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남세현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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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주림과 우리는 한동안 마을 근처를 맴돌았다. 외양간에서 소와 함께 짚을 덮고 잔 날도 있다. 아무리 내가 안식처 따위 필요 없다고 했어도 외양간에서 잔 적은 맹세코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따금 길을 따라 걷다가 개울가에 흐르는 윤슬을 보면서 몇 시간씩 멍을 때리기도 했다. 설주림은 한참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걸 잘했다. 가만히 있는 걸 못하는 나는 그 옆에서 작은 조약돌로 공기놀이도 하고 남은 돌로 물 수제비도 던졌다. 어떤 날은 자물쇠가 걸려있지 않은 자전거를 타고 낮시간동안 산책로를 달렸다. 그러다가 해가 지면 다리 밑에 모닥불을 피우고 앉아 쓸데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한 번쯤은 집이나 가족 같은 얘기가 나올 분위기가 흐르면 여과 없이 조용해지곤 했다. 누구에게나 말할 수 없는 비밀이 한 개쯤은 있다. 나는 그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무엇도 묻지 못했다. 그리고 정적이 차츰 어색해질 때쯤 설주림은 귀신 얘기를 꺼내어 나와 유민우가 질색하는 모습을 즐겼다.


우리는 그렇게 깊은 듯 깊지 않은 듯, 서로에 대한 많은 것을 아는 듯 모르는 듯 몇 주간을 함께 했다. 가족인 듯, 가족은 아닌 듯. 아니 친구인 듯, 아닌 듯.


-이거 언덕 위에서 봤던 그림이다.


설주림이 길을 가다 멈추고 벽면에 그려진 그림을 응시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그림은 이 마을의 풍경화였다. 그리고 그 위에 작은 무지개가 덧그려져 있었다.


-오늘 새벽에 완성한 작품이야. 관심 있어?


처음 보는 남자가 락커를 흔들며 걸어왔다. 온몸에 덕지덕지 페인트가 묻어 있었다. 코를 찌르는 냄새가 진동했다. 나는 본능적으로 경계하며 그의 정체를 물었다.


-진정해. 위험한 사람은 아니니까. 예술하는 사람 중에 위험한 사람 봤어?


남자는 양손을 들어 항복을 선언하며 들고 있던 락커를 가리켰다.


-내 경험에 의하면 예술하는 녀석들이 제일 위험해.


내 말에 남자가 눈을 크게 떴다가 어깨를 으쓱였다. 누구냐고 물었던 내 질문에는 왠지 답을 망설이는 듯이 보였다. 그의 태도를 보며 엮여서 좋을 건 없다고 판단했다.


-알겠어. 내 이름은 남세현이고, 이 근처에서 그라피티 크루 활동을 하고 있어. 너네는, 가출 청소년... 뭐 그런 건가?


가출 청소년이라. 지겹도록 들었으나 끈질기게 혐오하는 단어였다. 가출도 집이 있는 녀석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죽으러 가는 길이야.


설주림이 동요도 없이 냉소적으로 말했다. 남세현은 신기하다는 듯이 설주림을 쳐다보았다.


-좋네. 너희 우리 아지트에 놀러 오지 않을래? 보아하니 밖에 머문 지도 꽤 되어 보이는데. 오늘 저녁에 다 같이 회식하기로 했거든.


남세현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다음 말을 이었다. 설주림이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들려왔다. 남세현이 웃음을 참는 얼굴을 했다. 설주림의 얼굴이 빨개졌다.


-가자. 배고프잖아.


어느새 남세현은 설주림의 등을 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남세현의 손목을 잡았다. 그리고 설주림에게 귓속말을 전했다. 옆에서 떨어지지 마, 일단은. 위험할 수도 있어. 설주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까이서 본 설주림의 얼굴이 이전보다 심각하게 수척해 보이지 않았다. 그간 낚시로 단백질을 잔뜩 섭취하고, 일용직으로 모아둔 돈을 그녀의 음식에 꽤 투자한 덕이었다.


