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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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할머니와 연고가 깊었다. 집이 가까운 이유도 있지만 대체로 회피하고 싶을 때 할머니를 찾아갔다. 할머니의 품은 그 마음씨만큼 포근했다. 할머니에게 달려가 안기면 모든 걱정거리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주림아, 느이 엄마 아빠가 또 싸우거등 언제든지 할미한테 오너라.
그래서 엄마 아빠가 싸울 때면 신발도 제대로 신지 않은 채로 귀를 틀어막고 할머니 댁으로 달려갔다. 할머니는 나를 기다렸다는 듯이 달콤한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구름처럼 몽실몽실하고 부드러워서 좋았던 마시멜로가 한가득 구워지고 있는 화로로 다가가면 그것이 무척이나 기대되어 걱정되던 마음이 한 번에 사르르 녹았다. 어떤 날은 특별할 것 없는 날이었지만 마시멜로가 너무 먹고 싶어서 우울한 척 할머니를 찾아갔던 적도 있다. 사실 할머니는 내가 거짓말을 했다는 걸 알고 있었겠지만 모른 체 내 입에 달콤한 구름을 넣어주었다. 죽 늘어나는 마시멜로를 입안에서 녹이면서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졸음이 몰려왔다. 그림 같이 고요한 장면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가 안정감 있게 들려왔다. 할머니의 무릎에 기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나면 항상 엄마 아빠가 다정하게 날 항해 걸어오고 있었다. 필히 할머니는 마법사라고 생각했다. 혹은 할머니 집이 마법과도 같은 공간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달콤한 마시멜로, 포근한 잠자리, 웃으면서 다가오는 엄마와 아빠까지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어느 날은 잠에서 깼는데 옆에는 할머니도, 나를 따스하게 맞이해 주는 엄마도, 아빠도 없었다. 마법이 풀려버린 것 같다는 두려운 마음에 마을 번화가까지 나가서 울며 할머니를 찾았다. 그러다가 놀라운 광경을 발견했다. 그 어린 날의 나에게 너무나도 충격적이었는지 지금까지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허름한 식당 앞에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웅성이는 소리에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여? 저 집 아저씨가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야? 사람들을 제치고 마주한 덩치 큰 아저씨는 어린 남자아이의 손에 들린 초록색 병을 쳐냈다. 그러자 귀가 찢어질 듯한 소리가 났다. 바닥은 위험하기 그지없는 유리 조각들이 제각각 나뒹굴고 있었다. 주변에서 놀라 소리치는 소리도 얼핏 들렸다. 나는 눈물을 뚝 그친 채로 어떤 공포감에 휩싸여 움직일 수 없었다.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얇고 작은 목소리로 그저 할머니만을 반복해서 불렀다. 마을 이장님 오셨소!! 그때 뒤에서 할머니가 나를 발견했다. 할머니는 나를 부르며 다가왔다. 어디 갔었어? 한참 찾았잖아! 그 순간 유리 조각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쓰러져 있던 남자아이가 일어나 국밥집 아저씨를 찔렀다. 피가 묻은 유리조각이 나온 자리에서 피가 울컥 튀어나왔다. 할머니는 나를 안고 사람들 사이를 빠져나갔다. 할머니의 품에 안겨 그곳에서 멀어지는데 온몸에 피를 묻힌 어린 남자아이가 멍한 표정으로 다른 아이 손에 이끌려 달리고 있었다. 그게 내가 본 그 아이의 마지막이었다.
할머니 집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이 나를 데려갔다. 그리고 내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 나의 모든 것이었던 할머니의 생이 저물었다.
할머니의 장례식은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할머니 집에서 느꼈던 온기가 한 군데도 남아있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낸 탓에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고 공허한 표정으로 할머니의 영정사진을 응시할 뿐이었다. 정말로 세상을 다 잃은 느낌이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이후로 부부싸움은 더 잦아졌다. 할머니의 장례식장에서부터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싸움만 늘어갔다. 난 그들의 싸움에서 도태되었다. 할머니를 찾아가는 것만이 나에게 유일한 방법이었는데, 이제 할머니는 없었다.
