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언포러 크루

by 문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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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다. 병원도 아닌데 코를 찌르는 깨끗한 냄새. 사무실 같은 딱딱한 분위기. 손에 걸린 수갑. 모든 게 그저 낯설기만 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코앞도 바라보기 힘들었다. 호흡은 설주림, 유민우와 달릴 때보다 더 불규칙했다.


-어이. 손톱 좀 그만 깨물지?


노트북 타자를 열심히 치던 남자가 책상에 노크하며 말했다. 난 다리를 미친듯이 떨며 손톱을 깨물고 있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의 눈동자에 비친 내 눈에는 어떤 자유도, 여유도, 침착함도 남아있지 않았다. 남은 거라고는 불안과 증오만이 깊게 서려 있었다.


-하, 미치겠네. 얘네가 걔들이야? 송 형사가 아동납치사건 용의자라고 잡아온?


마주앉은 남자는 경찰모를 내려놓으며 질문하는 경찰관의 말에 그렇다고 답했다. 경찰관은 자연스럽게 책상에 엉덩이를 올렸다. 그리고 흘기듯이 우리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이 우리에게 질린다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이제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송 형사는 어디갔냐는 물음에는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리고는 곧장 한 사람씩 이름과 나이를 물어보았다. 한 명씩 대답을 이어갈 때마다 내 심장은 더 요동쳤다. 이름을 말할 수 없었다. 내 차례가 다가와도 내 입은 옴짝달싹도 하지 않았다. 나의 태도에 인상을 찌푸린 남자가 한숨을 쉬었다. 그때 옆에 서서 믹스커피를 마시며 계속 질문하던 남자가 어, 송 형사다! 하고 문 쪽을 바라보았다. 그 말에 나를 빤히 바라보던 남자가 고개를 돌렸다.


-송 형사! 얘네가 용의자라고? 심지어 저기 서너 명은 미성년자던데. 그래서 송 형사가 진급을 못하는 거야. 감이 이렇게 똥일 수도 있나?


경찰관은 믹스커피를 입에 탈탈 털어 넣고 킥킥 웃으며 비꼬듯이 말을 했다.


-용의자 예상 출몰 장소였고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것도 프로파일링 결과와 맞았고. 그래서 체포한 겁니다.


-서울 깍쟁이가 길을 잘못 들은 건 아닌가 몰라. 이런 시골로 좌천되면 여간 힘든 게 아니지.


송 형사는 한숨을 쉬더니 큰 소리로 서류철을 탁탁 정리하고 허리에 왼손을 얹은 상태로 입을 열었다. 다른 한 손에는 지도를 들고 있었다.


-이곳 지도는 도착하자마자 외웠습니다. 좌천된 게 아니라 파견 나온 거고요. 아동납치사건 동선이 이곳과 겹치기 때문에.


앉아있던 남자가 경찰관의 팔꿈치를 툭툭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송 형사는 더 할말이 남았냐는 표정으로 경찰관을 쳐다보더니 밖으로 나가버렸다. 나가는 모습을 끝까지 확인한 남자가 경찰관을 향해 작게 속삭였다.


-야, 저 여자 미친개인 거 모르냐. 왜 신경을 살살 긁고 그래! 그리고 아무리 요 작은 파출소로 좌천당한 게 맞더라도 밤잠 안 자고 이번 사건 범인 잡아서 다시 올라가겠다고 발악하는데 좀 냅둬라. 어차피 오래 볼 사이도 아니고.


-나이도 어린 게 꼴에 형사라고 순찰관 무시하는 거야 뭐야.


남자는 경찰관에게 네가 참으란 식으로 살살 달래며 말했다. 한숨을 푹푹 쉬며 뒷담화를 몇 마디 더 남기고는 무전기에서 울리는 목소리에 몸을 풀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곽 형사, 나 간다.


가라며 손을 흔들던 남자가 경찰관이 나가는 모습을 확인하고 이번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러다가 고개를 들어 우리들과 눈이 마주쳤다.


