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화

유민우

by 문나인

===


'우와! 민우야 정말 이게 다 너 거야? 짱 부럽다! 나 이거 한 번만 써봐도 돼?'

'너희 아빠 최고다! 이거 엄청 비싼데… 칩도 엄청 많고!'

'잘났어. 쟤 지금 지 아빠 빽 믿고 저러는 거지?'


난 어릴 때부터 남들의 많은 부러움과 시기 질투를 샀다. 내가 남들과는 다르다는 것, 특별하다는 것쯤은 무의식 중에 당연하게 축적됐다. 남들이 갖지 못하는 비싼 것들, 운전기사, 부모의 명성까지 모조리 내 것이었다. 그냥 태어날 때부터 내 것이었던 것들. 그러나 그 이면에 숨겨진 어둡고 아픈 것들까지 모두 나의 몫이었다. 아버지의 폭행, 고용인들의 무관심과 빼곡한 일정들도 전부 내가 특별하기 위해 품어야 할 것들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9살이 되던 무렵 처음으로 나를 때렸다. 순간의 감정에 휘말려 내 뺨을 붉게 물들였다. 그리고 다음날 아버지는 사과 대신 백만 원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난 그때 백화점에 가서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가 많던 장난감을 샀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그 장난감을 학교에 가져가서 자랑했다. 친구들이 무척이나 부럽다고 말했다. 조금, 아니 조금 많이 기뻤다. 아버지는 그날 이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나를 불렀고, 난 쓰러졌고, 또 백만 원을 얻었다. 조금 커서 중학교에 가니 선배라는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네가 그 유명한 부잣집 아들이라며? 그들은 내가 아버지께 받은 돈을 남김없이 가져갔다.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돈을 뜯어 갔다. 내가 돈이 없다고 하면 돈이 나올 때까지 가방이며 사물함까지 모두 뒤졌고 없으면 이제 그들에게까지 맞았다. 그때 깨달은 것이 있었다. 만약 여기서 내가 아버지에게 맞는 것에 저항한다면, 조금이라도 그러고 싶지 않다는 티를 낸다면 난 돈도 받지 못할 것이고, 돈이 없으면 온종일 아버지와 선배들한테 시달려 맞기만 해야 했다. 그것만큼은 끔찍했다.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숨 쉴 곳이 없다면 난 죽을 것 같았다.


주림이와 기욱이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날은 태어나서 아버지에게 가장 많이 맞은 날이었다. 그래도 외상이 남지 않게 하는 것이 아버지의 철칙이었는데 그 철두철미함이 처참히 무너졌다. 간혹 방학 중이나 명절이면 팔과 다리에 피멍이 들기도 해서 옥탑방에 나를 가두고 며칠이 지나야 만 꺼내 주었다. 그 안에서는 해가 지고 달이 뜨면 하루가 또 지나갔구나, 하며 날짜를 세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 아주 가끔이었고 손으로 셀 수 있을 만큼 적었다. 아버지에게 맞고 얼굴까지 퉁퉁 부어서 밥을 제대로 먹지 못할 정도는 정말 이번이 처음이었다. 한동안 내가 맛본 자유는 구타에 의한 고통에 상응해서, 아니 그 고통을 훨씬 뛰어넘은 값진 시간이어서 그리 아프진 않았다. 맞은 다음날은 지옥을 맛볼 만큼 고통스러웠다. 살갗이 찢겨서 따가운 것보다 외로움이 날 더 잠식했다. 그들이 그립다는 생각이 들면 창밖을 계속 바라보다가 현실을 깨닫고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옥탑방에 들어오면 밤마다 창밖을 바라보는 것이 내게는 하나의 습관이었다. 그 창문만이 내 희망이었다. 어떻게든 그 유리를 깨부수고 그 아래로 떨어지면 죽을 수도 있지 않을까? 죽고 나면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어느 날은 그런 생각이 날 강력한 충동으로 이끌어 창문을 잡았다. 그때 창문 아래에서 기욱이를 보았다. 나는 기욱이와 눈이 마주쳤다. 살려줘. 구해줘. 나도 네가 있는 곳으로 데려가줘. 그러나 기욱이는 한참 동안 나를 바라보다가 멀어져 갔다. 그 순간 알아차렸다. 내게 이 고통은 숙명임을. 난 그냥 남들과 다른 특별한 고통을 안고 태어난 것이었다. 기욱이가 자유를 얻었으니 그 뒤에 나도 모를 고통을 또 안고 살아가고 있겠지. 그 고통의 무게는 남들이 가늠할 수 없지만 그것을 버티며 모두가 살아가는 것이었다. 그저 나도 그렇게 살아가는 평범하고 또 특별한 사람이었다.


