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BC카드 광고가 TV에 쏟아지던 시절, 도진은 그 문구를 들을 때마다 묘한 저항심을 느꼈다.
‘세상은 우리 모두를 부자로 만들어주지 않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그걸, 너무 어릴 때부터 알고 있었다.
도진이 초등학교 3학년 때, 가족은 서울 도봉동의 한 동네로 이사했다. 당시 서울시 공무원이셨던 큰아버지가 곧 재개발될 것이라며 추천한 곳이었다. 어린 도진은 그곳에서 큰 충격을 받았다. 공동 화장실을 쓰는 판자촌, 다닥다닥 붙은 이웃집의 싸우는 소리가 매일 밤마다 들리고, 근처에 있는 중랑천에서 하수도 냄새가 은은하게 풍겼다.
재개발은 이사를 간 지 3년이 되어서야 시작했고, 이후에도 아파트를 건설하느라 2년 동안 가(假)이주 단지에서 살아야만 했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는 다 같이 어려운 형편에 있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그랬는지 차별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랐었는데, 가이주 단지로 이사해 근처 중학교를 배정받아 다니면서 적지 않은 차별을 경험했다.
“저 애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
그 말은 기존 동네에 살던 어른들 입에서 스스럼없이 흘러나왔고, 같은 반 아이들은 별 악의 없이, 그러나 무심하게 거리를 뒀다. 도진은 일찍 배웠다.
“세상은 그냥 가만히 있으면 절대 품어주지 않는다.”
1997년, 도진이 중학교 2학년일 때 IMF 외환위기가 터졌다. 신발 장사를 하던 아버지의 가게는 문을 닫았다. 아버지는 매일 새벽, 일찍 짐을 챙겨 일용직에 나가셨다. 가끔은 지방 건설 현장에 가느라 몇 주씩 보지 못했다. 도진의 어머니도 동네 섬유 공장에서 일을 하셨다. 아버지,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도진의 가슴 어딘가가 조용히 부서지는 걸 느꼈다.
고등학교를 거치면서도 집안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래도 도진의 부모님은 하나뿐인 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야 한다. 달라져야 한다.’ 매일 되뇌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았다. 도진은 노력보다는 도망치듯 시간을 흘려보냈고, 삼수 끝에 겨우 인서울 턱걸이로 H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도전은 신라호텔에서 발레파킹 아르바이트를 하며 서울 상류층의 세계를 가까이서 목격했다. 벤츠 S클래스, BMW 7시리즈, 재규어, 에쿠스…. 차 안에서 흐르던 감미로운 음악과 향기로운 냄새, 조수석에 놓인 원서와 CD 음반들.
‘이 사람들은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구나.’
그들의 차를 몰면서 도진은 다짐했다.
‘나도 언젠가 이곳에 설 것이다. 단지 흘러가는 사람이 아니라, 이름을 남기는 사람으로.’
도진은 대학 2학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다. 발레파킹을 하던 경력을 살려 부대의 1호차 운전병으로 군 생활을 보냈다.
군대에서 우연히 『주식투자 100가지 이야기』라는 제목의 책을 읽고 주식에 흥미가 생겨 자격증 시험을 준비했다. 대대장님을 모셔다드리고, 대기하는 시간 동안 그는 차량의 핸들을 책상 삼아 공부했다. 휴가를 나올 때마다 투자 자격증 시험을 보고, 전역할 때는 이미 3개의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복학 후에도, 자격증, 토익, 인턴 생활 등 금융권 취업을 위한 준비를 지속했다. 결국, 중소형 증권사에 애널리스트로 입사할 수 있었다. 이 모든 시간은 한 가지를 증명했다.
“나는 세상이 만들어준 길 위에 있지 못했다. 내 길은, 내 손으로 만들어 나가야 했다.”
그래서 도진은 세상과 부조리한 구조에 본능적인 이질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남들이 관습이라 부르는 것, 남들이 눈치 보며 모른 척하는 것, 남들이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는 것─ 그 모든 것에 의문을 품었다.
‘왜 우리가 당연히 받아야 할 것을 받아내지 못해야 하지? 왜 시장은 기득권자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걸까?’
도진은 뼛속까지 반골이었다. 그 성격은 세상을 향한 복수심이라기보다, 버림받았던 과거의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것이었다.
‘세상을 바꾸고 싶은 게 아니다. 단지, 나 같은 아이들이 더는 좌절하지 않게 하고 싶은 것이다.’
BC카드 광고는 여전히 사람들의 머릿속을 맴돌고 있다.
“여러분, 모두 부자 되세요.”
도진은 조용히, 하지만 단호하게 중얼거렸다.
“이런 거짓말은, 더 이상 누군가의 꿈이 되어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