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가에 낡은 전봇대가 한동안 서 있었다.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발끝으로 찼다.
허공이 낮은 숨소리처럼 흔들렸다.
돌아서는 길목에는
한 번도 끝을 본 적 없는 길이
오늘도 나를 밀어내고 있었다.
그 뜻을 알아도
나는 잠시 모르는 척 걸음을 옮겼다.
하늘은 오래 묵힌 상처처럼 파랗게 번지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불안을
두 손으로 가렸다.
쓸모 없어진 생각들이
낯선 풍경처럼 흘러가고,
그 뒤쪽에서
네 흔적이 따라붙었다.
더 새길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문득 서늘하게 스쳤다.
나는 오래된 비밀을 감추듯
천천히 눈을 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