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하동 오두막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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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 저택을 나오면서 복도 끝에서 보았던 황금돼지를 떠올렸다. 한 동물농장에서 돼지는 모든 동물들의 우위를 점하고 권력을 형성했다. 그리고 그게 무너지듯 보였지만 돼지는 고고하게 자신의 위치를 지켰다. 돼지는 부유하고 영리했다. 하지만 한 땅구덩이 아래 황금돼지는 흰 말의 가죽이라는 약점을 지니고 있었다.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것에도 분명 급소는 있다. 그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닌 황금돼지 장식품도 언젠가 어떠한 사건으로 인해 반드시 무너지고 말 것이라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는 하동으로 향했다. 하동의 어느 이름 없는 산을 무작정 올랐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적막이 아닌 고요였다. 푸르고 아름다운 고요를 찾아 오르막을 타고 또 탔다. 그러자 자그마한 오두막 하나를 발견했다. 그 오두막은 제법 연식이 느껴졌고 사람의 흔적도 보였다. 그러나 조심스럽게 주변을 탐색하고 내부를 둘러보아도 사람은 없었다. 속세에서 벗어나 거칠고 투박한 도구들과 벌레가 다 갉아먹은 농작물도 보였다.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지만 해가 지는 탓에 더 올라가는 것을 멈추기로 하고 그 오두막 앞에 있던 나무탁자와 의자에 앉아 쉬었다. 하늘이 어두워지니 슬슬 추위가 몰려왔다. 방기욱은 내게 겉옷을 덮어주었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려던 찰나 어둠 속에서 아주 밝은 빛이 하나 보였다. 우리는 공중에 떠있는 그것이 무엇인지 유심히 바라보았다. 이리저리 휘기도 하고 얇아졌다가 옆으로 퍼지기도 하는 것이 꼭 도깨비불 같았다. 그러나 파란색일 줄 알았던 도깨비불이 붉은색과 노란색을 왔다 갔다 하는 게 신기했다. 도깨비불이 아니냐는 생각을 말로 내뱉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귀신, 도깨비 그런 건 없다고 생각했을 때 그다지 무섭지 않게 되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비벼도 선명하게 보이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도깨비불은 점점 다가올수록 더 커졌다. 그 도깨비불은 오른쪽으로 휙 파도 타듯 움직이기도 하고 왼쪽으로 꺼질 듯이 작아졌다가 제 몸집을 키우기도 했다. 주변을 살펴보았을 때 민우와 방기욱은 이미 없은 지 오래였다. 그들이 어디로 사라졌는지 찾을 새도 없이 그 도깨비불은 더욱 가까워졌다. 그리고 그 도깨비불 뒤로 빛이 그늘진 귀신의 모습에 기절한 채 쓰러질 수밖에 없었다. 기절하기 직전 쓰러지며 몸에 닿은 따스한 체온 덕에 그들도 기절했다는 걸 알았다.


다시 눈을 뜬 건 밝은 햇빛 때문이었다. 눈을 찌푸리며 고개를 드니 하늘이 아주 예쁘게 푸르렀다. 정말 우리가 찾던 푸르고 아름다운 고요가 그곳에 담겨있었다. 우거진 녹음이 너무 광활해서 이곳이 우주를 압축해 놓은 곳이라 한다면 기꺼이 믿을 만했다. 우주에도 이곳처럼 산뜻한 바람이 불고, 아름다운 꾀꼬리도 들린다면 왜 그리들 그곳을 탐험하고 싶어 하는지 이해가 갔다. 돌고 돌아 우리에게 남은 것이 우주라면 이보다 더 큰 몫이 무엇이 있을까? 선선한 바람이 내 얼굴에 닿는 감촉을 느끼다 보면 마치 바람이 내게 와서 이제 곧 가을이 올 거라고 속삭이는 것 같았다.


-깨어났군.


나는 목소리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앉았다. 백발의 한 할아버지가 앙상한 팔로 커다란 양동이 하나를 들고 오두막에서 나왔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앙상한 팔에는 근육이 가득했다. 얇디얇은 뼈에 다발로 붙은 근육이 움찔거렸다. 때마침 방기욱도 머리를 쥐어뜯으며 일어났다. 할아버지는 양동이를 두터운 나무에 걸고 거대한 모닥불 위에 올렸다. 그 불의 화려한 움직임에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일어났으면 얼른 이리로 오너라.