-자 다시 시작하자. 이름이?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떨고 있는 손을 이마에 가져다 댔다. 순식간에 차가워진 손이 피부에 닿았다. 옆에 있던 설주림이 내 손을 잡았다. 차가운 내 손과 다르게 따뜻했다. 앞에 앉은 경찰은 내 대답을 기다리다 지쳤는지 땅이 꺼져라 한숨을 푹 쉬었다.


-딱 보니까 가출 청소년들이구만. 미성년자들은 부모님 불렀으니까 좀 기다리시고. 어이! 거기 성인들! 너네는 와서 진술서 작성해라.


부모님. 그 말에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유민우에게 들키고 싶지 않던 사실이 있듯, 설주림에게 말하고 싶지 않은 비밀이 있듯, 사람은 모두 다 마음 한 켠에 자기만 아는 것을 숨기고 살아간다. 나는 차가운 얼음팩을 얹은 발목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발목이 꽁꽁 얼듯 차가워지지만 머릿속은 뜨겁다 못해 끓는 것만 같았다. 도대체 지겹도록 변함없는 이 세상을 언제까지 체념한 체 살아야 하는 거야? 왜 다들 사는 거지?


남세현, 정일환, 그리고 영종이 형은 자리에서 일어나 진술서를 쓰기위해 동그란 탁자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남자는 그 세 사람의 머리를 돌돌 말은 종이 뭉치로 쥐어박았다.


-너네 이거 엄밀히 말하면 기물손괴죄야. 머리에 피도 안 마른 것들이. 미성년자 너네도!


-...시발. 하.


하품을 하며 종이 뭉치로 등을 긁던 남자가 내 말 한 마디에 보기 좋게 짜증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싫증이 끓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형사님. 정의구현, 정의실현 뭐 그런 거 좋아하는 사람들이 미자한테 욕이나 찍찍 해대고. 그래도 되는 거야? 경찰도 꼴이 좀 우습네. 애 앞에서 기싸움이나 하고.


-그만해.


그때 송 형사가 내 앞에 섰다. 내 눈썹은 높은 줄 모르고 하늘로 계속 치솟았다. 송 형사의 표정은 소름 끼치도록 토할 거 같았다. 나의 안위를 걱정하는 듯한 눈빛. 내가 불쌍하다는 저 표정. 마치 자기가 대단한 경찰관이라도 된 듯 구는 모습이 내 어린시절을 떠오르게 만들었다. 수년 전의 장면들이 머리에서 계속 맴돌았다.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 하나 둘 제자리를 찾아간다. 설주림이 담긴 기억들로 덮어놓았던 무수한 기억들이 펑 하고 터지듯이 떠오른다. 먼지를 가득 품은 기억 속 그 사람이 했던 말이 자꾸 내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그 사람과 송 형사라는 여자가 자꾸 겹쳐 보였다. 그래서 더욱 화가 났다. 오늘 처음 본 이 여자가 그 사람 흉내를 내고 있는 게 끔찍했다. 그 사람과 같은 결의 사람이라면 이 여자와는 더욱 가까워지면 안 되었다. 그만큼 위험하고 내게 독인 사람이었다.


-사과할게. 내가 너희를 사건 관련자로 오해했어. 금방 원래대로 돌려놓을 거야. 너희가 있을 만한 곳을 찾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줘.


지독한 친절. 자기가 뭐든 다 해결할 수 있다고 믿지. 이제 경찰 같은 건 안 믿는다. 그들은 이 나라에서 무력하다. 내가 원하는 그 무엇도 저 여자는 해줄 수 없다. 아무것도 내게 가져다줄 수 없다. 그런 척 나를 유혹하고 또 자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깊은 구덩이 안으로 나를 밀쳐 넣을 것이다.


-위선 떨지마. 역겨워.


+++


-아, 됐어, 됐어. 송 형사? 괜찮으니까 비켜.


장형준 형사는 송연수 형사의 어깨를 톡톡 치면서 말했다. 송연수 형사가 뒤를 돌았고, 그 표정을 바라본 장형준은 한숨을 쉴 수밖에 없었다. 마치 어릴 적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묘한 감정을 간직한 채 다시 입을 열었다.


