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포러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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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해도 뜨지 않은 시간이었다. 문 밖에서 공기를 들이쉬었을 때 상쾌한 내음이 온몸을 감쌌다. 이 시간에 일어난 게 얼마 만이더라. 시험기간이라고 하더라도 이 시간에 눈을 떠본 적은 손에 꼽을 정도였다. 남세현이 내 어깨를 얼마나 두드렸을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일어났을 때 화가 난 표정은 아니었으니 그런 걱정은 잠시 접어두자고 되뇌었다. 나는 어제저녁에 남세현이 설명해 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미간이 찌푸려지더라도 일어나려고 노력했다.
-인적이 드문 곳은 시간대를 가리지 않지만 주로 유동인구수가 적은 새벽이나 늦은 저녁에 작업해.
방기욱도 이 시간에 일어난 것은 오래간만인 것처럼 보였다. 유민우는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해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이미 멀쩡히 눈을 뜨고 이불을 개고 있었다. 우리는 그라피티 도구를 챙기고 있던 크루원들을 도왔다. 그리고 정일환이 건네준 작업용 앞치마를 착용했다. 크기가 큰 앞치마밖에 없어서 내 무릎을 넘어가는 것들뿐이었지만 나는 전혀 개의치 않았고 그저 아주 조금 설레었다.
태어나서 한 번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정해진 길 중 개과천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공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죽어라 공부만 했다. 하지만 정말 죽으려고 했더니 신기하게 모든 강박과 공포에서 자유로워졌다. 난 지금까지 소심하고 튀지 않고 긍정적인 단어라고는 희망밖에 알지 못했던 과거의 나와는 잠깐 사이 많이 달라져 있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믿었던 희망은 누군가 내 손에 쥐어주는 구원의 손길이었다. 그게 신인지 인간인지, 사실은 형체도 없을지 나도 모르겠다.
희망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다고 착각하는 긍정적 미래만 보여준다. 너무 달콤하기까지 해서 그것에 붙잡혀 사는 사람도 있다. 이 시간만 지난다면, 내가 집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들은 마치 내가 시간만 지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오만함과 집에서 벗어나기만 하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교만함만 남긴다. 그렇게 남은 잔상이 마치 나의 업적이라도 된 양 살아간다. 그 길을 걷는 것은 과정에서도, 끝에서도 절대로 행복할 수 없다.
희망은 어쩌면 도깨비에 홀린 말일지도 모른다. 죽고 싶단 희망도 결국은 두려워하는 게 인간이었다. 나는 그 속된 말에 더 이상 기대지 않고 싶어졌다.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할머니도, 나도 잃고 뭐 할 것 없이 계속 그저 살아가고 싶었다.
-주림아 잘 봐. 우리들의 시간은 지금부터 시작이야.
컨테이너 차고지의 문이 열리고 남세현이 기어를 올렸다. 하늘은 어두웠지만 무참히 새카맣지는 않았다. 어딘가 푸르스름한 것이 새벽의 설렘을 고이 담고 있는 것 같았다. 남세현이 운전하는 트럭을 타고 조금 멀리 떨어진 터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시내를 벗어나자마자 주변이 온통 울창한 나무들로 뒤덮였다.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트럭 안은 마치 놀이기구를 연상케 했다. 큰 언덕을 넘을 때마다 간혹 뒤에서는 신이 난 듯한 외침이 들려오곤 했는데 그 어디에도 유민우와 방기욱의 목소리는 담겨있지 않았다. 우리 세명만은 모두 같은 울렁거림을 공유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다 왔다!
도착했을 때 나는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나는 안전벨트에 꽉 쥐고 놓지 않았던 손을 머리로 옮겼다. 시야를 가리는 머리카락을 옆으로 잘 넘겨보았다. 심호흡을 몇 번 해도 울렁이는 속이 잘 가라앉지 않았다. 그때 창밖으로 유민우와 방기욱의 등이 보였다. 이영종 씨가 그 등을 톡톡 두들기고 있었다. 나는 그 둘의 앞바닥은 보지 않기로 했다.
남세현이 안전벨트를 채워주었을 때와 똑같이 벨트를 풀어주었다. 나는 차 문을 열고 내렸다. 상쾌한 공기를 들이켜니 조금 살 거 같았다. 우리는 남세현이 안내하는 길을 따라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이 터널을 채울 거야. 꽤 스케일이 크지?
