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속았수다
젊은 선생님의 권유로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저녁 설거지를 끝내고 양치하고 잠옷을 갈아입고 만반에 준비를 끝낸 후 남편에게 부탁했다.
평소 특별히 드라마나 텔레비전에 빠지는 성향이 아니라서 리모컨 주도자인 남편이 좋아하는 채널을 같이 보는 편이다.
인간극장이나 사람들의 삶을 다루는 프로는 종종 나의 권한이 주어지지만, 그 외는 대부분 한쪽으로 치우쳐 잠시 거실에 누워 남편과 일과를 이야기하다 내가 먼저 잠 속으로 빠져버리니 남편에게 자주 할머니란 소리를 듣지만, 나이는 어쩔 수 없는지 잠과의 사투에 늘 지고 살았지만, 첫 1회부터 눈을 떼지 못하고 숨소리마저 죽인 채 때론 설움에 복받쳐 소리내어 울다가 가슴안에 숨겨두었던 몽글함을 꺼내보다가 혼자 웃다가 누군가 그리워하다 2편 3편 끝없이 보았다.
퇴근하면 즐거웠다.
관식과 애순의 삶에 푹 익혀 저런 게 사는 거구나, 깨닫다가도 나도 모르게 저런 무쇠 같은 짝지가 있었으면 했다.
한편의 동화 같은 지난한 인생을 읽고 가슴안에 스며 나오는 삶의 의지를 보았다.
사실, 요즘 우울했다.
검사 결과도 중증으로 나왔다.
예전엔 의도적으로 그래도 그렇지 않다는 항목에 동그라미 했지만, 이번은 그냥 마음을 솔직히 터놓고 싶었다.
문항마다 '그렇다.' 그렇다, 정말 그랬으니까 그렇다.
밀물처럼 밀려온 슬픔은 쉽게 빠져나간 듯했지만, 빠져나간 게 아니라 감각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고 웃음도 덧없고 사는 재미도 의욕도 없었다.
인생이란 레이스에서 잠깐 내려 쉬어간들 뭐가 달라지겠어.
쉬어야지, 내려놓아야지, 하지만 삶은 멈추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가는 일이니 쉽지 않았다.
눈물이 나고 자주 체하고 꽃도 새도 반갑지 않은 시간 속에 폭싹 속았다는 희망을 보게 했다.
수고했다는 제주 방언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그래, 나 참 수고 많이 했지.
남편도 자식도 이만하면 잘하고 있는 거야.
이제 좀 이기적이어도 괜찮지. 내가 좋아하고 내가 리모컨 방향을 잡아도 괜찮은 거야.
나도 살아있는 사람이니까, 어디서 왔는지 모를 자신감이 도르르 돋았다.
며칠 전 거실에 나란히 누운 밤, 남편에게 말했다.
나는 애순이는 되지 않을 거야, 그렇지만 당신은 나의 관식이가 되어야 해.
강제만 바람 반 던진 말이었지만 이 세상에 나의 관식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이 무너져도 내 편, 내 의지, 내 마음을 보듬어주고 전적으로 나만을 사랑하는 그런 무쇠 같은 남자, 아니 여자이어도 되겠지. 엄마 언니 오빠 동생 자식 남편 누구든지 나의 관식이가 되어주는 사람, 단 한 사람 그런 사람을 갖고 싶다.
중년을 넘긴 잠만 많이 자는 할머니의 욕심이 과한 것일까.
삶은 힘들어도 마음을 같이 나누어줄 수 있는 사람과의 일생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런 인생을 살다 가고 싶다.
애순의 삶을 사는 이 세상 모든 여자의 로망, 무쇠 관식과 소녀 애순의 사랑.
삶의 버거움 우울 치료는 약으로도 가능하지만, 때론 이런 명화 같은 작품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힘을 가지게도 된다.
시나 소설도 마찬가지지만 가장 원초적인 질문인 사랑이 무엇인지 사람은 인생은 어떤 것인지
풍경 하나에 목소리 둘에 그리고 우리 마음에 있다는 것 알고 있지만 바빠서 또는 나눌 내가 없어서 그럴 수 있지만 답은 항상 자신 우리가 알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