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로 돌아온 이승민은 조용히 문을 닫았다. 형광등 불빛 아래, 흩어진 서류들이 그의 시선을 기다리듯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그는 가방에서 도진이 건넨 자료를 꺼내 올려놓았다. 묵직한 무게가 손끝에 느껴졌다.
‘이제 어디서부터 파고들어야 하지? 증거가 필요하다. 명백하고, 부인할 수 없는 것.’
그는 노트를 펼치고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상장심사 기록
거래소 상장심사부 내부 문건.
심사 의견서, 상장 적격성 검토 자료.
소마젠, 네오이뮨텍 기술 심사 과정에서 누가 무리하게 상장을 관철했는가.
하지만 그는 곧 머리를 저었다.
‘내부고발자 없이 이런 내용을 취재하기엔 무리가 있다. 누군가 입을 열지 않으면, 문건은 끝까지 봉인될 테니까.’
▶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3호 펀드 투자 약정서
투자 자금 모집과 집행 과정에서 ‘특혜성’ 거래 흔적.
어떻게 파인넥스트 파트너스가 투자금을 확보했고, 어디에 먼저 자금을 배분했는지.
‘해당 사모펀드의 출자자 명단과 배분 내역을 추적하면 단서가 있을지도 모른다. 자금이 지나간 흔적을 따라가 보자.’
▶ 증권사 IPO 주관 기록
마지막으로 그는 고개를 들며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공모 주관사와 IPO 기업 간의 관계. 기관 투자자 배정 내역, 풋백옵션 조건 등.
그는 다시 자세를 바로 하고 메모장 한쪽에 굵은 글씨로 써 내려갔다.
해외 기업 기술특례 허용(2019) → 2020년 소마젠 상장 → 사모펀드 자금 회수
한국거래소의 기술특례 상장은 애초 국내 기업만의 제도였다. 그러나 2019년 규정 개정 이후, 소마젠과 네오이뮨텍 같은 해외 기업이 그 문을 통과했다. 그 전까지 해외의 기술 기업들이 국내에 상장하기 위해서는 ‘테슬라 요건(이익 미실현 기업 상장)’을 이용해야 했다. 하지만 그 제도는 상장 주관사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운다.
“IPO 이후 3개월 동안 해당 기업의 주가가 공모가보다 10% 이상 떨어지면, 주관사가 공모가의 90%로 다시 사줘야 한다.”
바로 풋백옵션 조항이다. 주관사들이 가장 꺼리는 리스크로 그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는 상장 방식이었다. 그래서 해외 바이오 기업들은 테슬라 요건 상장을 시도했지만 주관사를 구하기 어려웠다. 바로 그때, 금융위가 해당 규정을 고친 것이다.
‘해외 바이오 기업에도 기술특례 상장 허용’,
그 명분은 ‘글로벌 바이오 허브’.
이승민은 노트에 마지막 문장을 굵게 적었다.
사람은 거짓말을 해도,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거래소 상장심사부,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금융위. 세 개의 줄기를 관통하는 자금 흐름이 있을 것이다. 그때였다. 휴대폰이 갑자기 진동했다. 이승민은 화면을 내려다봤다. 알림창에 뜬 짧은 문자.
“이태훈 – 파인넥스트 파트너스 대표이사 취임”
후배 기자가 보낸 정보보고 알림이었다. 그는 핸드폰을 오래 내려다봤다.
도진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이 기자님. 단서를 발견한 것 같아요.”
퍼즐 조각이 맞춰지며 그의 눈빛도 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