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통화

사담인의 서늘한 이야기 2편

by 인유

남자에게 짧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야기하죠. 전화받으세요.”


신호음만 길게 이어졌어요.

귓속이 텅 빈 듯 메아리쳤고, 방 안의 공기는 점점 눌리듯 무거워졌습니다.

끝내 그는 받지 않았죠.

숨을 한 번 고르고, 이번엔 여자의 번호를 눌렀습니다.

두 번 울리더니 곧바로 연결되었어요.

심장이 반 박자 늦게 뛰더군요.

화면 너머 활자로는 느낄 수 없던, 살아 있는 기운이 목덜미를 스쳤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태연했어요. 흔들림이 없었습니다.

그 무심한 목소리 뒤로 비닐 스치는 소리, 테이프가 ‘찍’ 하고 끊기는 소리가 흘렀죠.

포장하고, 넘기고, 다시 포장하는 손길이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어떤 건으로 연락하신 거죠?”


말투는 정중했지만 분주했어요.

마치 다른 거래 사이에 내 통화를 끼워 넣은 듯했습니다.

나는 목을 축이고 곧장 말을 박았습니다.


“은행동 사거리 편의점에서 상자를 인계받으셨죠.

그 상자, 지금 어디 있습니까.”


순간 숨이 멎는 듯하더니, 금세 평정이 돌아왔습니다.


“음… 제가요? 요즘 부탁받아 맡아 드리는 건이 많아서요.

어떤 물건 말씀하시는 거죠?”


나는 눈꺼풀을 닫았다 열며, 그날의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신호등 앞에서 검은 모자를 쓴 남자에게 넘기셨죠.

스치듯 팔이 바뀌었고, 각도만 달라졌습니다.

내 휴대전화에도, 주변 카메라에도 기록돼 있어요.”


수화기 너머에서 테이프가 다시 ‘찍’ 하고 끊겼습니다.

여전히 담담한 목소리가 이어졌죠.


“요즘 다 그렇게 해요. 부탁받은 걸 건네고, 수고비 조금 챙기고.

그게 거래 아닌가요.”


나는 호흡을 고르고, 눌러서 말을 꺼냈습니다.


“사정을 팔아 값을 깎고, 받은 걸 다시 되파는 일.

내 흔적까지 ‘상품’으로 올린 일.

그게 당신들 방식이었죠.”

“흔적이요?”


여자가 짧게 웃었습니다.


“본인이 내주신 거잖아요. 스스로 건넨 걸 두고, 왜 저를—”

“그건 낡은 천 조각이었습니다.”


내 목소리가 낮아졌습니다.

창문 틈 사이로 스며든 기류가 뺨을 스쳤죠.


“사람의 일상을 파고드는 권리는, 누구에게도 준 적이 없어요.”


잠시의 공백.

뒤편에서 바코드 인식음이 ‘삑’ 하고 울렸습니다.

나는 테이블 가장자리를 움켜쥔 채 굳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었죠.


“문의가 많아서 그런데요, 지금 어떤 건 처리 중이라고 봐야 하나요?

정확히 어떤 거래자분이신지… 성함을—”

“성함은 필요 없습니다.”


내 말이 그녀의 문장을 잘랐습니다.

손가락 마디에 힘이 잔뜩 뻗쳤습니다.


“선택지는 두 가지입니다.

지금 여기서 왜 그랬는지 설명하시든가,

아니면 제가 오늘 기록을 들고 바로 지구대로 갑니다.”


수화기 너머 공기가 아주 미세하게 꺾였어요.

낮게 묻는 소리가 흘러왔습니다.


“그 말을… 어디까지 들으셨어요?”

“충분히요.”


손등에 습기가 번져 들었고,

가슴 깊은 곳의 고동이 혈관을 두드렸습니다.


“나는 심판하려고 전화한 게 아닙니다.

다만, 지금 이 자리에서 당신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습니다.

왜 여기까지 왔는지. 왜 사람의 틈을 노렸는지.

말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 경우엔 절차대로 가겠습니다.”


멀리서 출입문 감지음이 들려왔습니다.

“어서 오세요”라는 기계음이 스쳐 가고,

비닐봉지를 끌어당기는 소리가 따라왔습니다.


그녀는 오래 침묵했습니다.

그 고요가 오히려 동의처럼 느껴졌습니다.

마침내 낮고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지금은… 곤란해요.”

“알겠습니다.”


내 목소리도 고르게 이어졌습니다.


“그러면 오늘 밤, 메시지로 시간과 방식을 정하죠.

당신들 이야기, 직접 듣겠습니다.

대신 한 가지. 그 남자와 함께 나오세요.”


짧은 숨이 전화 너머로 흘렀습니다.


“그분은 지금… 바쁩니다.”


나는 담담히 덧붙였죠.


“사람이 바쁠수록, 기록은 더 또렷해집니다.”


잠시 멈춤.

그리고 그녀의 짧은 답.


“… 메시지 주세요.”


통화가 끊겼습니다.

휴대전화를 내려놓자, 손목까지 땀이 번져 있었습니다.

심장은 여전히 빨랐지만,

그 속도는 더 이상 도망치려는 리듬이 아니었어요.


나는 메모장을 열어 시간과 장소의 후보를 적었습니다.

은행 동선, 가로등 위치, 출입 카메라 각도.

이번에도 눈이 많은 곳이어야 했죠.


‘말하게 할 것.

변명과 고백의 경계를, 스스로 넘게 만들 것.’


공기는 눌린 듯 답답했지만,

손마디는 더 이상 떨리지 않았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방 안은 다시 적막에 잠겼습니다.


휴대전화 화면은 꺼져 있었지만,

귓가에는 아직 그녀의 목소리가 맴돌았죠.


나는 확신했습니다.

오늘 밤, 그녀는 결국 입을 열 거라고.

말하지 않으면 무너지는 건 오히려 그녀 쪽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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