나는 모닥불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홀린 듯 다가갔다. 인자한 할아버지의 미소에서 우리 할머니가 보였다. 그녀가 그립고 따스함에 가득 파묻히고 싶었다. 가까이 가자 할아버지는 팔팔 끓는 양동이 속 스튜가 담긴 그릇을 건넸다. 그 그릇은 나무로 만들어져서 스튜의 뜨거움이 잘 느껴지지 않았다. 그 점이 아쉬워서 얼굴을 스튜 가까이에 대었다. 얼굴에 따스한 연기가 닿아서 얼굴이 축축해졌다. 나는 따뜻한 국물을 마셨다. 옆에서 한참 그릇을 노려보던 방기욱도 머뭇거리다가 그릇을 잡았다. 그는 한 모금 축이고 나서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흡입했다. 할아버지는 온화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


-여기는 어떻게 오게 되었나?


나와 방기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나와 방기욱을 번갈아 바라보고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난 하동의 한 작은 호스피스에서 일을 했단다. 젊은 나이에 대기업에 취직한 내가 그곳을 때려치우고 처음 마음을 움직인 선택지였지. 그곳은 즐거웠고 웃음이 끊이지 않았어. 다시 그 일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따금 그런 생각을 했지….


어느 순간 난 집중해서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말에서 할아버지는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긴 듯 보였다. 할아버지는 눈을 감았다. 그때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는 할아버지의 머리칼이 눈에 들어왔다. 그 평온함이 내 눈동자 속을 꽉 채웠다. 그대로, 그 장면대로,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하리라 예감했다. 나는 눈을 감고 싶지 않아서 안간힘을 주었다. 감았다 뜨면 끝나버릴 만큼 아슬아슬한 평온이었다. 할아버지의 미간이 움찔거렸다.


-그곳은 아주 아름다운 곳이야. 유유히 퍼지는 풀내음과 바람이 훑고 지나간 자리를 따라 몸을 뉘어 보이는 잡초들까지. 멜로디가 기가 막힌 새소리로 아침잠을 이겨내는 일도 드물지 않았지. 함께 했던 자들이 재잘거리는 소리가 추억처럼 남아있는 게 내 가슴 한편을 후벼 파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곳을 다시 발견했으니 내 평생의 운을 다 쓴 것이 분명해.


난 그 말을 듣다가 눈을 굴려 절반이 상해버린 농작물을 바라보았다. 그 기색을 눈치챈 할아버지는 큰 소리로 웃었다. 아무래도 농사에는 소질이 없는 것 같다며 씁쓸하게 그것들을 만지작거렸다.


-젊은 녀석들이 맨몸으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 모양이구나.


할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며 미소를 짓고 몇 차례 고개를 주억거렸다. 나와 방기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태도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할아버지의 어딘지 모를 씁쓸함과 동경만이 나의 가슴에 와서 닿은 듯했다. 할아버지는 나무로 만든 큰 대욕탕에 물을 받아두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리를 비우고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민우가 눈을 떴다. 민우와 함께 밥을 마저 먹고 할아버지가 안내해 준 대욕탕으로 향했다. 난 조심히 물에 발을 담갔다. 머리를 깨우는 차가운 감촉에 깜짝 놀라 발을 빼었다. 조금씩 몸이 적응하자 제법 즐길 만큼 적응되었다. 발을 꼼지락거리고 손으로 물을 밀었다가 당겼다. 개운한 느낌이 온몸을 지배하자 찬물을 갑자기 접한 그 찰나와 같은 짜릿함에 닭살이 오소소 돋아났다. 나는 민우와 방기욱이 씻을 동안 해가 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다가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컵을 전해주었다.


-이제 저녁에는 날이 차단다. 여름이 가을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어.


그는 그렇게 말하며 하늘을 바라보았다.


-가을이 오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좋을 텐데…


무심코 그런 말을 하다가 느릿하게 뜬 동그란 눈으로 고개를 들어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그는 여전히 동요하지 않은 마른눈으로 내게 웃어 보였다.


-그렇지. 가을이 오다가 깜빡 잊고 온 낙엽을 찾으러 크게 돌아오면 좋겠구나.


할아버지와 나는 서로를 마주 보고 피식 웃었다. 그리고 가슴속에 피어나는 벅참에 심장을 부여잡고 이리 설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이리 순수한 웃음이 얼마 만이었을까?