남세현은 발 빠르게 락카를 챙겨 우리를 아지트로 안내했다. 나는 설주림과 유민우의 앞에 서서 그를 따라 걸었다. 도착한 아지트는 컨테이너를 개조한 것처럼 보였다. 공사장 뒤편에 위치한 이 아지트는 넓고 호화로웠다. 벽의 한 편에는 다양한 페인트와 락카, 스프레이가 진열돼 있었다. 들어서자마자 코를 찔렀던 냄새가 저것들 때문이었다.


-여, 남세!


작업복처럼 보이는 남색 앞치마를 벗으며 크루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남세현이 우리 셋을 돌아보며 팔을 넓게 펼쳤다.


-어서 와, 언포러 아지트에.


-언포러 아지트? 작명 센스하고는.


-포러 효과에서 따온 이름이야. 우리 무식한 티는 내지 말자고.


나는 남세현을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을 지울 수 없었다. 설주림은 모든 것이 신기한 듯 감탄하며 아지트 내부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 예쁜 아가씨는 누구셔? 안녕하세요, 정일환이라고 해요.


반갑게 남세현에게 인사했던 남자가 설주림에게 악수를 건넸다. 나는 설주림 대신 그 악수에 응했다. 정일환은 멋쩍은 표정을 짓더니 손을 재빠르게 뺐다.


-경계심이 장난 아니더라. 첫 만남에 눈에서 아주 레이저가 나오더라.


정일환은 미묘하게 ‘그래?’ 하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배달음식 괜찮니?


남세현은 그렇게 말하고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시켰다. 내 눈썹이 나도 모르게 움찔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에 도착한 짜장면에서 나는 달큼하고 고소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뭐가 들어있을 줄 알고. 내가 순순히 먹어줄까 보냐.


나는 팔짱을 꽉 끼고 풀지 않았다. 설주림과 유민우는 나의 눈치를 보며 코만 벌렁대고 있었다. 내 코가 가장 크게 들썩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린 것은 한참 뒤였다. 정일환이 이쪽을 바라보더니 웃으며 말했다.


-걱정 말아요. 음식엔 아무 짓도 안 했으니까.


정일환은 친히 우리가 보는 눈앞에서 세 짜장면 그릇을 흔들어 섞고 뜯어서 한 입씩 집어먹었다. 나는 정일환이 면을 씹고 삼키고 입을 벌려 내용물이 기도로 넘어간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젓가락을 들었다.


최근 며칠간 우리는 제대로 해결한 식사가 하나도 없었다. 배가 등에 붙을 것 같은 배고픔을 음식 앞에서 참다니. 웬만한 정신력으로는 불가능했다. 무려 짜장면 앞에서 말이다. 나는 짜장면을 가득 집어 한 입에 넣었다. 속세의 맛이란 이런 것이었지. 그 맛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그래, 태어나서 처음으로 달콤한 솜사탕을 맛보는 기분과 맞먹을 것이다.


남세현의 천천히 먹으라는 말도 잘 들리지 않았다. 나는 이성을 잃은 듯이 코를 박고 면을 흡입했다. 짜장면은 고작 몇 젓가락질에 동이 나고 말았다. 난 아쉬운 기색을 숨길 수 없었다. 한 크루원이 내게 입 주변을 정리하라는 모션과 함께 휴지를 건넸다. 나는 한참 그것을 바라보다가 테이블에 내려두자마자 집어서 입을 닦았다.


-먹으면서 편하게 들어요. 우리 크루원들을 소개할게요. 먼저 저부터 정식으로 소개하죠. 전 언포러 크루의 부크루장, 정일환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정일환은 자기소개를 마친 후 자신의 왼쪽부터 순서대로 소개했다. 크루장인 남세현과 양주혁, 이영종, 박민수는 정일환이 자신을 소개할 때 간단한 인사를 덧붙였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우리의 소개를 기다리고 있었다.


-설주림이라고 합니다.


-방기욱.


-……


유민우는 자신을 소개하기는커녕 짜장면 그릇에 고개를 박고는 얼굴을 들지 않았다. 나는 유민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유민우는 대꾸도 하지 않고 자꾸만 얼굴을 가렸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손을 잡아 내렸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그때, 양주혁이 손뼉을 치며 유민우를 가리켰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 건지 몰라서 나는 잡고 있던 유민우의 오른팔을 조용히 내려두었다.


