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동대문 종합시장은 처음인데요

스와치 도둑은 아닙니다만

우리 아부지는 젊었을 때 동대문 시장에 있는 양복 원단가게에서 원단 재단을 하는 일을 하셨는데요,

서울 토박이로 자라오신 데다가 동대문으로 매일 출퇴근을 하셨으니 아빠에게 동대문은 놀이터였어요.


연말이면 온가족이 (대부분 어머니가) 열심히 모으신 돼지저금통을 뜯어 현금을 한가득 들고 동대문 시장을 갔죠. 그때만 해도 길거리에 브랜드 의류 창고정리 판매가 어마무시 했어요. 그렇게 현금을 탈탈 털고 양손 가득 검은 봉지를 들고 허기진 배를 달래주는 마지막 코스는 언제나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이었습니다. 가는 길에 동대문 종합시장을 뚫으며 커튼가게 하시는 아빠 친구분에게 인사하는 것도 필수코스였죠.


그렇게 추억 많은 동대문.

그 건물 안에서 손을 벌벌 떨며 스와치 도둑 행세를 하는 제 모습은 태어나 상상도 안해봤더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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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일, 첫 동대문 종합시장 나들이

한 가게에서 젊은 남자 직원분과 대화를 했어요


이거는 면이에요?

네 면이에요

단가가 어떻게 돼요?

1마에 6천 원이요

1 마면 길이가 어떻게 되는 거죠?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이없는 질문이 아닐 수가 없죠

가로폭은 55인치로 고정이고 세로가 90인 게 1 마예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직원분은 천사셨어요.

도매시장에서 1마에 몇 센티냐고 물어보는 사람에게 그렇게 친절할 수 있다니

지금이라도 큰 절을 올리고 싶어요


길치는 아니라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동대문 종합시장은 저를 길치로 만들기 시작합니다.

3시에 도착했지만 2시간동안 갔던 곳을 또 가며 슬 눈치를 봅니다.


스와치는 그냥 가져가도 되는거군,

당당하게 가져가자 !


이내 한 가게 멈춰요.

꽃무늬 원피스를 입고 핸드폰과 장부를 손에서 떼지 못하는 언니 앞에 서서

스와치를 한참 뒤적였어요. 그리고 용기를 냅니다.


일단 뭐라도 주문해보자





꽃과 음악 그리고 손님이 끊이지 않는 집

flower, music, and gues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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