엄마는 아빠와 함께 살 수 없다고 했다. 엄마는 나를 버리고 떠났다. 그 사이 아빠는 점점 내가 알던 아빠가 아니게 되었다. 매일 술에 취해있었고, 매 순간 불만이 가득했다. 자주 알 수 없는 헛소리를 했고 그 불똥이 나에게 튀기도 했다. 그렇게 내 세상이 어두운 검은색으로 물들어 갔다. 오롯이 나만의 공간, 그곳에서 방문만 꼭 걸어 잠그는 것이 모든 순간 나의 최선이었다.
아빠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기신 유산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 하지만 할머니의 유언에 의해 아빠에게 남은 것은 하나도 없었다. 물론 그 유산의 행방은 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오리무중이다. 그리고 기어코 엄마는 아빠에게 이혼을 요구했고, 소송에서 이겨 재판상 이혼을 받아내었다.
나는 학교가 끝나면 밤늦은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아빠가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쯤에 맞춰서 들어갔다. 그날도 늦은 새벽에 집에 들어갔다. 하지만 아빠는 아직 식탁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는 조용히 내 방으로 향했다. 그때 갑자기 아빠가 내게 말을 걸었다.
-너도 내가 만만하지?
술에 취해 뭉툭한 발음으로 내뱉는 말이 천천히 내 귀에 들어왔다. 평소에 들으란 듯 구시렁거렸던 것과 차원이 다른 오싹함이 나를 덮었다. 자존감이 떨어질 대로 떨어져서 재밖에 남지 않았지만 어떻게든 재로 불을 다시 지필 수 있다고, 신기루를 믿는 것 같은 광기 어린 눈과 마주쳤다.
-씨발... 그냥 다 같이 죽자. 어차피 우리 집에 미래는 없어.
아빠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옆에 세워져 있던 소주병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요란한 소리를 내었다. 아빠의 한 마디, 한 마디는 깨진 소주병의 날카로운 모양새를 닮았다.
-어차피 너도 나를 닮아서 세상을 살아가는데 똑같이 소외되고 외로울걸?
아빠는 깨진 소주병 조각을 하나 주웠다. 그리고 유리조각을 바라보다 나와 눈이 마추졌다. 그 순간 든 생각은 ‘도망쳐야 해’ 그뿐이었다. 더 이상 안전한 할머니 집도 달콤한 구름 같은 마시멜로도 없었다. 내게 남은 것은 작은 방 하나였다. 나는 유일한 도피처로 도망쳤다. 그리고 문을 걸어 잠갔다. 아빠는 내 방 문고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방 안쪽 문고리를 잡았다.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게 도망치는 것밖에 없다는 것도, 무엇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는 이 집구석도, 모든 것이 싫증 나는 순간이었다. 나 자신도, 나의 처지도 싫증 나는 수준을 넘어 혐오를 능가했다. 숨을 크게 고르는 것만으로 진정이 되지 않았다. 나는 다급하게 가방에서 핸드폰을 찾아 경찰에 신고했다.
-여보세요? 겨, 경찰이죠. 여기 삼원아파트...,
울부짖듯 소리치는 아빠의 목소리에 손에서 핸드폰이 떨어졌다. 나는 다급하게 귀를 막았다. 차가운 손이 귀에 닿고 세상의 이명이 파도처럼 내 주변을 삼키는 것 같았다. 곧 아빠의 수면 아래로 점점 가라앉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아빠가 문을 두드리자 내가 있는 아빠가 만든 심해 속에서 파동이 울렸다. 정말로 이 세상에 혼자 고립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에겐 정말로 미래가 보이지 않는구나, 혼자라면 정말 차라지 죽는 게 나을까. 웅장한 피라미드가 내 사방을 모두 가로막는 기분이었다.
책상에 있는 할머니 사진이 담긴 액자를 가슴에 안았다. 할머니의 장례식 이후 눈물샘이 마른 듯이 울어본 적이 없었다. 더 이상 울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가 방문을 찰 때마다 문에 맞닿아 있는 등이 앞뒤로 흔들렸다. 눈물이 얼굴을 타고 흘렀다. 나는 작은 책가방에 할머니 액자와 간간히 아르바이트로 벌어둔 돈을 챙겼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 창문을 열었다. 봄이 오기 직전 매서운 겨울바람이 마지막인 것처럼 활개치고 있었다.
