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노숙 할매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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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방기욱이 유민우의 가출을 부추겨서 이곳에 온 적이 있다는 말인 거죠, 할머니?


당황스럽기는 저쪽보다도 이쪽일 것이다. 나는 둘과 할머니를 번갈아 바라볼 뿐이었다.


-저 착한 것을…! 분명 어디서 삶아 먹다가 집에 가라고 던졌을 기야.


할머니는 혀를 끌끌 차며 말했다. 방기욱은 아니라고 반박했지만 할머니는 의심 가득한 눈빛을 쉽게 거두지 않았다.


-진짜 아니에요, 할머니. 바로 집 앞까지 잘 데려다줬어요.


-어, 그래. 너 말 잘했다. 그때 내가 이 사람들 빨래 전부 빠느라고 미치는 줄 알았어. 알기나 해?


-지랄하고 있다. 빨래는 이기가 다 했구먼.


할머니는 턱으로 유민우를 가리켰다. 잠을 재워주는 대가로 다음 날 할머니가 가져온 빨래를 전부 끝내야만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고 했다. 당연히 방기욱은 그것들을 모두 처리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 결국 끝까지 모두 한 건 유민우였다.


-할머니, 하룻밤만 좀 부탁드려요. 빨래도 제가 다 해놓을게요.


-할매는 그때부터 유민우 저 새끼만 예뻐하더라.


-그럼 당연하제. 너 같은 게 뭐가 이쁘다고.


-참나. 나도 할매한테 이쁨 받고 싶은 생각 없거든?


방기욱은 그렇게 말하고는 역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유민우는 할머니 눈치를 보다가 자기가 데리고 오겠다며 그를 따라 나갔다.


-저저, 말하는 뽄새 좀 보소!!!


두 사람의 뒤통수를 바라보면서까지 할머니는 욕을 했다. 욕이 조금 사그라들 때쯤 뒤를 돌아본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난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아가씨는 워쩌다가 저 썩을 놈하고 같이 다니고 있는 것이여?


-… 그냥, 어쩌다 보니요.


난 유민우와 방기욱을 처음 만난 순간을 다시 떠올렸다. 벌써 그날이 아득해질 만큼 꽤 많은 날들이 흘렀다. 여전히 잘 모르겠는 애들이었지만 이제는 제법 함께 있는 게 당연해졌다. 할머니는 힐끗 뒤를 돌아보았다가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내가 이렇게 욕해도 쟈는 정이 넘치는 애여. 넘 미워하지 말어.


할머니가 방기욱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릴 수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랬다. 방기욱은 내가 잠든 사이에 신문지를 덮어주고, 배꼽시계가 울린 유민우를 위해 사과를 가져왔다. 정이 많다기엔 서글프게 울던 아이한테 시끄러우니 좀 조용히 하라고 빽빽대던 그의 모습을 떠올리니 조금 이질감이 들긴 했다. 어쩌면 뭔가를 지키고 책임을 지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어리고 약한 것, 다정함에는 면역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난 할머니를 바라보며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를 떠올렸다. 장독대를 부숴서 쓴소리를 들었어도 그날 저녁밥은 따뜻했다. 마치 우리 할머니를 보는 것 같아 울컥했다. 고인 눈물이 흐르기 전에 재빨리 닦아내었다. 나도 아직 할머니에 대한 면역은 없나 보다.


-그래도 자리는 좁을 것이고, 다음 날 빨래는 해야 할 것이여.


난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전했다. 그때, 뒤에서 유민우와 방기욱이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얼굴을 보아하니 방기욱은 아직도 씩씩대고 있었다. 유민우는 방기욱이 할머니와 가까워지자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방기욱은 머뭇거리더니 입을 열었다.


-산책하러 갈 건데. ……할머니도 같이 가던지.


-저 정신 나간 놈이 뭐래는 겨? 다 늙어 빠진 할멈 얼어 죽일 일 있나.


방기욱은 그럴 줄 알았다며 괜히 유민우에게 화풀이했다. 할머니에게 한 대 더 맞은 건 덤이었다. 방기욱은 뒤를 돌아 그대로 다시 나갔다.


-가자, 주림아.


-다녀올게요, 할머니.


할머니는 돌아누워 인사를 들은 청 만청했다. 난 자리에서 조용히 일어나 유민우를 따라 나갔다. 역 밖으로 나가자 문 앞에서 기다리던 방기욱이 보였다. 방기욱도 나와 유민우의 기척을 듣고 발을 옮겨 걷기 시작했다.


