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하동 오두막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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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이 많이 시원해졌다. 그 오두막 할배가 타주는 허브 차가 없었더라면 저녁이 꽤 쌀쌀했을 것이다. 오두막 할배는 알면 알수록 더욱 모르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 같았다. 하루는 유민우의 상처를 치료하기 위한 약초를 캐기 위해 할배와 절벽이 있는 곳까지 산을 탔다. 장작 4시간이 걸린 그 여정에서 그와 내가 나눈 대화는 죄다 약초 얘기뿐이었다. 그야말로 약초 바보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두막 할배와 함께 있을 때는 묘한 불편함이 있었다. 도움을 받는 게 싫어서 괜히 소리칠 때도, 그가 온갖 풀을 다 집어넣고 잡탕을 끓였을 때 그것을 맛보고 맛이 없다고 말할 때도 묘하게 마음이 불편했다. 그 감정이 자꾸 거슬렸다.


그러나 이곳에 머무르는 것이 싫지만은 않았다. 난 오두막 할배한테 농경의 기초를 배웠다. 그토록 해박하게 이론을 알고 있는데 도대체 왜 죄다 썩혔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또 나무를 베고 부드럽게 갈고 형태를 다듬는 방법도 배웠다. 오두막 옆에 또 다른 오두막을 하나 더 만들고 싶은 마음을 겨우 다잡으면서 말이다. 농경도 토목도 내게 제법 재능이 있어 보였다. 아무 생각 없이 밭을 일구고 나무를 베고 토막 내어 땔감을 태우는 시간이 뿌듯했다. 이 잔잔한 하루들이 계속 반복되는 것이 숨을 제대로 잘 고르는 법을 배우는 기분처럼 편안하게 했다.


유민우는 조금 변했다. 처음에는 어색했다. 내가 그를 때린 날 이후로 우리는 한 마디의 대화도 나누지 않고 산을 올랐다. 같이 목욕을 할 때도 어색한 기류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난 유민우의 속마음을 알 수 없었다. 무슨 의도로 내게 고맙다고 한 건지, 순간 내가 너무 세게 때리는 바람에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심히 고민되었다. 대화를 나누지 않는 오랜 시간 동안 계속 생각했다. 유민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줄 몰랐다. 난 유민우가 했던 대사를 몇 번이고 다시 곱씹어보았다.


“위선자 새끼. 겉으로는 구원해 줄 것처럼 굴더니 결국 중요한 순간에 도망치는 비겁한 위선자. 결국은 너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좀 구타당하고 저 큰 저택에서 사는 게 차라리 나은 인생이 아니겠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을 수 없었다. 내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서 그렇게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유민우를 구원해 줄 생각 따위 없었다. 그냥 좀 재밌는 녀석이라고 생각했다. 분명 언젠가는 큰일을 낼 것 같은 위태로운 사람이라고 느꼈을 뿐이었다. 그 자식이 뿜어내는 고독함, 광기, 살기 같은 것들에 이끌려 난 한바탕 위험한 놀이를 즐길 수 있겠다고 확신했던 것이다. 지금의 나라면 하지 않을 행동이겠지만 말이다.


작은 창문 속 유민우를 마주쳤을 때 분명 그는 나한테 살려달라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유민우는 본질적으로 나와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버젓한 집, 가족. 비록 그 안에서 외로움, 고독 그런 걸 느낀다고 해도 내 감정과는 전혀 다를 것이다. 그 녀석이 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부터 유민우는 모르는 사람이었다. 유민우가 집 안에 있는 순간만큼은 나와 다른 세계 사람으로 치부하고 살아왔다.


어느 날은 그 자식 아버지가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내 뺨을 때렸다. 그 옆에는 유민우도 있었다. 나는 그 장소에 맞지 않는 깨끗한 정장을 찢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유민우가 입고 있던 것도, 그 자식 아버지의 것도. 그의 아버지가 반짝이는 구두로 날 밟을 때 유민우는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방관하고 있었다. 그와 나의 거리는 딱 그 정도라고 생각했다. 아니, 실제로 딱 그 정도였을 것이다, 그때까지는.


