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과의 이별 ③ 오감에 담기는 풍경들
누구든지 여행을 가서 한 번은 하게 되는 행동이 있다면 그건 바로 사진 찍기다. 결국 남는 건 사진이라며 휴대폰을 꺼내 멋진 풍경을 저장하고 명소에서는 혼자 혹은 같이 여행온 사람들과 배경을 뒤로한 채 카메라 렌즈를 향해 웃음을 짓는다. 2000년대 초반부터 디지털카메라가 상용화되기 시작하면서 카메라 셔터나 휴대폰 촬영버튼을 누르는 데 필름카메라에 비해 비용부담이 완전히 해소되었다. 언제든지 누구든지 특별한 순간이나 일상을 담아낼 수 있는 기술이 보급된 것은 혁신적인 일이지만 경험의 소중함이 퇴색된 느낌이 들어 왠지 씁쓸한 기분이다.
사진을 찍거나 찍히는 것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도 휴대폰에는 어디서 왜 찍었는지도 모르는 화면들이 즐비하다. 카메라 폴더에 담겨만 있고 제대로 분류도 되어 있지 않아 사진이 저장될 때 부여되는 날짜와 시간으로 대충 장소만 가늠할 뿐이다. 집 주변 산책길에 서 있던 은행나무, 하천에서 물고기를 사냥하려고 다가가는 큰 새, 아무도 없는 길 위, 누군가의 뒤통수 등 분명 그 순간을 남기고 싶어 촬영한 것일 텐데 다시 봤을 때 아무 감흥도 없는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다. 저장용량이 많으니 상관없다고 넘길 수도 있었지만 갤러리 앱을 들어갈 때마다 느껴지는 답답함에 못 이겨 사진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청소와 정리의 기본은 버리기부터다. 전혀 의미를 알 수 없거나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사진들은 과감히 삭제했다. 몇 메가바이트라도 의미 없이 용량을 잡아먹는 게 싫었고 나중에라도 의미가 생기면 휴지통 폴더에서 30일은 남아있을 테니 일반 물건을 버리는 것보다 한층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다음이자 마지막은 폴더의 지정이다. 갤러리 들어가는 것을 기피한 가장 큰 이유는 의미 없는 사진이 많은 것도 있었지만 원하는 사진을 다시 보려면 날짜로 정렬을 하고 언제 찍었던 건지 다시 기억을 더듬으며 스크롤을 내렸다 올렸다 하는 데에 한세월이 걸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갤러리 내에 이름을 붙인 여러 개의 서랍을 만들기로 했다. 기존에 1) 최근 항목 2) 카메라 3) 다운로드 세 개로 단순했던 폴더 분류는 지금 스무 개를 넘어간다. 폴더는 더 복잡해졌지만 필요한 사진을 찾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거의 10분의 1로 단축되었다. 앨범 정리가 끝나자 기존 이미지 용량의 3분의 1만큼 여유공간이 생겨났고 내 기억을 복기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사진만 남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갤러리 공간을 구축하다 보니 새로 저장할 사진들에 대해서도 조심스럽게 다가가게 되었다. 지금 어떤 기분이 들어서 사진을 찍는 건지, 찍고 나면 언젠가 다시 보고 싶을 것 같은지, 으레 누군가가 찍어야 한다는 말에 휩쓸려 반사적으로 찍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의 생각을 거치고 나면 신기하게도 휴대폰은 주머니에 넣게 되고 눈으로 주변 풍경을 좇게 된다. 사진을 찍을 때는 들리지 않던 새나 곤충의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의 냄새를 맡게 되며 피부에 닿는 바람이 느껴진다. 이런 감각들이 한 차례 내 몸을 돌고 나면 그제야 휴대폰을 들어 필요 최소한의 사진을 찍고 만족하게 된다.
남는 건 사진만이 아니다. 사진은 거들뿐이다. 처음 가 본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음식, 여행지에서 본 이국적인 풍경, 바다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 등은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경험이다. 하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한 발 물러나 휴대폰 화면으로 가림막을 치고 대상과 직접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었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간의 잃어버린 순간들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그 편리함에 안주한 채 모든 경험들을 컴퓨터에서 검색만 해도 할 수 있는 간접경험으로 만들어버린 건 아닐까. 한가한 날에는 가끔 휴대폰을 놓고 밖에 나가보는 건 어떨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