-성격 더러운 건 알아줘야 돼.


방기욱이 혼잣말로 할머니를 욕하며 머리 뒤로 손깍지를 꼈다. 나는 조용히 쿡쿡 웃었다. 얼마 걷지 않았는데 언덕이 나왔다.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은 아닌 듯 보였다. 방기욱과 유민우는 그 언덕 쪽으로 향했다. 나도 그들을 따라 언덕 꼭대기에 다 올라설 때쯤 멀리 보이는 풍경과 스치는 바람에 눈이 휘둥그레했다. 언덕 아래로 보이는 형형색색의 집들이 보였다. 벽면에 무지개가 그려져 있는 것이 가깝게 보이기도 했고, 파랑, 노랑, 빨간 지붕이 각기 각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나는 아파트 단지 사이를 내려다보았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때는 건물에서 빛이 나고 있었는데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마을은 그거보다 더 여린 불빛들로 가득했다. 그게 연약해 보여서 더 아름다워 보였다. 초롱불로 가득 찬 보물상자를 열어보는 기분이었다. 그게 너무 소중해서 아주 오랫동안 눈을 감지 못하고 바라보았다.


그때보다 높은 곳에서 바라본 것도, 그때보다 밝은 빛을 본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의 심장은 간직하고 싶을 정도로 적당히 부드럽게 두근거렸다.


-너무, 예뻐.


나의 말에 동의하는 듯 유민우와 방기욱은 미소를 지었다.


-여긴 재개발이 어렵대. 그래서 주인 모를 벽화도 많고, 그라피티도 많지. 그거 보는 재미가 있단 말이야.


-기욱이 말이 맞아. 높은 건물이 많은 건 아니지만 집 사이의 거리가 엄청 촘촘해.


유민우와 방기욱의 말이 맞았다. 빽빽이 서 있는 집들이 다정하고 정겹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 벽면에 그려진 그림들은 가로등 불빛에 빛나고 있었다.


내가 죽었다면 어땠을까. 이 두근거림을 느낄 수 있었을까? 지극히 부드러운 이 감정을 느끼는 호사를 감히 내가, 누릴 수 있었을까?


그때 노란 지붕 집 개가 시끄럽게 짖었다.


-저 개새끼가…


방기욱의 말 한마디에 나와 유민우는 빵 터져 웃음을 그칠 수 없었다. 설령 야경이 가져온 감동이 개 짖는 소리에 묻혔다고 하더라도 지금이 내게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남을 것이었다.


-이런 곳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유민우가 처음 가출한 날 방기욱이 이곳을 찾았다. 방기욱과 유민우는 그날 밤새 할머니 옆이 아니라 이곳에서 바람을 쐬었다고 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그니까 웃긴 거지. 그래놓고 빨래더미를 이만큼 가져와서 우리 보고…


-그래도 할머니가 아침밥 챙겨주셨잖아.


-그 빵 쪼가리?


방기욱은 손사래를 쳤다. 간에 기별도 안 갔었다며 한동안은 다시 할머니를 향한 잔소리가 이어졌다.


-심지어 절반은 곰팡이 폈었어.


난 그의 불만을 배경음악 삼아 언덕 아래를 구경했다. 썩어가는 나무 울타리에 기대서 마을을 내려다보니 한 폭의 그림 같았다. 찾아오던 졸음도 달아날 만큼 아름다웠다. 그곳이 누군가에겐 구경거리가 될만한 야경이 아닐지라도 나에겐 의미가 컸다. 방기욱의 말대로 한 집 한 집 구경하는 것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시간이 늦은지라 아직까지 영업하는 가게가 많진 않았지만 오래된 가게가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저 멀리 고즈넉한 골동품 가게도 보였다. 어릴 적 할머니 집 근처에서 보았을 법한 아주 오래된 잡화점 같아 보였다. 감탄하며 구경하고 있는데 방기욱이 나를 톡톡 쳤다. 고개를 돌리자 그가 내 손에 작은 초콜릿을 한 개 쥐어 주었다. 내가 입을 열려고 하자 쉿, 하며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유민우한테 비밀이다. 두 개밖에 없는 거거든.


-… 고마워.


난 초콜릿을 까서 입에 넣고 녹였다. 아주 달콤한 초콜릿이었다. 초콜릿을 입에 물고 세상이 달콤해지는 기분을 즐겼다. 예쁘게 보였던 것들은 더 예뻐 보이고, 녹이 슬어 보기 흉했던 부분들은 멀끔히 고쳐진 것처럼 보였다. 스케치밖에 없던 그림은 이내 휘황찬란한 색들로 빛났다. 어느 벽은 그림에 칠해진 색깔을 따라 빛나고 있기도 했다. 나는 초콜릿이 빨리 녹는 것이 아쉬워서 입을 벌렸다.