남세현의 말은 터널 속에서 크게 울렸다. 터널은 꽤 길고 널찍했다. 정일환이 역시 대용량 페인트를 가져올 걸 그랬나, 하고 중얼거렸다. 남세현은 나와 유민우, 방기욱에게도 일부 구역을 배정해 주었다. 방기욱과 유민우는 괜찮다고 했지만 남세현은 그 말을 듣고 제대로 듣고 있는 것 같지 않았다.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하진 않아. 할 수 있을 때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남세현의 말에 방기욱과 유민우는 말문이 막힌 듯 아무 말도 안 했다. 어차피 더 말해봤자 듣지도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게 분명했다.
무엇을 그리면 좋을까. 그때 번뜩 머릿속에 무언가 떠올랐다. 나는 트럭에서 남색 락카를 꺼내 벽을 바라보며 천천히 락카를 흔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다가오던 남세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락카 쓰는 방법을 제대로 알긴 하는 거야?
남세현은 내가 들고 있던 락카를 가져가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기 시작했다. 락카가 흔들리면서 안에 있던 구슬이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내었다.
-락카는 지금 침전 상태야. 쉽게 말해서 물속에 모래가 가라앉은 상태인 거지. 그래서 충분히 흔들어줘야 해. 그리고 뿌릴 때는 분무기 누르듯이 이렇게.
시범을 보이다 멈칫한 남세현이 내 손을 자신이 들고 있던 락카 위에 얹었다. 그리고 뿌리는 시늉을 하듯 입으로 칙칙, 소리를 내며 내 손 위로 자신의 검지 손가락을 구부려 살짝 눌렀다가 떼어냈다.
-너무 가까이서 뿌리면 액체가 흘러내려서 원하는 모양이 안 나올 거야. 도포할 땐 이 정도 거리에서.
정말 잘 표현해내고 싶었다. 나는 남세현이 서 있는 위치 바로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서 벽에 더 가까워지면 귀신의 집에 나오는 무시무시한 그림이 될 수도 있었다. 나는 락카를 치익, 하고 뿌렸다. 분사구에서 액체가 광역으로 퍼져 나갔다. 깜짝 놀랐지만 곧이어 다시 분사구 윗부분을 꾹 눌렀다. 난 남색으로 벽의 윗부분을 가득 매웠다. 그리고 빨간색과 파란색 락카를 가져와 작은 사다리꼴을 그려 넣었다. 락카로 섬세한 작업을 하기는 아주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몸이 벽면에 가까워지게 되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면 남세현이 정일환을 부르더니 아세톤을 부탁했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하나 꺼내더니 아세톤으로 적시며 내게 말했다.
-어느 부분을 지우고 싶어? 흘러내린 부분?
주룩주룩 흘러내린 락카 잉크 위를 아세톤으로 적셔진 손수건으로 가볍게 눌렀다가 살살 문질러주니 그 부분이 감쪽 같이 깨끗해졌다. 남세현은 손수건을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세밀한 부분은 붓으로 하는 게 더 편할 거야. 주혁이한테 부탁하면 찾아줄 테니까, 가서 찾아달라고 해봐.
남세현이 손으로 가리킨 끝에는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던 양주혁이 보였다. 벽면에 거의 붙어서 아주 가는 선을 여러 겹 그리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양주혁 뒤에 서 있던 방기욱과 눈이 마주쳤다. 방기욱은 무슨 잘못이라도 저지른 사람처럼 홱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양주혁에게 다가갔다.
-페인트를 사용하고 싶은데 붓은 어디서 가져와야 해?
집중하고 있던 양주혁이 잠깐만 기다리라고 외쳤다. 양주혁은 숨을 참고 아주 가늘어 보이는 선을 가로 세로로 촘촘하게 채워 넣었다. 멀리서 보니 그 형태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보였다. 그 얇은 선들은 하나로 모여 농구 골대처럼 보였다. 뒤에서 한참을 바라보고 있던 것을 겨우 눈치챈 양주혁이 뒤를 돌았다.
-미안, 집중해야 하는 부분이라. 붓은 트럭 글로브박스 열면 이거랑 똑같이 생긴 게 있을 거야.
