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민감한 반응

by 최성환

“최 대표, 거래소 쪽이 은근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 같던데.”

도진과 애널리스트 시절부터 알아온 이승민 기자였다. 그는 도진이 3년 전, 코스닥 지수 왜곡 관련 첫 보고서를 냈을 때 “이거 진짜 기사로 써도 되냐.”라고 물었던 유일한 기자였다.

“왜요?”

“최 대표가 얼마 전 한국은행에서 세미나 했었다고 말했잖아. 그 후 한국은행이 이례적으로 거래소에 지수산정 방식 개정과 관련한 제안서를 보내왔는데, 그 내용으로 회의가 있었나 보더라고. 아직까지 거래소에서 직접적인 반박은 없는데, ‘지수를 흔들면 시장 신뢰가 깨진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돌고 있어. 그래서 기자들이 슬슬 눈치를 보더라고. ‘한국은행의 국내 증시 개혁론’ 이런 타이틀로 기사를 쓰려다가 거래소에서 ‘지수 신뢰를 흔들지 말자’는 압박을 받았다는 후배도 있었고.”

이 기자가 낮은 톤으로 덧붙였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그게 시장의 ‘신뢰’ 때문이라기보단… 본인들의 ‘이권’이 걱정되는 것 아니겠어? 그동안 얼마나 많이 상장을 통해 수익을 나눠 먹었는지─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잖아.”

도진은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기자는 말을 이었다.

“지금 이 구조를 바꾸자는 말은 결국, 그동안 거래소가 승인했던 수백 건의 상장을 부정하는 셈이잖아. 그걸 누가 쉽게 용납하겠어?”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본관 16층 회의실. 커튼은 반쯤 내려져 있었고, 바깥 풍경보다 내부의 분위기가 더 무거웠다. 상장심사부, 전략기획팀, 대외협력팀이 모인 비공식 실무 조율 회의. 회의명은 ‘지수편입 기준 개선 관련 내부 보고 점검’ 하지만 실상은 ‘최도진’이라는 이름이 회의 테이블 위를 맴도는 자리였다.

“지수를 흔들면 안 됩니다.”

상장심사부 부장이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저 독립리서치가 주장하는 건, 결국 우리 제도 전체에 칼을 들이대겠다는 거예요.”

대외협력팀 팀장이 말을 받았다.

“최도진, 저 사람이 3년 전에도 같은 내용으로 보고서를 작성한 적이 있었는데, 잠잠해진 줄 알았는데, 이번에 한국은행에서 세미나를 하게 됐나 봐요. 한국은행에 지인이 있어서 알아봤는데, 금융시장국 남지호 팀장이 이 내용에 완전 꽂힌 모양이라고 하더라고요. 제안서도 이쪽에서 작성했다고 합니다.”

전략기획팀 차장이 조용히 말했다.

“우리는 정해진 기준대로, 해오던 대로 하고 있는 것 아니겠어요. 이런 건 금융위 같은 데서 지침을 내려줘야 개선하든지 하는 것이지, 우리한테 책임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게 아닌가요? 거기다 지금 상장심사 대기 기업만 수십 곳입니다. 대선 후보자들 가운데 증시개혁을 공약으로 내세울 가능성도 높은데, 이미 상장심사 들어가 있는 것들부터 빨리 진행시켜야 하겠습니다.”

회의는 자신들의 입장을 재확인하는 차원에서 끝났다. 거래소에 출입하는 기자들 가운데 몇몇이 해당 회의 내용과 한국은행에서 전달한 제안서에 대해 취재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같은 날 저녁, 서울 청담동의 고급 한우 오마카세 ‘정진우옥’.

“승철아, 이 집 괜찮지? 여긴 국장급들도 자주 와. 건배하자.”

상장심사부 부장 정승철의 상사였던 이태훈 이사가 웃으며 잔을 들었다. 양복을 말끔히 차려입은 이태훈은 3년 전 대형 사모펀드 운용사인 파인넥스트 파트너스의 총괄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옆에는 이번에 IPO를 준비 중인 스타트업 대표 이준영, 그리고 전략기획팀 차장 유세훈이 자리하고 있었다.

“요즘 그 도진인가 뭔가 하는… 그 친구 보고서 관련해서 거래소가 좀 시끄럽더라?”

이태훈 이사가 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지수 개혁이 필요하다고 언론 쪽에서도 흔들고 있는 모양이던데.”

정승철 부장은 술을 한 모금 마시고 웃었다.

“지수만 흔드는 게 아니고, 우리 목줄을 흔드는 거지요. 지수 얘기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상장제도 문제로 가더라고요. 그런데 우리도 그동안 몇 번이나 고쳤잖아요. 기술특례 상장 절차도 투명하게 진행 중이고, 적자 기업 리스크 공시도 강화했고… 그런데도 늘 허점만 들추는 애들은 답이 없어요.”

이준영 대표가 잔을 들며 말을 받았다.

“그런데요, 부장님. 사실 이렇게 규정 다 맞춰서 상장 준비하는 회사 입장에선 그런 얘기 나오면 괜히 우리까지 걸러질까 봐 신경 쓰이긴 합니다. 특례 상장 폐지 이런 말 나오면 LP들이 눈치부터 보더라고요.”

유세훈 차장이 슬쩍 말했다.

“그래서 제가 요즘 내부 보고서에다 ‘지수 건들지 말자’는 쪽으로 정리하고 있어요. 정책팀에도 미리 분위기 돌려놔야 하고.”

이태훈 이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이런 상장 구조는 틀릴 수도 있어. 그런데 문제는, 이미 너무 많은 돈이 들어와 있다는 거야. 구조가 아니라 돈을 건드는 거니까, 이건 개혁이 아니라 파워게임이 되는 거지.”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승철 부장이 마무리하듯 말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조용히 넘기는 게 좋아요. 유 차장은 관련 기사가 어디서 먼저 나오기 전에 거래소 공식 입장을 슬쩍 정리해줘요. 우리 지수의 최우선 과제는 지금, 시장 안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라고.”

이태훈 이사가 자리를 일어서며 말했다.

“기분도 풀 겸 어디 2차나 갑시다.”


다음 날 오전 11시. 도진이 점심 약속을 나가려 준비하고 있을 때, 이승민 기자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최 대표, 지금 기사 하나 전달했어. 거래소가 ‘시장 안정성 확보가 최우선’이라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발표하며 지수 산정 구조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 자제를 요청했음. 내부적으로 ‘민간 분석자료로 시장 혼란 유발’이라는 표현도 들어있더라고.”

잠시 후, 통화가 연결됐다.

“최 대표, 그 보고서 혼자 쓴 거 맞지?”

“네, 왜요?”

“근데 너무 정확하게 찔렀다는 얘기가 많아. 거래소 쪽에서 ‘이건 개인이 쓸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라며 누가 뒤에 있는 거 아니냐는 말까지 돌고 있어. 내 판단으로는… 앞으로 RM리서치 이름 걸고 움직이기, 쉽지 않을 거야.”

도진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단순한 데이터 논쟁이 아니었다. 그들의 생존 논리가 위협받고 있다는 공포 반응이었다.

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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