-상주남고 유민우 맞지?


유민우는 들고 있던 젓가락을 그릇에 얹어두고는 고개를 들었다. 유민우의 표정을 보니 딱 알 것 같았다. 이건 곤란하다는 의미였다.


-뭐야, 너 유민우 알아?


-쟤 학교에서 겁나 유명한데? 너네 아빠가 상주시장 후보 맞지? 아버지 성함이 유민철이었을 거야, 아마. 근데 아들이 일진이랑 엮여 다니고 사고뭉치라고. 그래도 공부는 꽤 잘한….


양주혁은 발등에 불이 붙은 것처럼 말을 뱉었다. 중요한 정보들은 모두 토해내고서야 정신이 돌아온 듯 말을 멈췄다. 그리고는 놀란 토끼 눈을 한 채 입을 손으로 가리고 죄송해요,라고 말했다.


나는 양주혁의 말을 듣다가 흠칫했다. 자연스레 설주림을 바라보게 되었다. 설주림은 멍한 표정으로 유민우를 바라보고 있었다. 유민우는 그 시선을 견디지 못한 듯 자리를 떴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양주혁을 가리키며 말했다.


-야, 너, 대머리. 말 좀 가려서 해라. 나이를 똥구멍으로 쳐 먹었나.


-말 조심하죠, 방기욱 씨.


나는 그 말을 들은 체할 여유 따위는 없었다. 누가 말을 한 건지 보지도 않고 대충 손을 흔들었다. 유민우를 찾으러 가야 했다. 근처가 낯선 곳은 아니겠지만 그 자식이 또 어디로 숨을지 몰랐다. 문을 열고 나가자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유민우가 보였다.


-야, 유민우!


나는 컨테이너에서 나와 멀어지는 유민우를 향해 몇 번이고 이름을 불렀다. 유민우는 정확히 네 번째 부름에 멈춰 섰다. 유민우를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공사장의 끝에 다다라 있었다. 그 길로 우리는 공사장 한 모퉁이에서 한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찬 공기를 쐬고 하늘도 바라보고, 설주림이 있는 컨테이너도 몇 번이고 힐끗거렸다. 나는 유민우가 입을 열 때까지 계속 기다렸다.


-… 주림이가 실망할 거야. 어떡하지?


유민우가 정적을 깨고 말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말없이 서 있었는지 모르겠다.


-뭘 어떡하냐. 그냥 알게 된 거지. 설주림이랑 만난 지 오래된 건 아니지만, 너도 알잖아. 그런 걸로 사람 판단할 녀석 아니라는 거.


모랫바닥에 발을 굴리며 대답했다. 내 대답을 듣고 유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난 유민우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러게, 새끼야. 말을 좀 해. 답답하게 굴지 말고.


여전히 유민우는 아무 말이 없었다. 유민우는 느릿하게 눈을 두어 번 깜박일 뿐이었다.


-들어가자, 춥다.


나는 유민우의 등을 한 번 치고 뒤를 돌아 신발을 끌며 걸어갔다. 몇 발자국 지나 뒤에서 다른 발소리도 규칙적으로 들려왔다. 그 소리에 안심하고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유민우가 땅굴을 파고 들어가는 건 습관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땅굴 앞에 내가 있다는 걸 알리는 것밖에 없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모두가 문 쪽을 쳐다보았다.


-뭘 봐. 사람 처음 봐?


문 뒤로 내가 보일 때는 다들 긴장하는 기색이 가득했지만 뒤이어 유민우가 들어서자 다들 한숨을 돌렸다.


-민우야, 진짜 미안해! 아, 내가 성주 촉새라서 그래. 한 번만 봐줘라, 응?


유민우가 들어서자마자 양주혁이 무릎을 꿇고 사죄하기 시작했다. 나는 뒤를 돌아 유민우의 얼굴을 살폈다. 저 얼굴은 당황한 표정이었다. 난 피식 웃고는 자리에 앉아 옆에 놓인 유민우의 짜장면을 먹어 치웠다.


-그래서. 내일 같이 해볼래, 주림아?