이 정도 높이에서 떨어지면 죽으려나? 차라리 아빠의 손에 죽느니 여기서 떨어져 죽는 게 낫겠다, 싶었다.
창문 밑으로 보이는 빼곡한 아파트 사이를 바라보았다. 그곳은 너무 밝았다. 전봇대도, 집안의 등불도. 다들 어딜 밝히느라 그렇게 바쁜지 나를 밝혀줄 잠깐의 시간은 없었는지 속상한 마음에 입술을 꽉 물었다. 그때 아빠가 나를 불렀다. 꽉 닫혀 있던 방문이 열려있었다. 그리고 아빠가 나에게 한 걸음씩 다가왔다. 나는 그 공포감에 압도되었다. 어쩌면 체념했을지도 모르겠다. 내 인생은 결국 이럴 결말이었다고. 그 순간 우리 집 현관에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경찰입니다. 안에 계십니까?
아빠가 당황하는 틈을 타 나는 현관문으로 달려갔다. 순경 둘이 당황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았다.
경찰서로 연행된 아빠는 나와 떨어진 곳에 앉아 감정적으로 열변을 토로했다. 맹세코 자기는 무슨 짓을 저지를 생각이 없었다고. 한참 동안 조사가 진행되는 동안 나는 따뜻한 우엉차를 마시고 있었다. 경찰관들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었다. 필수적인 경위 조사가 끝나면 그대로 나를 돌려보낼 생각뿐이었다. 조사실 바깥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불평하는 경찰관들의 대화소리가 들렸다. 새벽에 이게 갑자기 무슨 난리 다냐. 얼른 정리하고 들어가서 잠이나 더 자자. 나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는 그 길로 경찰서를 나왔다. 아무도 제재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보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았다.
시원한 바람을 가르며 걷고 또 걸었다. 정처 없이 계속 걸었다. 아, 그때 떠올랐다. 내 가방. 비상금과 할머니의 사진이 담긴 가방은 이미 내 손을 떠난 지 오래였다. 정말 빈털터리였다. 할 수 있는 것도, 할 수 없는 것도 없는 자유의 상태였다. 걷다가 지치면 아무 곳에서나 잠시 쉬어가기도 했다. 미끄럼틀 안에 누워 노란 원통 속에서 따뜻해 보이는 세상을 담기도 했다.
익숙한 동네를 벗어나 새로운 곳에 도착해도 그저 조용한 곳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 그 풍경 소리만이 마음에 울릴 수 있는 그런 곳을 찾아 나서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곳에서 생을 마감한다면 천국을 간 할머니를 만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망상도 잠시, 현실을 직시하고 남은 건 내 결말이 곧 아사임을 깨닫는 것뿐이었다. 날이 너무 추웠다. 곧이라도 추위에 삼켜질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래도 좋았다. 적어도 죽는 순간 모든 것은 내 의지가 아니었다는 핑계라도 댈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라건대 다시 밝은 세상이 내 눈을 간지럽히지 말아 주세요.
여느 때와 같이 소소한 기도로 눈을 감은 날이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닥쳤다. 먹구름이 하늘을 가득 채우더니 어느새 세상이 회색 빛으로 물들어버렸다. 머지않아 죽을 것-사인은 아사다-라고 확신했는데. 한두 방울 떨어지는 빗방울이 거세지기 시작했다. 차갑고도 무거운 그것이 온몸을 두드렸다. 내 죽음이 수많은 길을 거쳐 맞아 죽는 것도 아니었고, 굶어 죽는 것도 아니었다. 그래도 이제 돌아갈 집이 없으나 객사할 팔자임은 분명했다.
비를 맞으며 생각했다. 이 비가 그치고 나면 내 사인은 동상이겠구나.
인적이 드문 시골길을 계속 걷다 보니 쓸데없이 알록달록한 골목길에 들어섰다. 그 길을 따라 계속 걷다가 멈칫, 시끌벅적한 오른편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