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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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미안합니다. 길도 잘 모르는 당신들한테 이런 일을 맡기는 게 아니었어요.
-아니야. 끌어들인 내 잘못이지.
형사 둘이 경찰서 밖으로 나가고 다른 경찰관이 우리를 유치장에 넣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다른 민원이 밀려들어와서 우리를 이곳으로 옮긴 것이었다. 바닥이 예상만큼 딱딱하지 않았고 폭신한 담요도 구비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안락하게 느껴지기 보다 스산하고 고립된 기분이 강하게 들었다. 정일환과 남세현은 정말 미안한 표정이었다. 그리고는 금방 풀려날 테니 너무 걱정 말라는 말을 남겼다.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 결과가 단순히 그들만의 잘못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릎을 구부려 가슴 가까이 안았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아버지.
나지막히 들리는 목소리에 앞을 바라보니 문 앞에 양복을 차려 입은 한 중년 남자가 서 있었다. 나가서 한참을 돌아오지 않던 형사님 두 분도 뒤따라 들어오셨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유민우를 쳐다보았다. 얼어붙은 표정, 떨리는 팔과 다리. 자신의 아버지를 바라보며 그는 공포에 떨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까 한참 앞에서 우리들의 신상을 물어보던 형사가 중년 남자를 슬쩍 쳐다보더니 작은 목소리로 누구시냐고 물었다. 중년 남자는 뒤를 돌아 형사를 쳐다보았다.
-제게 전화 주신 장형준 형사님인가요? 안녕하십니까, 유민우 아빠 되는 유민철이라고 합니다.
장형준 형사는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유민우 아버지를 자리로 깍듯이 안내했다. 그는 다가와 의자에 앉으며 유민우를 스치듯 쳐다보았다. 중년 남자한테는 어진 얼굴과 부드러운 주름이 있었다. 그의 말투에는 너그러움과 여유가 한껏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러나 눈에는 어떤 정도 담겨있지 않았다. 마치 남을 보는 듯한 시선이었다. 유민우는 자기 아버지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반지르르하게 닦인 그의 검정 구두만 바라볼 뿐이었다. 주먹을 쥔 손도 가냘프게 흔들렸다. 난 장형준 형사에게 따뜻한 믹스커피를 건네받은 그 손의 주인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무슨 대화를 하고 있는지 들리지 않았지만 그들은 웃고 있었다.
웃으며 넘어가는 상체, 손뼉치는 소리 모든 게 느리고 또 흐리게 흘러갔다. 그들과 나는 모두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는데 이 상황의 주역은 그들이었다. 실내 조명도, 내 눈에만 보이는 연극 조명도 나를 비추고 있는 게 아니었다. 그들의 웃음이 빛에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부모님이 나를 찾아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군말없이 따라가야 하는 걸까. 속수무책으로 다시 그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될까. 유민우 아버지와 형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굳게 닫혀 있던 철창이 열렸다. 그들이 드리운 그림자에 압도되는 기분이었다. 부모라는 그늘 아래에서, 어른이라는 높은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끊임없이 작아지기만 하는 어린 피붙이들에 불과했다. 유민우 아버지가 내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지 않고 일어섰다.
-이 녀석들도 같이 데려가시려고요?
-아유, 제 아들놈 친구들입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집까지 잘 데려다 놓겠습니다.
형사님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다가 알겠다고 했다. 그새 둘 사이에 어떤 신의가 생긴 건지 모르겠다. 나는 유민우의 뒤를 따라 경찰서를 나왔다. 그때 누군가 내 손을 잡았다. 우리를 체포한 그 여자 형사님이었다. 그녀의 손이 떠난 자리에 작고 꾸깃꾸깃한 종이 한 장이 남아있음을 손의 감각으로 눈치챘다. 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옅게 미소 짓고 있었다. 그 온기 어린 표정과 넘겨준 종이로 내게 무슨 말을 전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늘 수고가 많으십니다.
유민우의 아버지가 고개 숙여 형사 두 분께 인사를 했다. 형사님들이 안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확인한 다음 그가 유민우의 팔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차에 타 있어. 금방 갈 거다.
유민우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아버지가 가리킨 곳을 향해 걸어갔다. 마치 누군가 유민우를 조종하고 있다고 오해할 만큼 수동적인 움직임이었다. 나와 방기욱은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유민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검은 승용차 뒷좌석 문을 열었다. 그가 차에 올라탈 때까지 지켜보던 그의 아버지는 차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누군가가 운전석에서 내려 트렁크로 향했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몇 차례 들리더니 각대봉투 두 개를 들고 이쪽으로 걸어왔다.
-또 너구나, 방기욱? ......이 여자애는 또 뭐야.
유민우 아버지는 말하다 말고 한숨을 쉬었다. 방기욱은 고개를 돌려 먼 곳을 응시했다. 그 중후한 남자는 나를 혐오하는 표정으로 쳐다보더니 돌연 코를 가렸다. 그리고 옆에 선 남자가 들고 있던 각대봉투를 우리 몸쪽으로 밀었다. 우리가 그것을 받자마자 그는 가슴팍에서 손수건을 꺼내 손을 닦으며 유민우가 탄 차를 향해 걸어갔다.
-따라와.
