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어둑한 회의실, 은밀한 자리. 조명은 낮았고, 와인 잔엔 반쯤 비워진 까르베네 쇼비뇽이 흔들리고 있었다.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서로가 누구인지, 더 말하지 않아도 되는 사이였다.
“카카오는, 신이 내린 플랫폼이에요.”
정장을 입은 남자가 조용히 말을 꺼냈다.
“전 국민이 매일 들여다보는 앱을, 우리가 무료로 나눠줬죠. 소비자에겐 공짜를 주고, 투자자에겐 자금을 뽑아냈습니다. 이런 구조, 흔치 않잖아요? 우리가 그걸 해낸 거죠.”
옆에 있던 남자가 미소를 지었다.
“카카오게임즈, 카카오페이, 카카오뱅크… 모회사는 항상 ‘스토리’만 남기고, 실탄은 자회사에서 다 뽑아냈습니다. 공모주 펀드로 기관투자자들도 수익을 냈지만, 실제로 돈을 번 건 우리였어요.”
한쪽 벽엔 ‘물적분할 후 상장 구조: 국내 특화 스핀오프 모델’이란 제목의 문서를 프로젝터가 비췄다.
“미국처럼 비핵심 사업을 털어내는 스핀오프랑은 달라요. 우리는 핵심을 분할하죠. 그리고 그 핵심에, 새 스토리를 입혀서 파는 겁니다. 시장엔 늘 ‘미래’를 판다. 그리고 우리는, 그 미래를 비상장 안에서 설계하죠.”
그들은 아무런 죄책감도 없었다. 시장 구조를 이해한다는 건, 곧 그것을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였다.
2021년 말, 뉴욕에서 MBA를 하고 있는 도진의 교실.
“도진, 한국 코스피가 이상해.”
씨티뱅크에서 대형 브로커로 일하고 있는 크리스가 말했다.
“뭐가?”
“내가 한국 주식을 기초자산으로 하는 상품을 하나 운용하고 있는데, 카카오라는 기업 있잖아. 8월에는 카카오뱅크를 분할해서 상장시키더니, 어제는 또 카카오페이를 분할해서 상장시키더라고. 이 분할 방식이 미국하고 너무 달라서, 무슨 황금 알을 낳는 거위 같던데. 30조 원짜리 회사에서 또다시 30조 원짜리 회사가 분할돼서 나오고 그러더라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 모르겠어.”
도진은 크리스가 넘겨주는 리서치 요약 보고서를 들여다봤다. 거기엔 카카오뿐 아니라 그동안 물적분할 되어 상장된 SK, HD그룹 자회사들도 포함돼 있었다.
“이거… 구조 자체가 투자자들한텐 지뢰밭이겠는데.”
도진은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 서울에 있는 이승민 기자에게 메일을 보냈다.
제목: 한국 자본시장의 그림자, 물적분할은 누구를 위한 구조인가
물적분할은 단순한 기업 구조조정이 아닙니다. 지금 한국 시장에서 벌어지는 일은, 대기업과 그 주변의 세력들만 돈을 벌고, 일반 투자자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고립된 스핀오프 모델’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는… 다방면에서 조력자가 없다면 불가능한 일입니다.
도진은 도서관 창가에 앉아, 한국의 전자공시시스템을 뒤적였다. 분할 상장 직후 폭락한 주가들, 기관 물량 배정 비율, 보호 예수가 풀리자마자 쏟아지는 매도 물량. 그 숫자들 사이로 희미한 연결고리가 보이는 듯했다.
도진은 며칠 후 한국 뉴스를 접했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 역대 최대 금액 돌파.
‘개인투자자들에게 따상의 환상을 심어주고, 이렇게 분할 상장을 진행하는구나.’
한편, 그의 눈엔 다른 뉴스 제목이 눈에 띄었다.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5개월 연속 순매도. 한국 시장 매력도 하락 시사
이건 구조의 문제다. 그리고 어디선가 이 구조를 실행에 옮기기 위해 부단히 움직였을 것이다. 아주 오래전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