-응, 해볼게.


난 먹고 있던 짜장면이 목에 걸린 듯 캑캑거렸다. 그릇을 내려두고 남세현을 바라봤다가 그 시선을 자연스레 설주림 쪽으로 돌렸다. 잠깐 나갔다 온 사이에 뭘 하기로 한 거야, 벌써. 분명 위험할지 모르니까 조심하라고 했는데. 설주림의 마음은 편안한가. 불편한 건 나뿐인가?


-내가 도와줄게.


남세현은 자신이 도와주겠다며 선뜻 나섰다. 둘이 친해진 것 같아서 남세현이 더 싫어졌다. 하는 말과 행동들에서 영리한 여우 같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나와 유민우가 나가 있는 사이에 설주림과 크루원들은 그라피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고 했다. 이를테면 그들의 비전 같은 것들이었다. 그라피티라는 것을 보기나 했지, 그것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들어본 적은 없어서 신기하긴 했으나 기억에 남을만한 특별한 이야기 또한 아니었다.


-그럼 결국 그라피티는 결국 불법인 건가요?


유민우가 조용히 남세현과 정일환의 말을 듣더니 입을 열었다. 평소에는 말도 잘하지 않던 유민우의 시원한 한 마디에 나는 쌤통이라고 생각했다.


-그라피티는 예술입니다. 허가를 받으면 그것은 그라피티로 인정되지 않아요. 그것을 ‘뮤랄’이라고 부르죠.

-그럼 언포러 크루는 어째서 이 활동을 지속할 수 있는 거예요?


유민우가 예민해진 분위기에 당황하자 설주림이 대화를 환기하듯 새로운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남세현이 나서서 답을 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홀 트레인’이야. 아, ‘트레인’이라는 건 지하철에 남기는 그라피티인데, ‘홀 트레인’은 한 지하철을 전부 그라피티로 채우는 걸 말해. 그러기 위해 차분히 여러 곳을 우리의 작품들로 채워 나가고 있어. 누군가가 우리의 예술을 이해해 줄 때까지.


역시나 지루한 말들만 이어졌다. 익숙하지 않은 용어, 흥미 없는 내용들. 나는 귓구멍을 긁으며 듣고 있었다.


-우리는 일반적인 것에 맞추지 않는다는 신념을 가진 크루예요. 그러나 반달리즘의 형태를 띠고 있진 않죠. 우리는 세현이 말 그대로 예술을 하고 있답니다.


정일환이 사람 좋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 유민우는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눈치를 한 번 보더니 남세현이 그것을 발견했다.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같은데, 편하게 말해도 돼.


-아, 그라피티를 하는 것부터가 넓은 의미에선 이미 반달리즘이 아닌가....


정일환의 얼굴이 점점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반달리즘이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 모습이 내게는 더 예술 같았다. 그래서 자세를 고쳐 앉고 흥미진진하게 그 모습을 쳐다보았다. 늘 그랬듯이 유민우는 내 예상을 벗어나서 재밌는 상황을 만들었다.


-자, 다들 이제 그만 잘까? 내일은 새벽에 작업할 예정이니 다들 일찍 자는 게 좋을 거야.


그때 내 눈앞에서 벌레를 잡는 것처럼 손을 오므려 박수를 친 건 남세현이었다. 저 녀석 때문에 나는 눈을 감아버렸고, 저 자식 때문에 재밌던 상황이 빠르게 일단락되었다.


난 시계를 바라보았다. 시침이 숫자 9를 지나고 있었다. 크루원 중에 가장 나이가 많은 이영종이 우리가 덮을 담요와 베개를 가져왔다. 그는 난처하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미안하네요. 하필 침대가 딱 다섯 개밖에 없어서…


설주림은 괜찮다고 말하면서 그것들을 받아 들어 나와 유민우에게 넘겼다. 우리는 그것을 소파 위와 아래에 펼쳤다. 부드러운 침구세트를 공짜로 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하였다. 설주림은 소파 위에서, 나는 유민우와 소파 아래에서 잠을 청했다. 종일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더니 눕자마자 피로가 몰려왔다. 금방 잠에 들 수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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