그날 우리의 간절함 덕분이었을까, 나뭇잎이 붉은색으로 변해가는 시간은 느리고 길었다. 아직도 푸릇푸릇한 이파리들 사이에서 할아버지의 특기인 허브 찾기가 한창 큰 화젯거리였다. 할아버지는 허브 찾기의 귀재였다. 매일 밤마다 우리에게 다른 허브 차를 끓여주었다. 우리는 그 차를 마시며 하늘에 다 담기지 않는 빼곡한 별들을 올려다보았다. 나는 언덕에서 바라보았던 밤하늘을 떠올렸다. 어쩌면 내 길잡이는 이 별들이 아니었을까. 도심에서는 한 번 볼까 말까 한 별들을 그 여름에도, 이 가을에도 매일 밤 한 움큼씩 보고 있으니 말이다.


이곳의 오두막은 크지 않아서 우리 셋이 들어가면 누울 곳이 없었다. 그래서 민우와 방기욱의 겉옷을 엮어 해먹을 만들었고, 할아버지 도구를 빌려 나무를 토막 내 간이침대를 만들었다. 밤 추위를 이기기 위해 늘 모닥불을 둘러싸고 누워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면 건강한 풀들로 식사를 하고 또 먹을거리를 탐색하러 돌아다녔다. 그리고 아주 놀랍게도 방기욱에게는 농부의 재질이 보였다. 썩은 부분을 도려낸 감자를 심어 싹을 틔우고 아직까지 그의 손에서 감자 농사는 순행 중이었다. 그는 그 소소한 밭에서 잘 떠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었다. 자신이 씻으려고 모아둔 물을-이곳에서는 물을 한 번 팔팔 끓여서 사용하지 못할 만큼 줄어들 때까지 여러 번 재활용했다- 냉큼 감자에게 내어 주기도 했다. 그 모습에 민우와 나, 할아버지는 입이 마르도록 웃었다.


할아버지에게 우리가 그라피티로 그렸던 그림을 땅에 나뭇가지로 그어가며 설명했고 그때 보았던 경치를 과장해서 이야기했다. 얼마만큼 좋았는지 설명하겠다고 나무 의자에서 일어나 열성을 다해 설명하며 조금씩 우리들은 웃음을 되찾아갔다.


할아버지는 약초를 따다가 민우의 상처에 올리고 천으로 덮어 다친 곳을 간호해 주셨다. 그 덕분인지 민우의 상처는 금세 아물기 시작했다. 민우의 퉁퉁 부었던 얼굴도, 몸도 모두 제자리를 찾아오고 있었다. 그의 얼굴에서 가장 아름답게 빛났던 미소도 가까운 시일 내에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저절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나는 행복했고, 살아있음을 느꼈다. 작고 소중하지만 가냘픈 푸른색 자연이 이 세상 속에서도 끈질기게 생명을 지키고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하고 나서부터는 도무지 힘을 안 낼 수 없었다. 살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내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서 그 나무처럼, 압도되는 자연들처럼 끈질기게 살아낼 수밖에 없었다.


할아버지에게서 어떤 감정에도 쉽게 동요하지 않는, 세상을 달관한 스님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어느 날은 그렇게 묻기도 했다. 호스피스에서 일한 게 아니라 절에 있다 오신 게 아니냐며, 농담 삼아 말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할아버지는 허허, 웃으며 그럴지도 모르지, 하고 받아쳤다. 이곳에서 산지 얼마나 되었냐는 질문에는 세어본 적은 없지만 겨울, 봄, 여름을 났으니 이제 가을만 지나면 1년이 다 되어간다고 했다. 방기욱은 이런 곳에서 1년이나 살았다는 말을 믿지 못한다는 듯이 허, 하고 거리낌 없이 웃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역시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다행히도 우리는 우리보다 거대한 자연산 동물들을 마주친 적 없이 안전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어쩌면 할아버지께서 밤마다 우리 몰래 밖을 돌아다니시다가 들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보호 속에서 난 안온을 얻었다. 잃고 싶지 않고 미소 짓게 하는 이 정온의 상태에 끝없이 머무르고 싶었다. 기약 없는 평안에 영영 갇혀 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렇게 매미가 우는 소리가 흐려지고 나무가 제 잎들을 붉게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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