근데 주림이를 만나고 조금 변했다. 내가 아버지가 주는 돈이 없어도, 맞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었다. 그 순간이 너무 꿈만 같고 달콤해서 지금은 바랜 듯이 기억 한 편에 남아있다. 결국 현실은 이렇다는 것은 증명이라도 해 보이듯 난 지금 이곳에 있었다. 또다시 돌아온 것이다.


그때였다. 누군가 옥탑방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누구지? 이 시간에 누가 온 걸까. 식사시간도 아니고. 혹시 아버지가 화가 많이 나신 걸까.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또 때리실 셈인가. 근데, 또 맞으면 어때. 그게 내 삶이고 또 내 인생이지. 나는 고개를 들어보지도 않고 그저 딱딱한 마룻바닥에 옆으로 쭈그리고 누워 눈을 감고 다가올 미래에 초연해지기로 했다.


-민우야.


익숙하고 따스한 목소리가 오래간만에 들려온 탓에 난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도 역시 이제는 한계에 달한 것일지, 드디어 미쳐버린 것일지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다. 뒤에서 기척이 느껴졌다. 뭔가 꿈틀대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이 나에게 닿진 않았다. 역시 환각이었어. 이제 그만 사라져 줘. 피부를 파고드는 고통보다도 더 고달프단 말이야.


-야, 유민우.


난 그 목소리에 눈을 떴다. 창밖에서 나를 바라보던 기욱이가 멀어지던 장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눈은 건조하지도 않은데 자꾸만 깜빡인다. 눈동자에 생명을 불어넣은 느낌과 초점이 돌아오는 감각에 소름이 돋았다. 이건 현실이다. 아니, 현실일까? 나는 뒤를 돌았다. 그곳에는 정말로 기욱이가 서 있었다. 고개를 살짝 내리니 주림이가 보였다. 살이 부풀어 올라서 시야가 좁아져도 그 둘은 알아볼 수 있었다. 바로 눈앞에 그토록 꿈꾸던 두 사람이 있었다. 근데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을 것만 같았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으로 계속 이게 맞다고, 그건 꿈이었다고 되뇌고 있었기 때문일지도 몰랐다. 입을 열어도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어서 오라고 할 처지는 되나, 왜 왔냐고 되물을 용기가 있나, 내가 화낼 주제도 아니고. 난 결국 입을 다물었다. 단지 빛이 돌지 않는 눈으로 그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민우야, 우리랑 같이 가자.


주림이는 날 다시 그 꿈속으로 데려가려고 하는구나. 난 애써 입꼬리를 올려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 나는 그녀를 쳐다볼 수 없었다. 그녀에게 미안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는 염치를 상실한 나였기 때문이다. 울어도 안 되고 그렇다고 반겨도 안 되고, 화를 내서도 안 되었고, 그리워해서도 안 됐다. 그것이 내 페널티다.


주림이의 시선이 나의 이곳저곳을 훑었다. 분명 달라진 나의 모습에 동요를 보이고 있겠지. 나는 씁쓸하게 입맛을 다셨다. 피 맛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퉁퉁 부어버린 얼굴과 불어 터진 입술, 팔과 다리에 가득한 멍과 상처들. 갈라진 머리카락들도 여태 그녀가 알던 유민우는 온데간데없고 남은 건 상처받은 몸뚱이뿐이었다.


