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냉소

사담인의 서늘한 이야기 2편

by 인유

남자의 짧은 답은 짐처럼 내려앉았습니다.


“재밌다니…”


나는 화면에 눈을 박은 채 한참을 버텼습니다.
떨리는 숨이 길게 흘러나왔습니다.
그 짧은 냉소가 어깨를 타고 흘러내려 등줄기를 눌렀고,
휴대전화 불빛은 얼굴을 훑고 지나가며 방 안의 공기를 더 옅게 만들었습니다.


“상상이라고요? 정말 그렇게만 보십니까.”


입술 끝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제 안에서는 단단한 목소리가 올라왔습니다.


“제가 왜 그 편의점을 골랐는지 아십니까.
거긴 네 방향 모두 눈이었습니다.
은행 카메라, 경찰서 감시, 편의점 보안.
당신들이 오가며 남긴 흔적은 이미 남아 있어요.”


말이 길어질수록 숨은 자꾸 짧아졌습니다.
목구멍은 바짝 말라 있었고,
손바닥에 밴 땀은 유리 표면을 불안하게 흔들었습니다.


“그리고 혹시 몰라 제 휴대전화에도 담아뒀습니다.
당신과 그녀가 상자를 건네던 순간.
만나고 헤어지는 장면까지.
내 손 안에도 있죠.”


순간, 방 안은 고요했습니다.
시계 초침 소리가 불필요하게 크게 울렸습니다.
그 고요를 가르듯, 화면에 비웃음이 스며들었습니다.


“재밌네요. 그렇게까지 하셨다고요?
하지만 그게 정말 제 얼굴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세상엔 닮은 사람이 많습니다.”


나는 시선을 거두지 않았습니다.
커튼 틈으로 흘러든 가로등 불빛이 방 안에 길게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그 그림자 속에서, 나는 목소리를 또렷하게 붙잡았습니다.


“얼굴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나는 당신이 왜 이런 방식을 택했는지가 궁금할 뿐이니까요.
왜 남의 사정을 팔아 흔들고, 그 틈에서 이익을 챙겨야 했는지.
그걸로 과연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심장은 바쁘게 뛰었지만, 그 속도는 두려움이 아니라 확신에 가까웠습니다.


“당신은 늘 피해자인 척하죠.
사정을 내세워 값을 깎을 때도, 책임을 떠밀 때도.
하지만 기억하세요. 기록은 변명하지 않습니다.
말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어도, 남겨진 장면은 거짓을 허락하지 않거든요.”


곧 화면이 다시 번쩍했습니다.
불빛이 눈동자에 반사되며 방 안이 더 차갑게 가라앉았습니다.


“꽤 집요하시군요.
그렇게 자신 있다면 신고하시죠.
아니면 말도 하지 마시던가요.”


입술은 바싹 말라 있었지만, 목소리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신고가 목적이었다면 이미 끝났을 겁니다.
나는 지금, 당신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남의 일상을 짓밟으며 얻은 돈이 결국 무엇을 지켜줬는지.
그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신들이 두려워하는 올가미는 이미 씌워진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내 말은 벽에 부딪혔습니다.
돌아온 건 흩어지는 조롱뿐.



나는 알았습니다.
여기서는 더 이상 진짜 얼굴을 끌어낼 수 없다는 걸.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문자가 아니라, 직접 목소리로 들어야 한다는 것을.
숨결에 묻은 떨림과 균열—
그 속에서만, 이 가면은 벗겨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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