양주혁은 자기 앞에 놓인 붓이 꽂힌 파우치를 드렁 보였다. 그리고 페인트는 트럭 뒤에 있으니 색 이름을 잘 보고 사용하라고 당부했다. 나는 응, 하고 답한 뒤 잠시 머뭇거리다가 양주혁에게 무엇을 그리는 거냐고 ㅁ루었다.
-이거? 농구 골대야. 그렇게 안 보이나...
그의 얼굴에 속상한 티가 드러났다. 나는 전혀 아니라고 말했다. 그보다도 왜 농구 골대를 거꾸로 그리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벽에 그려진 농구 골대는 반대방향으로 그려지고 있었다. 마치 그물 호리병을 보는 것 같았다.
-농구에서 골은 모두 골대 위에서 아래로 통과할 때만 인정해 주거든? 아래에서 위로 올린 공은 파울이고 공 주도권도 상대한테 넘어가지. 근데 아래로 넣는 골들은 멀리서도 상대 위로 넣을 수 있지만 아래에서 골을 넣으려면 직전까지 진입해 고심해서 띄운 공이 상대의 어디에도 닿으면 안 되지.
양주혁의 말은 도저히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양주혁은 흐음, 하고 고심하는 소리를 내더니 거꾸로 된 골대 위에 농구공을 마저 그리며 말을 이었다.
-더욱, 그것도 무척이나 어렵다는 뜻이야. 근데 그 골은 위에서 아래로 넣는 사람들이 만든 룰에 의해 허락되지 않아. 자, 여기에 공을 그리면 어떻게 보일 거 같아?
나는 그 물음에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거꾸로 보면 골대를 통과한 골처럼 보이기도, 다시 제대로 서서 보면 골대를 역주행하기 직전의 공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바로 그거야! 영원히 공중에 떠 있을 것 같은 공도 사실 이미 들어간 거라는 거지. 반대로 뒤집으면 당연히 들어간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거 또한 영원히 들어갈 수 없는 골이야. 영원히 인정받지 못할 골은 이미 당신들을 관통했다, 뭐 그렇게 되는 거야. 좀 심오하지?
-주혁아, 주림이 그만 괴롭혀라!
남세현의 말에 크루원들이 호탕하게 웃는 소리가 울렸다. 양주혁은 괴롭히는 게 아니라고 다급하게 외쳤다. 트럭 화물칸에는 페인트들이 가득 있었다. 페인트 통 한 편에 적힌 색의 이름을 확인했다. 내게 필요한 색은 마젠타, 딥 울트라마린, 올리브 그린, 프, 프탈로... 그냥 내 눈에 파랑에 가장 가까워 보이는 녹색까지. 색을 모두 골라내고 나니 이것들을 어떻게 모두 옮길 수 있을지 고민에 빠졌다. 그때 양주혁이 다가왔다.
-아, 팔레트 필요하겠구나!
양재혁이 운전석 문을 열더니 사이드포켓에서 기다란 나무판자를 하나 건넸다. 그것은 살짝 오목하게 파여있었다. 그리고 아직 붓 파우치 안 꺼냈냐고 물으며 글러브박스에서 파우치를 꺼내었다.
-이 팔레트에 이런 식으로 필요한 양만큼 페인트를 덜어. 대신 빨리 굳으니까 양은 조금만.
나는 알겠다고 말하며 팔레트 위에 페인트를 조금씩 덜었다. 페인트는 내 생각보다 묽었다. 나는 흐르지 않게 조심하며 페인트를 옮겼다. 페인트에서는 코를 찌르는 아주 강한 냄새가 났다.
이렇게 다양한 색이 고루 필요했던 이유이다. 나는 그날 언덕에서 내려다보았던 야경을 그려내고 싶었다. 보고 느낀 만큼 마음껏 표현해보고 싶었다. 설령 진짜가 그림처럼 생기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누가 뭐라 하겠는가. 혹 누가 뭐라고 한다 해도 그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자세를 바로 잡고 붓을 들었다. 어떻게 생겼더라. 나는 눈을 감았다. 선명하게 남은 기억들이 눈앞에 펼쳐지고 그때의 온기와 바람이 느껴졌다. 그 선선한 공기를 느끼며 나는 다시 눈을 떴다. 그리고 벽을 칠하기 시작했다.
