에 벌어지는 다툼의 90%는 줄어들 것이다. 말은 사람의 의사를 전달하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다. 단지 그 효율성에 매몰되어 상대방을 설득하려는 노력이 점점 줄어들면서 위와 같은 갈등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대화를 할 때 무의식적으로 괄호를 열고 닫는다. 오해를 일으키지 않으려면 괄호를 열고 닫기 전에 괄호 속 내용이 정말 생략해도 되는 건지 다시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미니멀리즘은 필요한 만큼 덜어내고 채우는 과정이지, 아예 들어내는 것과는 결을 달리 한다.


내향적인 성격에 생각이 많고 대인기피증 수준으로 사람 대하기를 꺼렸기 때문에 음식점에서 주문하는 것조차 큰 고통이었다. 미리 어떤 말을 꺼낼지 생각해두지 않으면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고 의도와는 다르게 전혀 다른 표현이 발화되어 상대방에게 큰 오해를 산 적도 있었다. 말을 잘하는 것은 성격에 따라 타고나는 것이라 비관하며 입을 굳게 다물고 대화를 피하게 되었다. 의견을 표출하지 않게 되면서 실수는 줄었지만 주변의 오해와 답답함은 커져만 갔고 스스로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불분명해졌다.


어느 날 영어를 아주 잘하는 선임에게 어떻게 하면 영어를 그렇게 잘할 수 있는지 조언을 구했을 때 내가 처한 상황에 대한 실마리가 잡혔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영어를 잘하는 게 아니야. 말을 잘하는 거지."


처음 대답을 들었을 때는 무슨 말장난인가 싶었다. 그 선임이 해외에서 살다 왔기 때문에 그냥 영어를 외국어라고 인식을 하지 않아서 말이라고 표현을 한 건지, 대답하기 귀찮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는 뚱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내게 담담한 얼굴로 말을 이어갔다.


"국어를 못하면 영어도 못해. 라이팅(Writing)을 못하면 스피킹(Speaking)도 못해. 영어로 읽기, 듣기 다 된다고 말 술술 절대로 안 나온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그가 말하고자 했던 바는 표현과 전달의 중요성이었다. 말을 하는 것 이전에 어떤 내용을 전달하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을 테고, 그것을 어떻게 다듬어서 표현해야 효과적일지 고민해 보는 과정 자체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듣는 사람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성격 탓만 하던 내게는 그동안 포기했던 표현의 욕구와 대화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조언이었다.


그와의 차이점은 성격뿐만 아니라 발화량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그는 쾌활하기도 했지만 대화를 할 때 부연설명과 질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상대방에게 대답을 하기 전에 여러 가지 구체적인 예시를 들었고, 상대방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받은 질문을 비슷한 단어로 바꿔 되묻기도 했다. 쓸데없는 말을 한다거나 필요한 말을 일부러 생략하지 않았으며, 대화 중에 상대의 말을 자르지 않고 필요할 때는 잠시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그와 대화하는 이들의 얼굴은 항상 즐거워 보였고 모두가 그를 좋아했다.


대화는 서로가 즐거워야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상대가 경청한다는 느낌을 받으면 감사를 느끼고 오고 가는 말이 조심스럽고 부드러워진다. 축구경기에서 패스가 물 흐르듯 이어지는 티키타카(Tiqui-Taca) 전술을 볼 때 쾌감을 느끼듯이 서로 적절한 표현을 통해 대화에서 쿵짝이 맞게 되면 즐거움의 시너지가 발현된다. 말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명의라도 병명을 알아내는 데에 애를 먹는다. 아무거나 먹고 싶다고 무책임하게 말하지 말고 뭐는 좋고 뭐는 싫다고 확실히 표현을 한다면 상대방도 그에 맞게 메뉴를 선택할 것이다. 텔레파시 기술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이다. 궁예의 관심법이 진짜였다면 우리 조상은 후고구려나 태봉이 천하를 통일한 시대를 겪었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으려면 침묵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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