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포러 크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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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가.
씨익,하고 한 번 웃은 방기욱이 당차게 말했다. 무슨 다짐을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의 한 마디의 여파가 방기욱과 유민우까지 한 통 속에 빨려 들어가도록 만들었다. 사실 이미 예상했다. 그들은 분명 나와 함께 가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들은 분명 가시밭길이더라도 함께 가는 길을 선택할 것이었다. 이상하리만큼 굳은 믿음이 자리하고 있었다.
-저도 갈게요!
박민수가 쭈뼛거리다가 손을 들었다. 그는 막내여서 매번 위험을 무릅쓰고 그라피티 비품을 챙겨오는 형들에게 늘 미안했다고 했다.
-이런 의리싸움에 제가 빠질 순 없죠!
양주혁이 양손에 주먹을 쥐고 흥분하며 말했다. 얼핏 어벤저스 같다며 아주 신나 보였다. 그 기쁨이 반짝이는 안광에서까지 뿜어져 나왔다. 영종 씨도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함께 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갑작스러운 증원에 남세현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양주혁, 이건 의리싸움이 아니야. 다들 내 얘기를 들어봐요. 이번에는 정말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요. 다량의 페인트와 스프레이를 가져오는 게 아니기 때문에 단체로 움직이는 건 효율이 떨어질 뿐더라 위험해요. 그러니까,
정일환은 이마를 짚으며 말하다가 고개를 들어 바라본 이들의 확신이 가득 찬 눈빛에 하던 말을 머췄다.
-그러니까, 내가 어떻게 말해도 전부 소용없다는 얼굴들이네요.
-그걸 이제 아셨어요, 형? 다 같이 가면 망을 볼 수도 있고 혹시 주인아저씨에게 들키더라도 따돌리기 쉬울 거예요. 저 농구했어서 달리기 빠르고 민첩한 거 알죠?
-두 말하면 잔소리지.
어디에서도 통할 거 같지 않은 바디 랭귀지를 시전하는 양주혁과 인자하게 접힌 눈으로 그를 어화 둥둥하며 손뼉을 치는 영종 씨의 조합은 모두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기어코 정일환의 입꼬리도 하늘로 솟았다.
-잘 들어요. 작전은 내가 짭니다.
이마를 짚은 정일환이 한숨을 한 번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저기서 긴장된 침이 꼴깍하고 넘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정일환의 작전은 간단했다. 유경험자인 남세현과 영종 씨가 스프레이와 페인트를 가방에 넣고 밖으로 넘기면 정일환과 박민수가 받는다. 유민우와 나는 남세현과 영종 씨가 들어가고 나오는 동안 망을 본다. 혹시 주인아저씨한테 들키게 되면 달리기가 빠른 양주혁과 방기욱이 따돌린다. 양주혁과 방기욱은 주인아저씨한테 들키기 전까지 나와 유민우가 서 있는 정비소 입구 정반대 편에 있는 뒷문을 맡는다.
10시 정각. 대형 차량정비소 앞에서 유민우와 나는 자연스럽게 걸었다. 뒤로 움직이는 양주혁과 방기욱도 슬쩍 흘겨보았다. 남세현과 영종 씨는 익숙하게 정비소 앞 화단에서 열쇠를 꺼냈다. 두 사람이 안으로 무사히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 유민우와 함께 무작정 앞을 향해 걷던 걸음을 멈췄다. 건물과 그리 멀지 않은 골목으로 빠져 눈 깜박이는 시간도 줄이고 정문을 주시했다. 속전속결로 진행될 줄 알았다면 오산이었다. 한참을 기다렸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몇 분 밖에 지나지 않았다. 어깨를 바싹 올리고 긴장한 몸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눈도 느리게 접었다 뜨며 앞을 바라보았다. 유민우는 내게 피곤하면 잠시 눈을 붙여도 된다고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그때 통화를 하면서 건물 앞을 지나가는 여자가 보였다.
-저번에 연락 드렸었는데 기억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네, 그거 맞아요. 제가 너무 무리한 부탁을 드렸었죠. 약속 장소는 유용 정비소 앞 맞죠? 거의 다 왔어요.
하필이면 만남 장소가 목표 건물 앞이라니. 그 여자가 자꾸 시야를 방해하며 이리저리 걸어다녔다. 나도 그 여자의 움직임에 따라 고개를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그때 배가 불룩 튀어나온 한 남자가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달려왔다.
-주림아, 얼굴에 점!
유민우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슬리퍼를 신고 달려오는 남자의 얼굴에 남세현의 말대로 정말 큰 점이 자리하고 있었다. 여자가 통화를 하던 상대가 저 남자였다니! 저 남자는 남세현이 말한 차량정비소 주인아저씨의 특징에 전부 들어맞았다. 얼굴에 있는 큰 점, 볼록 튀어나온 배, 빨간색 삼선 슬리퍼까지.
나와 유민우는 주인아저씨를 발견하자마자 정비소를 향해 주변에 있던 돌을 하나 던졌다. 아코디언 창문에 맞아 쨍그랑 소리가 났다. 남자는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에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하고 누구냐고 고함을 질렀다.
-어린애들 장난일까요? 그래도 차량정비소에 돌은 위험하네요.
그 여자가 주변을 둘러보며 말했다. 여자는 급한 마음에 아주 빠른 속도로 말을 뱉었다. 이 다음에 더 중요한 약속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는 여자를 향해 간절히 빨리 그곳에서 떠나라고 눈으로 말했다. 남자는 화단에서 열쇠를 꺼낼 생각 대신 깨진 유리창을 통해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는 문에 열쇠가 걸린 것을 한참 바라보다가 남자에게 무슨 말을 하더니 전화기를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낸 신호를 들었을까?