주림이가 내 이름을 여러 번 불렀다. 나는 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정말로 답을 할 수 없었다. 입이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가슴속 깊은 곳에서 주림이에게 답을 하고 있었다. 그저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내 몸이 원통할 뿐이었다. 그녀는 나를 바로 앉혀 세우며 함께 떠나자고 제안했다. 나는 텅 빈 눈으로 낙담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고개도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내 의지로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삐걱대는 목이 너무 가슴 아파서 왈칵 눈물이 흐르려고 했다. 주림이는 굳어진 내 머리 앞으로 몸을 낮춰 눈을 맞추었다.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이 그 커다란 눈 안에서 일렁이고 있었다. 아니, 그건 눈물보다 이슬에 가까웠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아름답게 흐르는 모양새가 모처럼 외로움을 잊게 만들었다.


-우리 할머니가 이따금 내게 그런 말을 하셨어. 인생은 시계와 같은 거라고. 수많은 점들을 올곧게 지나 다시 돌아오는 거지. 그러면 종이 울리고 우리는 숙명에 따라 이곳을 떠나게 되는 거래.


나는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어떠한 말을 꺼내려는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무슨 말도 하지 못하고 그녀가 나를 포기하고 그렇게 떠나가는 상상을 했다. 그게 맞을 거다. 나는 체념했다.


-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 이건 네게 주어진 의무와 같은 거고, 넌 그 의무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생각하겠지.


그녀는 한참 말이 없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녀가 다시 입을 열어 한 말들이 비수가 돼서 내 마음을 찔렀다. 아팠다.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내 머릿속에선 그만하라고 울부짖고 있을지 모르겠다. 그저 아아, 들켰구나, 드디어 끝이구나. 모든 게 발가벗겨진 지금 드디어 무아지경에 도달했나, 그렇게 실소를 날렸다. 그리고는 나도 놀라서 눈을 크게 뜨려고 노력했다. 가슴속에서 무언가 터졌다. 어떤 물집 같은 게 비수에 맞아서 팡하고 터졌다. 진물이 내 내장을 따라 흐른다. 나는 입을 열었다.


-제발 좀 그만해. 나에 대해 모든 걸 다 안다는 듯이 말하는 거 이제 지겨워. 질린다고. 그래, 예전부터 그랬어. 나 같은 녀석은 뻔하다는 자식들이 한두 명이 아니었지. 네가 뭘 알아? 나에 대해 네가 뭘 아냐고!


진물이 보글보글 끓는다. 그 뜨거움에 몸부림치며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주먹을 쥐었다. 미간이 비틀어진 기욱이를 한 번 쳐다봤다.


-위선자 새끼. 겉으로는 구원해 줄 것처럼 굴더니 끝내 중요한 순간에 도망치는 비겁한 위선자. 결국은 너도 그렇게 생각했겠지. 좀 구타당하고 저 큰 저택에서 사는 게 차라리 나은 인생이 아니겠냐고.


나는 그렇게 말하며 꽉 쥔 주먹에서 흐르는 피를 느꼈다. 몸속에서 흐르는 진물만큼 뜨겁지 않았다. 그 자리가 따갑지 않았다. 나는 그대로 팔을 들었다. 그걸 휘두르려는 순간 나는 무언가에 맞았다.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아팠다. 이거야말로 나에게 필요했던 한 방이었다. 일순 무기력해진 내 몸을 느꼈다. 손에 난 상처가 따끔거리고 아파왔다. 쓰러진 채로 주림이와 기욱이를 올려다보았다.


-미친 새끼. 이 개새끼.


그는 그렇게 말하며 나를 무참히 밟았다. 나를 향해 발을 구르고 또 굴렀다. 나는 숨을 쉬기 버거울 정도로 기침을 했다. 하지만 분명 난 느꼈다. 난 웃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해방의 웃음이었다. 온몸이 떨릴 정도로 긴장했고, 그러나 나는 소리쳤고, 후련했다. 다른 사람에게 미친 새끼라는, 진정한 개새끼라는 말을 듣는 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 없었다. 의심하고 있던 내가 진정한 내가 되는 순간이었다.


-일어나 씹새끼야. 아직 안 끝났어.


기욱이의 눈에 명확한 살기가 느껴졌다. 주림이는 그를 말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는 몇 번의 기침을 더 토해내고 나서야 비실대며 다시 일어날 수 있었다. 내가 개새끼 같이 누굴 원망하고 있었다는 게 맞을만한 이유가 된다는 게 왜 이리도 위로가 되는지. 그리고 난 입을 열었다.


-고마워, 기욱아.

이전 11화1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