-… 뭐 하는 거야?


-초콜릿도 찬 바람을 쐬면 천천히 녹지 않을까 싶어서.


내 말에 방기욱이 배꼽을 잡고 웃었다. 영문도 모른 체 유민우는 웃느라 울타리 뒤로 자빠질 뻔한 방기욱을 붙잡았다. 우리는 유민우가 처음 가출한 그날같이 한참을 구경하다가 기차역으로 돌아갔다. 돌아가는 내내 난 아직도 꿈에 사는 것 같았다. 그 광경이 잊히지 않아서 잠을 설칠 것 같았다. 눈을 감으면 계속 떠올랐다. 난 눈에 담았던 모든 것들을 마음에 차곡히 쌓으며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이 밝은 대로 할머니는 우리에게 빨랫감을 건넸다. 그 양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할머니가 목에 두른 오색빛깔 손수건처럼 다양한 색과 질감의 옷이 가득했다. 할머니는 재워준 대가로 역의 노숙자분들의 빨랫감을 모두 모아서 우리에게 주었다. 이건 정말로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도 이 많은 양을 그들에게 주었다면 방기욱이 도망가겠다고 마음먹은 심정이 십분 이해 갔다.


난 잠시 멈춰 있다가 정신 차리고 팔을 걷었다. 유민우도 덩달아 팔을 걷고 옷더미를 옮기기 시작했다. 자기는 하지 않을 거라고 움직이지 않던 방기욱의 등을 나는 유민우와 함께 밀었다. 그는 물에 잠긴 옷이 든 대야에 그대로 미끄러졌다. 방기욱은 소리치며 우리를 따라왔다. 따라오는 그를 향해 물에 젖은 옷을 털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젖은 옷을 털기만 해도 무지개가 생길 것 같았다. 역 뒤에 서로 마주 보고 자리한 나무 두 그루에 밧줄을 단단히 묶어 빨랫대를 만들었다. 가장 큰 대야에 할머니가 주신 세제와 물을 콸콸 부었다. 그리고 두꺼운 외투와 기다란 옷들을 넣고 마구 밟았다. 거품이 몽글몽글 올라왔다. 그 거품이 생크림인 양 코에 찍어 바르기도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빨래를 하고 있으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다가왔다. 할머니는 멀리서 우리를 불렀다.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노란 손수건을 빨랫줄에 걸었다.


일을 마치고 역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온몸에 근육통이 올 것만 같은 피로였다. 들어선 곳에는 손수건처럼 샛노란 수프가 보였다. 수프에서 김이 모락모락 올라왔다. 종이컵을 손에 쥐니 얼었던 손이 녹는 것 같았다. 세 명이 동시에 향긋한 수프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았다. 호호 불어 수프를 한 입 맛보았다. 고소하고 달달한 옥수수 수프였다. 방기욱은 허겁지겁 마시다가 입천장이 다 데었다. 아주 따뜻한 수프였다. 수프를 한 모금씩 삼킬 때마다 준비하신 할머니의 마음도 따뜻하게 내려앉았다. 많은 양은 아니었지만 그 온정을 느끼기엔 충분했다.


-잘 먹었어요, 할머니.


유민우의 말에 나도 곧바로 감사인사를 전했다. 수프를 모두 마시고 갈 채비를 마쳤다. 할머니와 오래 있지 않았는데도 깊은 정이 들었다. 나는 할머니에게 다가갔다. 할머니는 멈칫하다가 내가 안으니 어색하게 그 자세를 지키셨다.


-정말 감사해요.


-가자, 설주림!


방기욱의 말에 안았던 할머니를 놓아드렸다. 그리고 고개 숙여 인사드렸다. 할머니는 됐다고 혀를 내둘렀다. 할머니에겐 정말 감사한 것이 많았다. 하룻밤 잠잘 곳을 내어 주신 것도, 아침밥을 차려 주신 것도 감사했지만 우리 할머니를 떠올리게 해 주신 것이 무엇보다 감사했다. 살아있어서 느낄 수 있던 감정과 볼 수 있던 것들을 잃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해 주었다. 난 역을 나가다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았다. 할머니는 앞에 놓인 작은 초콜릿을 멍하니 서서 바라보고 있었다. 난 미소를 지으며 방기욱과 유민우 뒤를 따라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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