떠올릴수록 뜨거운 목욕물이 답답하게 느껴져서 목덜미를 쓸어내리고 입을 열었다.


-그때 나한테 왜 고맙다고 한 거냐?


유민우는 잠시간 아무 말도 없었다. 그러다가 얼굴을 물에 푹 담그고 한참 동안 나오지 않았다. 난 혹시나 이 자식이 죽을 생각으로 그러나 싶어서 숨을 참고 물속으로 들어가 눈을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눈도 뜨지 못하고 인상 쓰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물속에서 편안한 표정으로 멈출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유민우를 잡아 물밖으로 끓어내었다.


-푸학!


-야 너 진짜 미쳤냐?!


몇 번 컥컥거리던 유민우가 진정하고 웃기 시작했다. 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역시 이 녀석 머리에 문제가 생긴 게 분명하구나, 싶었다. 내가 알던 유민우와 너무 달랐다.


-지금처럼 그때도 네가 날 구했거든. 눈을 어떻게 제대로 뜨는지도 모르고 허우적대고 있는데 네가 단숨에 그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눈을 뜨고 숨을 쉬게 했거든.


-…그 말을 하겠다고 지금 물속에서 숨을 참았단 말이지?


그에게 서려 있는 것은 어릴 시절의 광기보다 더 원한이 깊은 광기임을 난 깨달았다. 유민우가 한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해도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때부터 유민우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 내가 알고 있던 그가 풍기던 향내음을 모두 씻어내고 다시 태어난 숫기 어린아이처럼 변하였다. 본능적으로 그 자식이 전과 다르다는 걸 깨달았지만 그와 별개로 유민우 자체가 싫지는 않았다. 그의 해동 하나하나가 재밌기보다 짜증이 나더라도 그게 걸리적거린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난 오늘도 오두막 할배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우리에게 이 싸움은 기우가 아니었다.


-안 돼! 또 할배가 감자 가져가면 이제 정말 남는 게 없다고. 그동안 내기로 가져간 감자 개수가 몇 개인데.


할배는 탁월한 수입이 없는 날에는 내게 와서 내기를 하자고 하더니 모두 이겨버리고 감자를 뜯어갔다. 더 이상 그 수법에 똑같이 당할 수는 없었다.


-이번 내기는 네가 이길 수도 있는 거지 않느냐.


-정말 내가 이겼다고 한들 어떤 방식으로든 이것들을 가져가겠지. 내가 바보인 줄 알아.


할배는 턱에 손을 올리고 고민하더니 이렇게 하는 게 좋겠다며 자신이 조각하던 손톱만 한 나무 조각을 가져왔다. 그 나무조각은 꼭 구름을 닮은 모양이었다. 그 나무조각의 까진 면이 뒤, 껍데기 부분을 앞으로 정하고 동전 앞뒤 맞추기 게임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운 게임 아니냐! 자네가 이길 확률도, 내가 이길 확률도 정확히 반반.


나는 한참 고민하다가 그 제안을 승낙했다. 그렇게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경기가 시작됐다. 이 게임은 단판이었다. 누가 이기는지 결정되는 건 정말 한순간이었다. 공정하게 설주림이 그 나무 조각을 공중에 던지기로 했다. 승자의 결정이 그녀의 손에 달려있었다. 바람이 한 번 지나가며 내 신경을 건드린다. 어느 방향으로 바람이 부는지 공중을 노려보았다. 난 나무 조각의 앞면을 골랐다. 더 둥근 부분이 바닥에 안착하기 좋은 모양처럼 보였다.


-이제 던진다?


