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수상한 거래자

사담인의 서늘한 이야기 2편

by 인유

밤이 되자, 나는 상자를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남자의 문자를 받은 뒤로,
방 안은 더 이상 내 공간이 아니었으니까요.


서랍 속 낡은 속옷 몇 벌이 덩어리가 되어 남아 있었습니다.
차곡차곡 접어 검은 봉지에 싸고,
겹겹이 눌러 담아 상자를 닫았습니다.


그저 헌 천 조각일 뿐인데—
걸음을 옮길수록 무게는 몸속 깊이 내려앉았습니다.


편의점 문을 밀자, 형광등 불빛이 얼굴을 훑었습니다.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아무렇지 않은 척 상자를 계산대 위에 올렸습니다.


“보관 부탁드립니다.
찾으러 오는 사람이 비용을 낼 겁니다.”


점원이 고개를 들고 물었습니다.


“보관료 붙는데 괜찮으세요?”


짧은 물음이 목을 가로막았습니다.


나는 고개만 끄덕였고,
그 시선이 죄처럼 파고들었습니다.


혹시 남자가 어딘가 숨어 있는 건 아닐까.
뒤편 CCTV가 내 얼굴을 기록하고 있는 건 아닐까.


머릿속은 흩어졌다가 갈라지고,
보관증을 쥔 손가락은 굳어 있었습니다.


그제야 알았습니다.
내 몸이 얼마나 긴장으로 조여 있었는지.


문을 나서자, 등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아무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발걸음은 빨라졌습니다.
멀리 벗어나서야 겨우 숨이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여전히 낯선 시선이
내 흔적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결심했습니다.
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해야 한다고.
친절을 가장한 집요함.


그것이 과연 디자이너의 얼굴일까.


편의점에서 조금 떨어진 헌 옷수거함 뒤.
나는 몸을 웅크렸습니다.
형광등 불빛이 흘러내리고,
나는 기척 하나 없이 문만 주시하고 있었죠.


잠시 후—
문이 열렸습니다.
한 사람이 상자를 들고 나왔어요.


그러나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며칠 전, 내게서 미용기기를 사 갔던 여자.


그때와 같은 웃음.
이번엔 검은 상자를 품에 안은 채,
형광등 아래서 선명히 떠올랐습니다.


계산대에 고개를 숙이는 순간,
내 안에서 무언가가 뒤틀렸습니다.


‘왜… 그녀가?’


남자를 겨냥한 물건이었는데,
지금 내 흔적을 들고나가는 건,
엉뚱하게도 그녀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미리 짜인 극의 한 장면 속으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기운이 등을 스쳐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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