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K경제 신문사 회의실. 이승민 기자는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노트북을 열었다. 그가 꺼낸 노트북 옆엔, 도진이 전날 업로드한 보고서가 인쇄되어 있었다. 표지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미국 시장에 투자해야 하는가 - 인구 증가가 자본 시장에 미치는 영향』
- RM리서치. 최도진.
“오늘 인터뷰는 일부 발췌해서 방송으로도 내보내려고 하니까, 존칭으로 할게.”
이승민이 웃으며 말했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승민은 도진을 편하게 해주는 멘트로 자연스레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번 보고서 주제가 ‘미국에 투자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내용이던데 맞나요?”
“맞아요. 이번엔 숫자가 아니라 사람으로 풀어봤어요. 인구 구조가 어떻게 시장을 떠받치고 있는지 말이죠.”
도진의 설명은 간결하면서도 단단했다.
미국은 2024년 기준, 인구가 3억 4천만 명을 넘었고, 연간 약 1% 가까이 증가 중이다. 놀라운 건, 이 숫자가 단순한 출산율이 아닌 설계된 증가라는 점이었다.
“이민이죠. 미국 인구가 증가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85%가량이 이민으로 인한 것이거든요. 미국은 필요하면 인구를 정책적으로 늘릴 수 있는 나라예요. 그것도 고학력, 고소득, 고소비층을 중심으로요. 그들은 주식시장에 들어오는 신선한 자금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도진은 보고서 한 페이지를 펼쳐 보이며 설명을 이어갔다.
미국의 퇴직연금 401(k) 제도의 투자구조, 미국 근로자 대부분이 매달 월급의 10% 안팎을 노후자금으로 투자하고, 그중 상당 비중이 미국 주식시장으로 흘러간다. 2023년 기준, 전체 운용 자산 중 약 71%가 주식에 투자되었고, 전체 자금 가운데 50% 이상이 미국 주식시장에 투자되고 있다.
“미국 시장은 신규 자금 유입이 구조적으로 내장돼 있어요. 자금 유입 없이 가격이 오르는 시장은 없거든요.”
이승민은 잠시 말을 멈췄다. 그의 손가락이 인쇄물 위를 천천히 훑었다.
“반면 한국은, 인구는 줄고 있고… 게다가 한국에 이민으로 들어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비숙련직이 많죠.”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문제예요. 한국은 소비가 줄고, 국민연금 같은 제도도 국내 주식 비중이 고작 13%뿐이니까, 시장 내부에서 자금을 뒷받침할 수 있는 투자자가 없어요.”
도진은 잠시 말을 멈췄다가, 낮은 톤으로 덧붙였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이 인구 감소를 그저 ‘조용한 자연현상’처럼 받아들이고 있다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조용한 게 아니라, 서서히 무너지는 시스템의 전조입니다. 투자도, 정책도, 시장도─ 모든 구조가 사람 위에 세워져 있는데, 그 기반이 무너져 가는데도 아무도 방향을 바꾸려 하지 않습니다. 인구 감소 자체도 문제지만, 더 큰 위험은 그 변화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시장과 제도를 바꾸지 않는 태도입니다.”
도진은 커피잔을 천천히 내려놓았다.
“시장은 숫자로 움직이지만, 그 투자자들이 없어진다면, 아무리 정교한 수식도 결국 무용지물입니다. 이미 많은 투자자들이 미국 시장으로 떠났고요.”
도진은 테이블 위에 출력된 슬라이드를 한 장 넘겼다.
“2025년 1분기 기준으로, 국내 투자자들의 해외주식 투자 비중은 한국 주식 거래금액의 24%를 넘었습니다. 그 해외투자 중 96%가량이 미국 시장이고요.”
이승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엔 레버리지 투자도 많이 하죠?”
“맞아요. 2배, 3배 레버리지 ETF. 2025년 4월 국내 투자자들이 가장 많이 사들인 해외 종목은 필라델피아 반도체 지수의 일일성과를 3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반도체 BULL 3X ETF(SOXL)’, 2위는 테슬라, 3위는 테슬라 주가를 2배 추종하는 ‘디렉시온 데일리 테슬라 BULL 2X ETF(TSLL)’, 4위는 나스닥100 지수의 수익률을 3배 추종하는 ‘프로셰어스 울트라프로 QQQ ETF(TQQQ)’, 5위는 엔비디아 순으로 집계됐습니다. 미국장 개장과 동시에 폭등주 매수, 테마주 단타… 이제는 ‘투자’라는 말보다 ‘베팅’이라는 말이 더 적절할 때도 있어요.”
도진은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며 말을 이었다.
“해외 언론에서도 이런 한국 투자자들의 행태를, ‘레버리지 중독 현상’, ‘극단적 포모(FOMO)’, ‘시장 불신의 산물’이라며 몇 차례 지적한 적이 있었죠. 한 미국의 자산 전문가는 ‘오징어 게임 방식의 위험투자’라는 리포팅을 통해서 한국 개인 투자자들의 이런 매매 행태가 상품 가격의 변동성을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이승민이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시장의 투자자인데 너무 심한 말 아닌가요?”
도진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냉정하지만,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에요. 장기 투자로 손해 봤던 경험, 정보에서 항상 뒤처졌던 경험, 개인은 늘 ‘나중에 듣고 비싸게 사는’ 경험, 이런 걸 다 겪은 사람들에게 ‘기다리라’는 말이 무슨 소리로 들리겠어요. 시장이 이렇게 장기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하니까, 시장도 점점 더 단기적으로만 움직이게 되는 겁니다. 한마디로 한국 투자자들은 다들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