유민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들었을 거라고 말했다. 이렇게 된 이상 안에 들어간 남세현과 영종 씨는 앞문보다 뒷문으로 빠르게 나오는 선택을 할 것이었다. 나와 유민우는 한 블록을 돌아 뒷문 쪽으로 달려갔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건물 뒤편은 이미 아수라장이었다. 전화를 걸고 있던 여자가 왜 달려 나오는 남세현의 등 뒤에서 나오는 거지?
남세현은 자신이 들고 있던 가방을 정일환 쪽으로 던졌다. 정일환은 정확히 그 가방을 받았다. 영종 씨가 들고 있던 가방의 행방을 확인하기 위해 영종 씨를 찾았다. 그 순간 공중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환하게 떠 있는 미완성인 달을 가리며 날아오른 가방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그곳에 있어야 할 박민수는 한참 먼 곳에 서 있었다. 꽃잎이 지듯 천천히 떨어지는 가방을 향해 달려오는 속도로 봐서 바닥에 떨어지기 전에 받아내긴 힘들어 보였다. 그때 누군가 빠르게 달려와 그 가방을 받아내었다.
-방기욱!
온몸을 던져 받아낸 사람은 방기욱이었다. 자신의 속도를 주체하지 못하고 발을 삐끗한 채로 넘어졌다. 방기욱은 가방을 품에 안고 쓰러졌다. 나는 그를 향해 달려갔다.
-너…!! 영종이 형 뒤로 얼른 달려. 도망가라고!
방기욱의 동공이 커졌다. 늘 장난스럽고 여유가 넘쳤던 이전의 그의 모습과는 달랐다. 방기욱은 어떤 상황에도 관심이 없고 어떤 위기에도 될 대로 되라지 식이었다. 그런 그가 지금 나를 향해 다그치고 있었다. 나는 그대로 멈춰서 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방기욱의 발목이 제대로 걸을 수 없을만큼 붉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때 유민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앉아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가 잡은 내 손이 떨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달을 수 없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고 방기욱을 향해 외쳤다.
-옆에서 떨어지지 말라고 했잖아! 위험하다며.
그는 당황한 듯 가만히 멈춰버렸다. 그리고 한 번 웃었다.
-달릴 수 있겠어?
-당연하지, 새끼야.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방기욱은 일어나며 윽, 하는 소리를 내었다. 그때 뒤에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파란 모자를 쓴 남자들이 동료들을 향해 이쪽으로 오라며 손짓했다. 그가 들고 있는 손전등은 우리를 비추고 있었다. 우리는 번쩍이는 빛을 향해 팔을 들어 눈을 가렸다. 유민우와 방기욱ㅇ느 서로 마주보았다.
-주림아, 달려야 해.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방기욱 옆에 있는 가방을 챙기려고 팔을 뻗었다.
-야 설주림, 지금 그딴 거 챙길 여유 없어. 서둘러!
방기욱이 내 팔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그는 발목이 퉁퉁 부은 채 빠르게 달렸다. 제 다리가 그토록 살려달라고 아우성 치는 걸 모르지 않았던 게 분명하다. 방기욱의 머리카락은 젖어서 갈라지고 그 아래로는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이를 악물고 달리고 있었다. 나는 방기욱이 내 팔을 잡고 앞으로 당기는 힘에 버겁도록 달렸다. 비좁은 골목을 헤치고 또 달렸다. 유민우가 등 뒤를 한 번씩 확인할 때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송 형사, 저기 있다! 너네들, 거기 서!
경찰이 우리를 부르는 소리에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발을 더 빠르게 굴렸다. 숨이 가빠져오는 느낌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과호흡이 온 것처럼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도착지점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그곳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오로지 앞을 향해 달렸다. 달리는 도중에 퍼덕이는 옷가지들, 빨랫줄에 널린 얇은 카디건과 가지런히 널린 아주 조그만 사이즈의 줄무늬 양말, 곳곳에 길을 안내하듯 보이는 가로등까지 천천히 모두 나의 눈에 들어왔다.
여름의 덥고 습한 공기가 온몸에 느껴졌다. 긴박한 숨소리와 발 구르는 소리가 점점 크게 들려왔다. 여름밤의 스산함도 몸의 열기를 내려주진 못했다. 하늘에 뜬 달이 어느 순간 아주 가깝게 느껴졌다. 보름달도 아니고, 그믐달도, 상현달도 아닌, 그 어딘가. 조금만 더 달리면, 아주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난다면 꽉 찬 보름달이 될 것만 같은데. 속절없다는 세월도 시간도 너무나도 길게 느껴졌다. 점점 가파오르는 유민우의 숨소리가, 방기욱의 얼굴에서 흐르던 땀이 기어코 그의 옷을 적신 것이 선명히 보일 때쯤, 누군가 눈앞에 길을 가로막았다.
-이 동네 지리를 다 꿰고 있는 건 이쪽이야.
아까 그 여자였다. 정비소 앞에서 전화를 하고 있던 그 여자. 그녀는 경찰 배지와 경찰증이 들은 경찰수첩을 들어 보였다. 우리에게 탈출구는 없었다. 앞도 뒤도 꽉 막힌 상태로 포위되었다. 이름 모를 가게 셔터에 등이 부딪혔다. 그 셔터에는 언포러 크루의 그래피티가 대문짝 만하게 그려져 있었다. 반짝이는 손전등 수십개가 우리를 향하고 있었다. 뜨겁고 따가운 빛에 앞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여자는 우리에게 다가와 팔을 잡고 제압하며 말했다.
-당신을 아동납치사건의 용의자로 체포합니다. 당신은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런 장면은 영화에서나 본 것 같은데.