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물음

사담인의 서늘한 이야기 2편

by 인유

손 안의 기기는 꺼져 있었지만,

그의 말은 여전히 방 안 어딘가에 숨어 나를 겨누고 있었습니다.


‘먹잇감.’


그 한 단어는 메아리가 아니었습니다.

벽에 부딪혀 되돌아오는 대신,

내 안 깊숙이 파고들어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낯선 기운이 몸속에서 꿈틀거리며

내 영역을 조금씩 잠식해 들어오는 것 같았습니다.


동생은 기계를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았습니다.

짧고 날카로운 소리가 튀었고,

동생의 손은 무릎 위에서 깍지를 끼었다가 풀기를 반복했습니다.


“언니, 이건 우리가 감당할 일이 아니야.

경찰에 신고해야 해. 더 늦기 전에.”


나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생각은 모양을 갖추기도 전에 흩어졌고,

혀끝에는 공허만 맴돌았습니다.


‘정말 신고하면 끝날까?

아니면, 그가 말한 대로 덫이 닫히는 건 아닐까?’


방 안은 눌린 듯 무거웠습니다.

작은 움직임조차 허락하지 않는 공기.


동생이 다가왔습니다.

눈빛은 흔들렸지만, 목소리만큼은 단단했습니다.


“언니, 저 사람은 지금 범죄를 저지르고 있는 거야.

협박이고, 스토킹이고… 충분히 처벌받을 수 있어.”


나는 꺼진 화면을 바라봤습니다.

빛은 사라졌는데도, 보이지 않는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는 듯했습니다.


“언니, 듣고 있어?

왜 아무 말도 안 해?

설마… 아직도 망설이는 거야?”


결국 속마음이 흘러나왔습니다.


“만약 우리가 신고했는데,

그가 더 큰걸 준비하고 있었다면?

우리가 건드린 순간, 정말 덫이 닫히면 어떡해?”


동생은 굳은 채 잠시 멈췄다가 이를 악물었습니다.


“그래서 더 신고해야 해.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에도,

그 사람은 우릴 장난감처럼 다루며 즐기고 있을 거야.”


정적이 방 안을 깊이 끌어내렸습니다.

눈을 감아도 흔적은 퍼져 있었고,

귓속에서는 둔탁한 북소리가 오래 머물렀습니다.


그의 말은 사라진 게 아니었습니다.

내 안 어딘가에서 얼어붙은 채,

여전히 나를 붙잡고 있었습니다.


동생의 주장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누구라도 신고부터 했을 겁니다.

사건은 절차를 밟고, 증거는 정리됐겠죠.


하지만 나는 달랐습니다.

그의 메시지를 곱씹을수록, 자꾸 되물었습니다.


‘왜 그는 이런 방식으로 말을 이어갈까.

도망치라, 계산하라, 먹잇감이라 부르면서…

그 말 사이에 숨어 있는 건 뭘까?’


나는 그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그 표현들이 단순한 위협이 아니라,

끝내 꺼내지 못한 고백일지도 모른다고.

손가락질받아도 상관없었습니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묻고 싶었으니까요.


“당신이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정말 돈 때문인가요.

아니면, 숨기고 있는 다른 무언가 때문인가요.”


나의 물음에 그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조롱, 냉소, 위협, 친절을 가장한 말들이

더 이상 내 휴대전화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신경 끝자락을 죄듯 굳히고, 짧게 적었습니다.


“나는 보았습니다.

당신과 내가 맡긴 상자를 들고 있던 여자.

두 사람이 은밀히 교환하는 장면을.

그 여자 번호도 가지고 있습니다.

당신 번호가 진짜가 아니라면,

그 여자는 알고 있겠죠.

둘이 연락했으니까.

만났으니까.

그렇게 주고받았으니까.

그리고 그 장면.

내가 경찰서에 신고하면,

증거 자료로 바로 수거될 겁니다.”


나는 글을 적는 내내 억울함과 울분에 휩싸였습니다.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하지만 심호흡을 길게 내쉰 뒤,

다시 이어 적었습니다.


“저는… 당신이 그렇게 나쁜 사람만은 아닐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녀도 제게 말했죠.

남편이 실직했다고.

어머니가 병원에 계신다고.

아이를 키우느라 힘들다고.

그래서 도와달라고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물건을 흥정하며 집안 사정을 늘어놓는 모습이,

어딘가 어색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저는 믿었습니다.

사정이 있겠지, 하고요.

… 혹시, 당신이 그 여자분의 남편이신가요?”


잠시 후, 나의 긴 이야기를 자르듯 짧은 답이 도착했습니다.


“재밌네요. 그런 상상까지, 하시다니요.”


단 두 줄.

그뿐이었는데, 오히려 더 깊게 파고들었습니다.

짧아서 가벼워진 것이 아니라,

짧기에 더 무겁게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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