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9일, 서울 여의도. 이른 아침인데도 증권사 지점 앞은 붐볐다. 어제부터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이 시작됐다. 청약이 가능한 7개 증권사 고객센터에는 전화가 빗발쳤고, 통화 연결이 안 되거나 스마트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고연령층 고객들이 지점으로 모여들었다.
“몇 주라도 받아야지. 이런 기회 또 있겠어?”
“공모가가 수요예측 밴드상단인 30만 원에 결정되었는데, 기관투자자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에서 1경 5,203조 원이 몰렸다잖아 글쎄.”
LG에너지솔루션. 국내 2차전지 산업의 미래, 그 정점 앞에 몰려든 개미들. 스스로를 납득시키며 돈을 싸 들고 줄을 서 있었지만, 사실상 그들은 설계된 판 위에 놓인 말에 불과했다.
멀리 떨어진 프라이빗 룸, 압구정 갤러리아 옆 빌딩 꼭대기. 창문 밖엔 강남 재건축 아파트들이 은빛으로 빛났다. 두 남자가 창가에 서 있었다. 이 중 한 명은 이태훈, 거래소 상장심사부 부장. 경제TV에서 뉴스가 조용히 울려 퍼졌다.
“LG에너지솔루션, 공모주 청약에 114조 원 몰려… 사상 최대 기록…”
이태훈은 빈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이번 건은 우리가 판 제대로 깔았지.”
건너편 남자. 금융위 자본시장국 출신의 장민혁, 실세로 보이는 그가 나지막이 웃었다.
“보는 눈 많았는데 말이야… 그 기자 하나가 좀 위험했지만, 이승민인가?”
“어쨌든 다 조용해졌잖아. 상장 강행하는 데 문제 하나 없었고.”
이태훈은 손에 든 리모컨으로 TV 음량을 살짝 올렸다.
“이번 공모주 청약 결과 114조 원이 몰리며, 국내 기업공개 청약의 새 역사를 기록했습니다. 7개 증권사에서 취합된 평균 청약 경쟁률은 69대1로 집계됐습니다.”
그는 다시 음소거 버튼을 눌렀다.
“이거 봐, 무슨 놀이공원 대기 줄 같잖아. 공모에 줄 선 개미들은 그저 ‘따상’ 꿈꾸고 들어온 거고.”
장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개미들까지 책임져야 하나? 정보 공개 다 했고, 제도도 지켰고… 결과적으로 다들 이익 봤잖아. LG화학은 배터리 투자자금으로 수조 원을 확보했고 거래소는 이번 상장 하나로 연간 최고 성과를 찍었잖아. 증권사들은? 개인 투자자들 공모에 참여시키면서 건당 수수료 1,500원, 2,000원까지 챙겼지. 거기에 공모하면서 모인 자금을 21일까지 가지고 있으면서 이자수익도 가져간다고. 2~3일 보유한 이자수익이 200억 원이 넘는다고, 공모주 이자 장사.”
이태훈은 고개를 살짝 숙였다. 정리된 가방 위에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명함이 놓여 있었다.
“나, 이제 거래소 그만둔다.”
“그래서? 진짜 간다고?”
“언제까지 붙어 있을 수는 없잖아. 이번 건으로 투자도 좀 받았고.”
장민혁이 천천히 웃었다.
“좋네. 우리는 좋은 일 한 거야. 누구든 다 먹었고, 시스템도 무너진 거 없고.”
“시장 안정을 유지한 채로, 증시에 자금 유입을 일으킨 거지. 상장하고 주가만 잘 유지되면 우리 일은 끝난 거지.”
이태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그 기자 놈 이름이 뭐였지? 이승민이라고 했나?”
장민혁이 찻잔을 내려놓았다.
“응. 걘 예전부터 이상하게 집요했지. 그 전에 카카오 자회사 분할 상장시킬 때부터 계속 물고 늘어졌었고.”
이태훈은 생각에 잠긴 듯 손가락을 두드렸다.
“최도진이라고 독립리서치 대표 알지? 그놈하고 친하더라고. 미국서 리포트 하나 넘겼던데.”
“나도 봤어. 한국의 주가지수가 이상하다는 거, 꽤 뼈를 찌르더라.”
잠시 정적이 흘렀다.
“…뭐, 어차피 안 터질 거야.”
“그래. 설계는 조용히, 의심은 흐리게, 결과는 예측 안 되게. 그게 룰이지.”
이승민은 커피잔을 들고 있었다. 그 앞엔 도진이 보낸 리포트 초안이 프린트된 채 놓여 있었다.
『물적분할을 활용한 주가 왜곡, 한국만의 독특한 상장 구조를 통한 자금 확보, 그리고 이를 방조하는 비공개 네트워크』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메모를 시작한다.
누가 이익을 봤나?
모회사는 지분율을 뺏기지 않았고, 자회사는 대규모 자금을 조달했고, 운용사는 공모로 수익을 실현했고, 거래소는 상장수수료, 증권사는 IPO 업무 위탁, 청약 수수료, 이자수익…
피해를 본 건 기존 모회사 주주들과 따상을 노리고 상장 첫날 진입했다가 물린 투자자들.
결국 피해자는 소액주주
메모의 마지막 줄에 그는 크게 동그라미를 쳤다.
구조적 약탈
거래소에 같이 출입하는 후배 기자에게 문자가 왔다. 휴대폰 화면이 번쩍 켜졌다.
“상장심사부 이태훈 부장 퇴사”
이승민은 눈썹을 찌푸렸다. LG에너지솔루션 상장은 거래소 역사에도 손꼽히는 대어였다. 이 정도 상장을 무사히 마무리했다면, 연말 성과 평가에서 확실한 보수, 무난한 커리어를 달성한 한 해를 보장받을 수 있었을 텐데. 갑작스러운 퇴사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창밖을 바라봤다. 1월의 서늘한 여의도 하늘, 회색빛 건물들 사이로 붉은 겨울 햇살이 스며들고 있었다.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는 조용히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마치 결심을 굳히듯, 천천히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
‘이걸 어디까지 쫓아갈 수 있을까… 아니, 어디까지 감당할 수 있을까.’
몇 주 뒤. 이승민은 한 지인을 통해 이태훈이 파인넥스트 파트너스로 이직했다는 소식을 전해들었다. 파인넥스트 파트너스는 업계 Top5 안에 꼽히는 사모펀드다. 도심 한복판. 교차로를 건너는 사람들 사이로 서 있던 그는 느리게, 그러나 분명하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무언가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이 상장한 뒤 반년 이상 지난 9월, 금융위에서 이례적으로 물적분할과 관련한 정책을 발표한다.
“이제부터 물적분할 상장은 분할 후 5년 이상 지나고 나서 가능하다.”
이 조항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12월 1일 분할했기 때문에 2022년 1월 27일 상장은 불가능한 것이었다. 분할한 지 1년 2개월 만에 물적분할 상장에 성공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금융위가 한발 늦게 규제 정책을 발표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