-남학생 너는 좀 진정하고 있어봐. 어이, 거기 뒤에 여학생! 애 좀 봐줘.


설주림이 장형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장형준은 송연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흡연구역에 서서 담배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다 말고 멈춰서 송연수를 쳐다보았다.


-아니요. 저는 담배 안 핍니다.


송연수는 추운 바람에 양팔을 쓸다가 팔짱을 꼈다. 장형준은 눈썹을 움직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이 꺼낸 담배를 입에 물고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찾아 불을 붙였다. 한 모금 빨았다가 어두운 하늘을 향해 담배 연기를 뿜었다.


-송 형사 마음 알아. 뭐, 미안함? 죄책감? 그런 거 아니야?


송연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형준도 아무 말없이 담배를 한 모금 더 빨고 뿜어냈다.


-경찰대에서 현장은 안 배우고 어떤 걸 하는지는 모르겠는데, 근데. 실전에서는 실수가 드물지 않아. 그리고 그 실수를 수습하는 것도 네가 아니야. …그래 그렇게 생각할 수 있어. 내 잘못이니까, 가출청소년을 발견했으니까 배운대로 매뉴얼대로 보호시설로 보내야 한다. 근데 그 결정은 너가 하는 게 아니다? 송 형사가 할 수 있는 건 없어.


그 말을 듣던 송연수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다가 팔짱을 풀고 화를 내듯이 말했다.


-그럼 도대체 누가 그 아이들을 돕는다는 겁니까? 장 형사님은 그 애들의 마음을 아시기나 해요? 당장 하루만을 살아가는 애들이에요. 특히 그 세 명. 그 아이들이 도둑질을 배우고 감옥에서 썩고 나쁜 길로 빠지면 그때가 다 되어서야 후회하는 거? 이제는 싫습니다. 전 이미 한 번 기회를 놓쳤어요. 이번에는 놓치지 않을 겁니다. 그 아이들이 혹여 잘못된 선택이라도…!


-넘겨짚지 마라. 네가 무슨 일을 겪었던, 그건 이건 별개야. 송 형사 원래 이렇게 사리분별 못하는 스타일이었나? ……나라고 그런 일 안 겪어봤을까. 예전에 지 아빠 배에다가 칼빵 넣은 어린 녀석도 봤다. 그 녀석을 임시보호소에 넣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던 것도 나고.


송연수는 가만히 듣다가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물었다. 장형준은 한참 말을 잇지 못하다가 어떻게 됐을 것 같냐고 도리어 물었다. 송연수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글쎄요, 라고 말했다. 장형준은 피식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렇게 발악을 했는데, 결국 알코올 중독자 아빠 밑으로 다시 들어갔어. 법이 그렇다. 알코올 중독 치료 교육만 이수하고 좀 멀쩡한 척 하면 멀쩡하구나, 눈 가리고 아웅. 그 이후로 어떻게 살았는지, 잘 살고는 있는지… 몰라. 그 이후로 소식을 듣지 못했어. 동네를 수소문했는데 이사라도 간 건지 그 녀석 행방을 알 길이 없었지.

장형준의 말을 뒤로 한참을 둘은 말없이 서 있었다. 송연수의 입김과 장형준의 담배 연기가 번갈아 가며 어두운 하늘을 채웠다. 장형준은 담배를 검지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려 담뱃재를 덜어내었다.


-내가 하고싶은 말은, 결론은,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야.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장형준은 작아져 버린 담배를 어렵게 입에 물었다. 그러다가 에이씨, 하고 담배꽁초를 재떨이 안으로 밀어 넣어버렸다. 그는 가만히 송연수를 바라보다가 단전에서 우러나오는 깊은 한숨을 쉬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딱 하나. 딱 하나만 빼고.


송연수가 그게 뭐냐고 물으려는 찰나 낯선 차 한 대가 파출소 앞에 차를 세웠다. 누군가 양복을 정리하더니 파출소 안으로 들어갔다. 장형준과 송연수는 서로를 마주보다가 급하게 파출소 안으로 달려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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