설주림은 그렇게 말하고 하늘 높이 나무 조각을 던졌다. 그것은 공중에서 이리저리 곡예를 했다. 빠르게 회전하다가 바닥으로 가속도를 받아 떨어졌다. 팔짱을 끼고 있던 손 안쪽은 이미 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내 자식과도 같은 이들을 넘겨주느냐 마느냐 하는 아주 중대한 문제다. 그때 바닥에 떨어진 나무조각을 떨리는 눈으로 바라봤다. 나무조각은 부드러운 안쪽 면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두막 할배는 얄미운 표정으로 웃었다. 설주림은 할배와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게임에서 내가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없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감자를 그녀의 손에 쥐어주는 것이 내가 진다고 표현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영원했으면 좋겠다. 이 순간이, 시간이, 공간이. 머지않아 부서질 거 같은 순간과 시간, 공간이 아니라 이대로 변치 않고 내 옆에 남을 거라 확신해도 된다고 말해주면 기쁠 텐데. 그곳은 어쩌면 우리에게 이제 돌아올 집과 같았다.


감자를 뺏긴 그날 저녁 땔감용 나무를 구하기 위해 오두막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꽤 많이 주웠다고 생각해서 돌아가고 있었다. 그때 할배가 눈에 띄었다. 구석진 오두막 뒤편에서 고개를 숙이고 피를 토하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들고 있던 나뭇가지를 떨어뜨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할배! 괜찮아?


난 당황해서 무엇을 건네야 할지 몰라 허둥거렸다. 휴지가 있을 리 없고 바닥에 떨어진 잎들이 말라버려서 대체용으로 쓸만한 것들이 별로 없었다. 할배는 자기 손에 묻은 혈을 털어버리고 바닥을 가득 채운 낙엽들에 손을 비볐다.


-괜찮다. 이제 슬슬 한계인가 보지.


할배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 눈에는 아쉬움보다 더 큰 무엇이 담겨있었다. 도저히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복합적이라서 난 말을 잃고 말았다.


-설주림이랑 유민우도 알고 있어?


할배는 고개를 젓고 나밖에 모르니 그들에게 이 사실을 말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 할배가 지금의 우리 곁을 떠날 때 설주림이 겪을 고통을 짐작할 수 있기에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 대답을 하면서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아무리 재수 없고 짜증 나는 할배더라도 그가 내 곁을 떠난다는 게 아무렇지 않을 수 없었다. 살면서 내 곁을 떠나간 수많은 사람들을 겪어왔다. 그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 법을 익혔다. 그들에게 정을 받지 않는 방법을 배웠다. 그들과 가볍게 어울리는 법을 깨닫고, 이행했다. 지금의 나는 그것들을 모두 잊었다. 기억이 나지 않았다. 어떻게 했는지 하나도 남은 게 없었다. 그냥 습관처럼 베여서 나왔던 행동들을 몸이 잊어버린 것 같다. 설주림도, 할매도, 영종이 형도, 이 오두막 할배도. 살기 위해 거뒀던 방식들이 하나씩 깨져가고 있었다.


어느 순간 변해버린 유민우가 싫지 않아 진 것도. 위험했다. 이건 내 몸에서 보내는 위험신호였다. 살아남기 위해서, 나를 지키기 위해서 이 길은 위험하다고 알리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신호는 두껍게 굳힌 설탕 코팅이 깨져버린 것과 같아서 아무리 뾰족하게 갈라진 조각들이라도 입에 가져다 대면 달콤했다. 한 번 입을 대면 멈출 수 없을 정도로 중독적이었다. 이 위태로운 달짝지근함은 날 매료시켰고, 그것들을 못 본 체하면 더 이상은 이것을 맛볼 수 없었다.


나는 머리를 짚었다. 생각을 한다는 행위가 이리도 체력소모가 심했던가. 그러다 무심코 한 생각이 나를 이 딜레마에서 구원해 주었다. 어차피 나는 설주림을 포기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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