각대봉투를 들고 왔던 남자는 우리를 경찰서 뒤편으로 데려갔다. 남자는 검은 승용차의 뒷문을 열고 손짓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운전석에는 이미 누군가 타 있었다. 나와 방기욱이 모두 차에 타자 그는 문을 닫고 왔던 길을 유유히 다시 돌아갔다. 운전석에 타 있는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차는 어두운 밤길을 계속해서 달렸다. 긴 터널을 달리기도 하고, 가로등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국도를 달리기도 했다. 난 그저 창문 밖만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 차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나는 방기욱과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방기욱이 지금 어디로 가는 거냐고 물어도 그는 묵묵부답으로 운전만 할 뿐이었다. 방기욱이 답답해 지칠 때쯤 나도 스르륵 잠에 들었다. 꿈을 꾸었다. 행복했던 지난날의 꿈이었다. 유민우, 방기욱과 같이 자전거를 타고 도로를 달리던 순간, 나뭇잎을 따면서 오늘은 배불리 먹을 수 있을지 점쳐보던 순간. 감긴 눈 아래로 눈물이 흘렀다. 눈을 떴을 때 창밖의 풍경은 낯설었다. 몇 시간을 달려왔는지도 모르겠다. 난 흘러내린 눈물을 닦고 차에서 내렸다. 운전한 남자도 내려서 우리에게 말했다.
-그 돈 받고 후보님 아드님께 더 이상 접근하지 말아라. 알아 들어?
그는 그 말만 하고 다시 차에 타더니 시동을 걸었다.
-와, 무슨 드라마에 나올 거 같은 대사를 진짜로 던지네?
방기욱이 뻐근한 목을 꺾으며 말했다. 그리고 점점 멀어지는 차를 향해 두꺼운 각대봉투를 던졌다. 그러나 검은 승용차는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우리에게 남은 건 푸른 들판에 잔잔하게 들려오는 매미 소리뿐이었다. 우리는 자유로운데 마음 한 켠이 텅 빈 기분이었다. 유민우는 평소에 말을 많이 하는 편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특별히 눈에 띄는 것도 아니었는데. 내가 아는 거라곤 그가 흰색을 좋아한다는 거밖에 없는데. 그가 더 이상 내 곁에 없다는 현실이 문득 가슴을 훅 치고 들어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뺨을 타고 눈물이 흘렀다.
-어, 왜 이러지...
눈물이 뜨겁다 못해 따갑다. 마치 누가 응집된 광선을 내 얼굴에 대고 있다고 느껴졌다. 내 눈주변에서 턱까지 정갈한 선을 그으며 내려오는 그 물길대로 푹 파이는 것 같았다. 유민우가 있을 때는 앞으로 나아가는 게 두렵지 않았다. 항상 나를 응원하고 함께 해주었다. 이유를 묻고 따지지도 않았다. 유민우의 빈자리는 다른 결핍이 채워져 차고 넘쳐도 채워지지 않았다. 돈이 많아도, 기약된 자유가 있어도.
방기욱과 나는 한참을 걷다가 터널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점검로를 따라 걷다 보니 소화전이 보였다. 나는 긴급전화 수화기에 손을 얹었다. 하지만 그 수화기를 차마 들지 못했다. 전화를 걸면 또 경찰서로 잡혀갈까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심정은 굴뚝같은데 그 대상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통하기만 했다. 나는 한참 그 앞에 머물렀다. 누군가에게 선뜻 도움을 청할 수 없다는 것이 나를 외롭고 괴롭게 만들었으나 그 사실과 대비되게도 나는 점차 더욱 단단해졌다. 다시 걸음을 서둘러 걸으면 비상구가 보였다. 비상구 안쪽은 동굴과 아주 흡사했다. 우리는 그날 밤 비상구 동굴 속에서 서로 멀리 떨어져 앉은 채 서로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내리 생각에 잠겨 있었다.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하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그 근본적인 질문이 나를 괴롭혔다. 삶의 이정표가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평온하기만 했던 삶이 무너지는 순간에 목적지도, 걸어왔던 길도 종잡을 수 없이 부서졌다. 다시 조각을 맞춰 길을 만들려고 해도 그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400피스짜리 퍼즐을 푸는 것과 다름없는 인내와 고통이 필요했다. 그러다 문득 하늘을 바라보며 웃던 유민우가 내 앞에 나타나 눈물이 고이게 했다. 울음은 그 감정에 깊어질수록, 그 마음에 다가갈수록 더 눅진하게 터져 나왔다.
처음 만났을 때 유민우는 나와 같은 향기를 품고 있었다. 밝은 원색에 탁한 회색이 한 줌 들어간 그런 칙칙한 색깔. 이 지구에서 사라지고 싶은 그런 생각을 분명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그랬듯이.
그는 언제나 마음이 여리고 또 착했다. 어딘가 무너져 있지만 무너지지 않기 위해 발악하는 게 아니라, 자신을 무너뜨리는 그 상대를 향한 증오를 품은 게 아니라, 자신을 무너뜨리는 무시무시한 무력을 온전히 감수하고 있었다. 자신은 그런 역할이라고 그렇게 되뇌고 있어 보였다. 그런 점이 나와는 참 달랐다. 웃기지. 내가 모든 것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을 때 그는 자신이 갈갈이 찢겨가도 그것이 자신의 숙명이라며 모든 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었다는 것이. 그래, 어쩌면 나와 닮은 유민우를 무너뜨리고 싶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결국 그 끝에서 나는 항상 할머니를 느꼈다. 유민우에게서 할머니를 떠올리다니. 어쩌면 할머니는 내가 태어난 후부터 쭉 유민우처럼 살아온 건 아닐까? 자신은 그런 역할이라며 묵묵히 모든 것을 품고 갈 운명을 받아들였던 건가? 그랬어, 할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