-주림…. 주림아…. 설주림…!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달팽이관 안으로 흘러 들어왔다. 청각기관에 문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나의 전두엽이 너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나뭇가지 하나 지푸라기 하나 너무 뚜렷해서 그리는 손을 멈출 수 없었다. 나는 남세현이 가까이 다가와 귀 가까이에 대고 내 이름을 여러 번 불렀을 때 비로소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다. 고개를 돌려 남세현을 바라보자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이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 오면 되지.
내 아쉬운 기색을 눈치챈 남세현이 말했다. 우리는 터널 밖으로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느새 구름 가득한 밝은 푸른색으로 변해있었다.
뒤를 돌아보니 유민우와 방기욱의 뒷모습이 보였다. 방기욱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가운데 일자로 서 있는 것이 지팡이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아도 그 형태를 제대로 알아보기 어려웠다. 저게 뭘까? 그의 그림은 자신만큼 투박했다. 이번에는 옆에 있는 유민우의 그림을 바라보았다. 아니, 벽을 바라보았다. 유민우의 그림은 없었다. 새하얀 도화지 같았다. 아무것도 채워지지 않고 있었다. 텅텅 비어 있는 벽이 마치 그의 속마음을 대변해 주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유민우와 함께 했지만 아직도 유민우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기 어려웠다. 속이 훤히 보인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오히려 속내를 알 수 없는 자라면 그쪽에 더 가까웠다. 유민우의 말에는 늘 다정함이 담겨있다. 하지만 유민우는 중요한 순간에 늘 입을 꾹 닫았다. 모닥불 앞에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때도 사적인 이야기가 나오면 침묵으로 답을 하기도 했다. 유민우의 뒷모습은 퍽 외로워 보이기도 했다. 무엇이든 갈망하는 지금의 나와 달리 어떤 것도 그를 흥분시킬 수 없을 것이었다.
트럭을 타고 아지트로 돌아가는 길에 해가 선명하게 나를 비췄다. 나는 눈이 부셔서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계속 생각했다. 생각해 보니 유민우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그래도 꽤나 믿고 의지할 만한 존재가 되었음에도 그에 대한 어떠한 것도 잘 알지 못했다. 나는 아지트로 돌아가자마자 유민우를 불렀다. 그라피티 도구 정리를 마치자마자 그를 밖으로 이끌었다. 그 모습에 다들 놀란 듯 보였지만 개중에도 유민우가 가장 당황스럽다는 표정이었다. 방기욱은 예상했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버리고는 이영종 씨에게 오늘 점심 메뉴를 물었다.
-유민우.
자신을 부르는 한 마디에 깜짝 놀란 듯 어깨를 들썩였다. 그리고는 작게 응, 이라고 대답했다.
-너는 왜 나를 따라오겠다고 한 거야? 단순히 방기욱이 너를 끌어들였기 때문에?
유민우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유민우는 내가 자신에게 이런 질문을 하리라고 어느 정도 예상한 것 같았다. 그러나 말해줄 기미는 안 보였다. 난 유민우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저 부드러운 표정 안에 어떤 속내를 감추고 있는 걸까. 저 순수한 얼굴 너머에 나같이 어두운 면이 존재하기라도 하는 걸까?
-적어도 너는 그런 무책임한 말을 해선 안 돼.
내 말에 유민우는 알고 있다는 듯이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미소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 나는 알고 있다. 유민우가 최소한 나와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이란 것을. 보자마자 알 것 같았다. 사람은 비슷한 사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유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적어도 지금 어떤 것이 하고 싶은지, 무엇을 먹고 싶은지 정도는 말해줄 수는 있잖아.
-네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 뭐야?
-…….
-가장 좋아하는 색은?
유민우는 고개를 숙이고 고민하더니 하얀색이라고 답했다. 내게는 그걸로 충분했다.
-그래. 거기서 시작하는 거야. 우리 여기서부터 출발해 보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내 말에 대답해 줄 의지가 남아 있다니 다행이다. 실은 양주혁이 유민우의 가정사에 대해 털어놓은 이후부터 유민우가 은근히 나와 함께 있는 것을 피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쩌면 그대로 나와 멀어지고 싶은 걸까 봐 불안한 마음에 가슴이 뛰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자연스럽게 유민우와 멀어지고 싶지 않았다. 유민우와 멀어진다면 난 금방이라도 다시 불안해지고 말 것이었다. 그저 그런 이기적인 이유였다. 이토록 이기적인 줄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